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놈 위에 나는 놈
2022. 8. 13. 09:37ㆍ法律
[만물상] 등(等)의 마법
여러 개 열거하다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을 때 쓰는 말이 ‘기타 등등’이다. 기타(其他)는 그 밖의 다른 것, 등등(等等)은 그 밖의 것을 줄인 것을 뜻하니 기타 등등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 이외의 것들을 의미한다. 중요도에서 밀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느 기타교실 학원장은 기타의 장점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세상 모든 악기는 ‘기타’와 ‘기타 등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법령(法令)에서의 ‘등’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간혹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대상을 마구 늘리는 마법을 부린다. 2003년 금융 당국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것도 ‘등’을 활용한 것이었다. 당시 외환은행은 매각할 수 있는 부실 금융기관이 아니었지만 금융 당국은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시행령 예외 조항의 ‘등’에 기대서 외환은행을 매각 대상에 밀어 넣었다. 당시 확대 해석이란 논란이 일었다.
▶ 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 법안 시행을 앞두고 법무부가 검찰 수사 대상을 상당 부분 원상 복구시키는 시행령을 11일 입법예고하자 민주당이 반발하고 있다. 법안에서 검찰 수사 대상을 공직자·선거 등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범죄 등 2대 범죄로 줄였는데 시행령에서 수사 범위를 늘린 것은 입법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생긴 것도 법안의 ‘등’ 자 때문이다.
▶ 법안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를 검찰 수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등’을 넣어 수사 범위를 시행령(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를 활용해 원래 공직자 범죄였던 직무유기·직권남용 등을 부패 범죄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수사 범위를 넓혔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법안은 (중요 범죄 범위를) 얼마든지 넓힐 수 있는 재량권을 줬다.”며 “(오히려) 중요 범죄를 최소한으로 규정했다.”고 했다. 법 취지대로 했다는 것이다.
▶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법률가들은 대부분 법무부가 맞는다고 했다. 법 문언상 방점이 ‘중요 범죄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에 있지, 부패·경제범죄로 수사 대상을 한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입법자 의사와 다르더라도 법 문언이 명백하면 문언대로 해석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원래 이 조항은 법사위 통과 당시 ‘부패·경제범죄 중’이었는데, 여야 협의 과정에서 ‘중’이 ‘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민주당이 ‘등의 마법’을 무시하다 큰코다친 셈이다. 최원규 논설위원 입력 2022. 08. 1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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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 소송을 냈다. 민주당이 소위 검찰 개혁 완수란 이름 아래, 실제로는 그들의 두 주군(主君) 보호를 위해 다수 의석을 이용해 강행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위헌이므로 이를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국가 중요 범죄 수사 기관의 수사권을 없애 버린 이 입법 난동에 대한 판단은 상식에 속한다. 어려울 게 도대체 없다. 소속 의원이 의안 신속 처리에 필요한 국회 법사위 내 정당과 무소속 비율 조정을 위해 꼼수 탈당하는 절차적 문제도 있었다.
헌재는 지금까지 문을 굳게 닫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체 침묵하면서 차일피일하고 있다. 함흥차사다. 이게 나라의 헌법 문제를 심판하는 기관이 할 짓인가?
정권이 바뀌었어도 문재인이 임명한 진보좌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가 중추 기관들의 행태가 다 이 모양이다. 대법원도 재판 지연을 밥 먹듯 한다. 큰 문제에 관해서는 휴가를 가 몸을 피하는 식으로 온갖 추태를 부리며 자기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미룬다.
한동훈은 헌재가 마냥 판정을 하지 않고 버티면(지금으로서는 한 달 내 결정이 나오기 어렵다) 검수완박 법 시행이 예정된 9월 초가 금방 다가와 버릴 상황을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헌재는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등’이 그 째깍째깍 시한을 향해 움직이는 시곗바늘 소리 속에서 구명보트가 됐다. 문제의 이 ‘등’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난리를 치며 협상하는 과정에서 ‘중’이 바뀐 것이었다.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현행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에서 부패, 경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다.’
민주당이 개정한 검찰청법 제4조가 이렇다. 이것이 ‘부패, 경제 중’이었으면 범위가 좁게 굳어져 버린다. 그러니 ‘등’이 구세주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것도 검찰 수사권 약화를 원한 문재인 정권이 추진했다)으로 6대 범죄만 검사들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줄여놨는데, 이것마저 다 빼앗아 버리려다 여당 원내대표 권성동이 당시 국회의장 박병석의 중재안을 덥석 받고, 보수 진영 반발로 재협상하는 과정에서 부패, 경제가 남고 ‘등’이라는 보너스까지 생겨났다.
민주당이 당시 여론 악화에 직면, 국민의힘과 협상용으로 선물했다가 후환(後患)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동훈이 이 불씨를 살려 대형 화재를 냈다. 그 ‘등’으로 부패에 공직자, 선거 범죄가 포함돼 도로 6대 범죄 거의 모두 검찰 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직권남용, 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다 부패 범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이 근거로 부패 관련 법률들이 정의하고 있는 부패 범죄, 부패 행위 개념 외에 ‘UN부패방지협약이 부패 방지 대상으로 규율한 행위’도 차용했다.
“법무부가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개정법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다. 상위법(검수완박)의 위임 범위 내에서 법체계에 맞게 하위 법령을 정비하는 것에 불과하고, 시행령으로 법률에 어긋나는 새로운 내용을 창출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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