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편액

2010. 7. 15. 13:56風水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21> 경복궁 편액

8월 15일 광복절에 다시 열리는 광화문, 고종 때 현판 다시 걸립니다

2007년부터 복원공사 중인 서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 올 8월 15일 광복절에 완공됩니다. 이날 새 현판(懸板) 제막식도 함께 이뤄집니다. 현판이란 궁궐 건축물의 이름이 걸려 있는 판으로 편액(扁額)이라고도 합니다. 대체로 당대의 문장·서예가들이 옛 경전(經典)과 각종 고전에서 따와 만들었습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 현판을 누가 썼고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노니는 발걸음이 한층 즐겁지 않을까요.

 

 

▲ 복원 공사 중인 광화문이 광복절인 8월 15일에 맞춰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 공사를 총지휘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현판을 복원해 누각 2층에 건다. [김경빈 기자]

경복궁의 궁성은 1398(태조7)년에 조성됐다. 이때 궁성 문인 광화문·건춘문·영추문도 세워졌다. 뒤이어 북문인 신무문도 갖추어졌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훼손됐고, 1867(고종4)년 중건되면서 제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이 훼손돼 원형을 잃었다. 지금의 궁성은 그후 여러 차례 고쳐 쌓은 것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1395(태조4)년 경복궁의 주요 건물을 세운 뒤 만들었다.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7(고종4)년 다시 지었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다시 불탔고, 1968년 박정희(1917~1979) 대통령 재임 당시 축대 일부를 수리하고 복원했다. 이때 현판을 새로 제작했다. 박 대통령이 한글체로 직접 글씨를 썼다.

복원되는 광화문은 현판을 바꿔 단다. 한국전쟁 폭격 전까지 걸려 있던 임태영의 글씨(사진)로 복원하는 것이다. 임태영은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으로서 공사를 총지휘했던 인물이다. 당시 현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1916년 촬영된 사진 등을 근거로 글씨체를 디지털 복원해 냈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 오욱진씨의 책임 하에 각자(刻字: 글자를 새김)·도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광화문 누각 2층 처마에 거는 절차까지 끝나면 천에 덮였다가 8월 15일 제막식 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광화(光化)’란 천자나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를 뜻한다. 『위서(魏書)』 ‘함양왕희전’에서 함양왕 희(禧)의 말 가운데 ‘성스러움으로 중원을 광화하였다’는 구절이 있어, 광화가 곧 군주의 교화를 뜻함을 알 수 있다.

 

 

건춘문(建春文)

봄이 통한다는 동쪽 문, 무관 이경하의 작품

경복궁의 동쪽 궁문. ‘건춘’은 봄을 세운다는 뜻. 오행에서 동쪽은 봄과 통하므로 동쪽 문에 흔히 춘(春)자를 붙인다. 서쪽의 영추문과 짝을 이룬다. 오행(五行)에서 동쪽을 상징하는 계절이 봄이므로 이같이 이름을 지었다. 문 안에 왕세자가 거처하던 춘궁(春宮)이 있었으며, 왕족·척신(戚臣)·상궁들만이 드나들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때 중건했다. 현판은 중건 당시 이경하(1811~1891)가 썼다. 이경하는 고종 재위 때 훈련대장 등을 지낸 무관으로 특히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돈독히 받았다.

영추문(迎秋門)

가을맞이한다는 서쪽 문, 무관 허계가 써

경복궁의 서쪽 궁문. ‘영추’란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 동쪽 건춘문과 짝을 이룬다.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건춘문과 똑같은 규모였다. 현재의 문은 1975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한 것이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허계(1798~1866)가 썼다. 허계는 경복궁 영건도감 제조를 지냈다가 그후 판의금부사에 오른 무관이다.

신무문(神武門)

성종 돼서야 이름 얻은 북쪽 문, 무관 이현직 글씨

경복궁의 북쪽 궁문. 태조 때 기록에는 궁성을 쌓고 광화·건춘·영추문을 만들었다고 돼 있지만 신무문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보아 뒤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얻은 것은 1475(성종6)년이다. 궁의 북쪽이라서 인적이 드물었으나 왕과 공신들이 함께 회맹제(會盟祭:공신들이 임금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의식)를 열 때에는 이 문으로 드나들었다. ‘신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묘하게 뛰어난 무용(武勇)을 뜻하며, 신령스러운 현무(玄武)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오행에서 북쪽은 어둠·죽음·살상 등을 의미하며 상징하는 상상 속 신수(神獸)가 현무다. 현판은 고종 때 어영대장 등을 지낸 이현직이 경복궁 중건 당시 썼다.

