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김씨 고(考)

2010. 1. 11. 23:02姓氏

[조용헌 살롱] 안동 김씨 고(考)

안동을 비롯한 경상도 남인들이 조선 후기 200년 동안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는 내용의 지난번 칼럼에 대하여 여러 독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안동 김씨'는 무엇이란 말인가?" 안동 김씨 세도로 인해서 안동 또는 경상도 사람들이 권력을 누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안동 김씨는 호적만 '안동'으로 되어 있지, 들어가 보면 이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성씨제도에서, 본관(本貫)과 관향(貫鄕)은 한번 정해지면 그 뒤로 바뀌지 않는다. 본관은 그 성씨의 시조가 태어난 장소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경주 김씨'라고 하였을 때, 그 후손들이 모두 경주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대전에서 살 수도 있고, 광주에 이주해서 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족보에는 '경주'라고 기재한다. 죽음 후 묘비에 새길 때에도 '경주 아무개'라고 새긴다. 그러다 보니 경주에서 계속 살았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안동 김씨도 마찬가지이다. 안동 김씨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청음(靑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걸출한 행적 때문이었다. 이들 형제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서울사람들이었다. 김상용과 김상헌의 증조부 때 벼슬을 하면서 안동을 떠나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던 것이다. 서울의 장의동(壯義洞)이 바로 그 근거지였다. 경복궁의 서북쪽 지역인 자하문(紫霞門) 밑의 동네가 '장의동'이다. 지금의 옥인동과 청운동 일대이다.

이들 김씨는 '장동 김씨'라고 불렸다. 족보에는 안동 김씨이지만, 실제 거주한 곳은 장동(장의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동 김씨들이 가지고 있던 유명한 저택이 청풍계(淸風溪)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단원의 그림으로 남아있는 청풍계 전경을 보면 바위 암벽과 소나무, 그리고 우아한 기와집들이 조화를 이룬 서울 최고의 저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이 살았던 집이 청풍계 터라고 전해진다. 단단한 화강암을 바닥에 깔고 있어서 기가 아주 강한 집터이다.

안동 김씨 세도는 안동 사람들과 관련이 없다. '장김'은 서울의 노론이었으므로 남인의 도시였던 안동과는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조선 후기 안동은 춥고 배고팠던 '야당도시'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0/2010011000912.htm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10.01.1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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