2012. 7. 19. 12:49ㆍ一般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손 씻으면 罪 의식도 씻긴다
잘못된 행동 하고 나면 손 씻으려는 사람 많아
'몸을 깨끗이 함'으로써 마음까지 淨化하려는 것… '맥베스 효과'라 불러
일상 선택에도 나타나… 너무 '지나치게' 씻으면 이기적 인간이 될 수도
씻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아이가 요즘 틈만 나면 손을 씻는다. 행동도 영 부자연스럽다. 깨끗하니 좋기야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지난주 룩셈부르크大 연구진은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에 처음 접한 사람들은 평소보다 비누나 샤워 젤 같은 목욕용품을 더 찾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76명의 실험 참가자는 15분간 폭력 게임을 했다. 이 중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비누를 더 찾았다. 연구진은 "몸을 씻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손을 자주 씻는 아이도 뭔가 엄마에게 숨기고 싶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마음을 정화(淨化)하기 위해 먼저 몸을 씻는 행동은 다양한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와 시크교에서는 몸을 씻어 죄를 없애는 '침례(浸禮)' 의식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몸을 씻는 '우두(wudu)' 의식이 있다. 우리말에서도 범죄자가 마음을 고쳐먹을 때 흔히 "손 씻었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2006년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노스웨스턴大 연구진은 이를 '맥베스 효과(Macbeth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인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무장(武將) 맥베스가 부인과 공모해 자신의 성(城)을 방문한 국왕 던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후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맥베스 부인은 남편이 국왕을 살해하자 자기 손을 씻으며 "사라져라. 저주받은 핏자국이여(Out, out, damn spot)"라고 말한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지만 손을 씻으며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버리려 한 것이다.
캐나다·미국 공동 연구진은 그해 12월 '사이언스'지에 맥베스 효과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과거에 자신이 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기억하도록 했다. 그다음에 중간에 철자가 빠진 'W--H, SH--ER, S--P'란 세 단어를 완성하게 했다. 그러자 비도덕적인 행동을 떠올린 사람들은 'WASH, SHOWER, SOAP'처럼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단어를 적은 경우가 다른 답들보다 60%나 많았다. 윤리적인 행동을 기억한 사람에서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실험은 1인칭 시점의 소설을 베끼는 것이었다. 한 주인공은 다른 사람을 도왔고, 다른 주인공은 괴롭혔다. 실험 후 생활용품을 원하는 순서대로 꼽으라고 했더니 주인공이 이기적인 소설을 베낀 사람은 비누나 치약처럼 몸을 씻는 용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직접 했건 아니면 단순히 목격했건 나쁜 행동을 경험하고 나면 정신을 정화하기 위해 몸을 씻을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은 맥베스 효과가 실제로 뇌에 작용한다고 본다. 고약한 냄새를 맡을 때와 나쁜 말을 들었을 때 표정이나 그때 작동하는 뇌 영역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몸과 마음이 느끼는 혐오감이 같은 방법으로 표현된다면 몸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맥베스 효과는 윤리나 도덕과 무관한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여름 휴가지를 제대로 골랐는지 자신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자신이 선택한 휴가지의 장점을 부풀리고, 다른 곳은 단점을 부각시킨다. 이른바 '사후 정당화(after-the-fact justification)' 과정이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2010년 '사이언스'지에 사후 정당화와 맥베스 효과의 연관성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10장의 음악 CD를 들려주고 점수를 매기게 했다. 다음에 참가자 절반에게 손을 씻게 했다. 그리고 중간 점수를 매긴 CD를 집에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그러자 손을 씻지 않은 사람들은 선물로 받은 CD의 점수를 처음보다 높게 매겼다. 전형적인 사후 정당화이다. 하지만 손을 씻은 사람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같은 점수를 줬다. 연구진은 "손을 씻으면서 사후 정당화와 같은 정신적 혼란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이다. 만약 과거의 경험이 좋은 것이었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실제로 실험에서 기분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고서 손을 씻은 사람들은 "처음보다 좋았던 느낌이 덜 하다"고 답했다. 다른 실험에서는 가난한 대학원생의 논문 작성을 위해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손을 씻지 않은 사람의 74%는 도와주겠다고 답하였지만 손 세정제를 쓰도록 한 사람은 그 비율이 41%에 그쳤다. 손을 씻으면서 마음의 찜찜함을 없애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마음마저 씻겨 내려가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사족(蛇足) 하나. 맥베스 부인은 선택을 잘못했다. 한 실험에서 거짓말을 한 사람은 손 세정제보다 치약을 더 선호하며, 손으로 나쁜 일을 했으면 치약보다 손 세정제를 택하는 것으로 나왔다. 우리 조상도 나쁜 얘기를 들으면 귀를 씻었다. 맥베스 부인은 말로 남편을 꼬드겨 국왕을 살해하게 했으니 세 치 혀를 먼저 씻었어야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8/2012071802790.html 이영완 산업부 기자 ywlee@chosun.com 입력 : 2012.07.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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