근정전(勤政殿)

왕 즉위식 열린 곳, 정도전이 이름 짓고 이흥민이 써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그 남쪽 문이 근정문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일이 모두 이곳에서 거행됐다.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져 임진왜란 때 불타기 전까지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했다. 186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 ‘근정’은 정치를 부지런히 함을 뜻한다. 개국공신 정도전(1342~1398)이 ‘치세가 이뤄지려면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경전의 표현을 빌려 작명했다. 현판은 고종 때 도승지 등을 지낸 문신 이흥민이 중건 당시 썼다.

 

건춘문, 영추문, 근정전, 신무문(시계방향으로)

사정전(思政殿)

왕이 정사를 돌본 장소, 명필 조석우의 글씨

왕이 평소 머무르며 정사(政事)를 보살피던 곳이다. 근정전 뒤 사정문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만춘전, 서쪽에 천추전이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 지은 것이 몇 차례 불탔고 고종 때 중건돼 지금에 이른다.

‘사정’은 ‘선정(善政)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해 정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현판은 경복궁 중건 때 이조판서로 있던 조석우(1810~?)가 썼다. 글씨에 뛰어나 일가를 이뤘다고 전한다.

강녕전(康寧殿)

일제 때 창덕궁 희정당 재건 위해 헐었다 95년 복원

왕의 침전(寢殿). 근정전 북쪽에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 지었다가 임진왜란 때 전부 타버렸고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일제 때 화재로 없어진 창덕궁 희정당을 재건하기 위해 1918년 헐어 그 부재를 갔다 썼다가 1995년 복원했다. ‘강녕’은 편안하고 건강함을 의미한다. 강녕은 『서경』의 ‘홍범’ 편에서 임금이 누리는 오복의 하나로 제시되는데, 정도전이 이를 바탕으로 작명했다. 현판은 1995년 복원하면서 설치한 것으로 서예가 여초(如初) 김응현(1928~2007)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교태전(交泰殿)

‘천지·음양이 어울려 태평 이루다’는 뜻

왕비의 침전. 강녕전 북쪽에 있다. 처음 건립 연대는 불분명하나 1440(세종 22)년에 공사를 시작해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등 몇 차례 불탔다가 1888(고종 25)년에 재건했다. 일제 때 헐어 그 부재를 창덕궁 대조전 복원에 사용했으며, 현재 건물은 1994년 복원한 것이다.

‘교태’란 ‘천지·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는 의미로 『주역』 ‘태(泰)’ 괘에서 유래한다. “하늘과 땅이 사귀는 것이 태[交泰]이니 군주가 이 괘를 보고서 천지의 도를 계획하여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돕고 살펴서 백성을 돕는다.”고 설명돼 있다.

함원전(含元殿)

불교행사 자주 열려… 고종 때 이명재가 써

교태전 서쪽 건물.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고종 때 중건하면서 재건했다. 함원전은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건물은 1995년 복원된 것이다.

‘함원’은 ‘원기(元氣)를 간직한다.’는 의미다. 『독역술』 가운데 건괘에 대한 해설에서 태화(太和: 원기가 끊임없이 나는 것)와 연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현판은 1888(고종 25)년에 예조참판·대사헌 등을 지낸 이명재(1838~1895)가 썼다.

경회루(慶會樓)

원래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 지금 것은 신관호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방형(네모꼴) 연못 안에 있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 건물로 국보 224호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쓰였다. 1412(태종12)년에 만들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고종 때 중건했다. ‘경회’란 ‘경사스러운 연회’라는 뜻. 처음 경회루를 건립했을 때 현판 글씨는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썼다. 지금 현판은 1867(고종 4)년에 위당 신관호(1811~1884)가 쓴 것이다.

 

 

사정전, 교태전, 경회루, 함원전, 강녕전(시계 반대방향으로)

http://news.joins.com/article/330/4313330.html?ctg=1700&cloc=home|list|list1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2010.07.15 00:26 입력 / 2010.07.15 00:26 수정

※ 도움말 기사 내용은 2007년 문화재청이 기획해서 펴낸 『궁궐의 현판과 주련』(수류산방) 시리즈 중 1권 ‘경복궁’ 편을 참고. 사진은 같은 책에 실린 것으로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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