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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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대학, 졍든님 오시난 길
2024년 밀양시립박물관 박물관대학을 개최한다는 위와 같은 안내를 보고 지방 소도시의 박물관에서 개최하기 쉽지 않은 프로그램 개강이라 매우 뜻깊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여 한걸음에 달려가서 접수하였다.아울러 옛 밀양지역의 역, 원, 시장, 나루, 고개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영상과 소설 「뒷기미나루」와 관련한 영상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도 함께 구성되어있다는 「졍든님 오시난 길」 안내를 보고 겸사겸사 관람하였다.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은사님이신 요산(樂山) 선생님께서 1969년 『創作과批評』 가을·겨울호인 통권 15호에 발표하신 소설 「뒷기미나루」와 관련한 영상이 있다는 것이었다.이 기획전은 ‘밀양의 옛길’ 이라는 주제로 국립중앙박물관 등 9개 기관 100여 점의 유물을 선보이며, 특히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
2024.10.20 -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은 일본 국적인가?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김문수 주장대로라면?3.1운동은 소요죄·내란죄, 임시정부는 반국가단체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성립하지 않는 논리다. 왜냐하면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서 사필귀정으로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체결된 모든 조약·협정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1910년에 한일병합조약으로 주권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가 국가의 기본 구성 요건 중 하나인 주권이 상실된 상태 아니냐. 그래서 국가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 국적일 수가 없었다는 주장은 1910년의 이른바 병합조약이라고 하는 조약이 유효하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조약이 무효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가 없다. 말하자면 조약 자체가 무효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 자체가 아예 원천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그러나 ..
2024.08.15 -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의 공과(功過)
이승만의 5가지 '빛'과 3가지 '어둠'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계기로 그의 업적과 과오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전 대통령의 주된 공으로 농지개혁,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의무교육 도입 등 5가지를, 과오로는 민간인 학살, 부정 선거 등 3가지를 꼽는다.이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성과는 한 위원장과 이 대표가 거론한 농지개혁이다. 농지개혁은 1950년 3월 공포된 농지개혁법을 근거로 단행됐다. 정부가 대지주의 농지를 지가증권을 발행해 매입하고 이를 소작농들에게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골자였다. 북한이 1946년 '무상몰수' 방식의 토지개혁을 실시한 점, 토지개혁을 원하는 농민이 많은 점 등이 개혁의 배경이었다. 개혁을..
2024.02.14 -
조선시대 부동산 거래 문서
조선시대 한양에 부동산 폭등 있었다… 50년 동안 15배 폭등 조선시대에도 토지와 가옥은 주요한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 특히 한양에 있는 주택과 토지는 언제나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중앙관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양에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상도에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던 퇴계 이황의 경우도 자신의 문집에 '한양의 셋집'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벼슬살이하던 중에는 한양의 주택에 세를 내고 살았다는 얘기다. 그보다 더 후대에 이르러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예 '한양에 살며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고 적어도 한양에서 10리 밖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양의 부동산이 중요한 가치를 띠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
2024.02.04 -
약산 김원봉
밀양의 내일동에 있는 해천을 중심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출생하였는데, 그중의 한사람이 약산 김원봉이다. 밀양사람인 약산 김원봉의 부인이며, 독립운동가인 박차정 의사는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으며 한글학자인 한힌샘 주시경 선생 밑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광문회에서 조선어사전 〈말모이〉 편찬사업에 참여한 기장사람 김두봉의 질녀이다, 박차정 의사는 부산의 동래여자고등학교 전신인 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그분의 생가는 지금 부산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앞 길 건너에 있고, 묘소는 남편 약산 김원봉의 고향인 밀양의 부북면 제대리에 있다. 한편 밀양은 포은 정몽주에 이어 남명 조식선생의 계보를 이어서 성리학적 정치 질서를 세우려던 점필재 김종직선생의 출생지이며, 부북면 제대리에는 김종직선생을 모신 예림서원도 있다. 참..
2024.01.24 -
‘부부총’이 아닌 ‘합장분’
부부가 아니었다.. '신라의 명품 귀고리'는 두 여성의 합장분에서 나왔다[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915년 경주 보문리 발굴조사에서 발굴된 국보 명품 귀고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귀고리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일본학자들은 이 때 조사된 보문리 고분을 두고 ‘부부총’이라 명명했고, 이 귀고리가 출토된 굴식돌방무덤을 ‘부인묘’라 해석했다. 그러나 2012년 이 고분의 발굴자료를 재검토한 국립경주박물관은 이 고분은 ‘부부총’이 아닌 ‘합장분’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라 최고의 명품 귀고리가 출토된 고분은 부부총이 아니었다.’ 9월 29~30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국립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자료의 공개와 활용’ 학술대회가 열렸다. 우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한반도 전역..
2022.10.04 -
광화문 앞 월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월대가 무엇이기에 광화문 앞을 파헤치고 도로 선형까지 바꿀까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 복원 후 모습의 조감도. 월대는 1866년 경복궁 중건 때 남북 52m, 동서 29.5m 규모로 조성됐다. 때문에 월대가 완전 복원되면 사직동 방면에서 광화문을 거쳐 안국동 쪽으로 가는 도로의 선형이 반원형태로 돌아간다. |서울시청 제공 광화문 광장에서 탁 트인 가을 하늘 아래 북악산과 어우러지는 광화문·경복궁의 조화를 보는 맛이 싱그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랜만에 광화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법 하다. 사직동에서 안국동으로 이어지는 광화문 앞 도로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고, 또 최근에는 그마저 높은 울타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이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
2022.09.24 -
대한이 걸어온 길(서울)
서울서울 개략도백악산(북악산)태조 이성계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신사임당(申師任堂) 초충도(草蟲圖) 맨드라미, 수박1899년 숭례문(崇禮門)숭례문은 조선시대 서울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남대문이 숭례문이 된 것은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길 때 풍수지리학에 밝은 무학대사를 데리고 경복궁을 지었는데 자주 불이 났다. 경복궁에 불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오행상 이 지구를 350도에 대해 24방위로 나뉘어 놓은 것을 나침반, 쇠철, 나전으로 분석해 봤을 때, 북방은 수(水)로서 물을 상징하고 중앙은 목(木)으로 나무를 상징하고 남방(南方)은 화(火)로서 불을 상징하는데 남쪽 불을 막아야 경복궁에 불이 나지 않는다.그래서 숭례문이라 ..
2022.07.21 -
대한이 걸어온 길(지방)
경상도 밀양 무봉사 태극나비 신라 말 국운이 기울어 사회 혼란이 가중되던 어느 해,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을 통일하기 직전 후백제 견훤과 밀고 밀리는 격전을 거듭하고 있던 시기였다. 나비가 나올 춘삼월도 아닌 2월 어느 날 갑자기 한 무리의 나비가 떼를 지어 날아와 무봉산(아동산, 88.1m)을 뒤덮으며 날아다니다가 며칠 동안 영남루가 서 있는 뒷산을 덮으며 날아다니던 나비는 죽은 흔적도 없이 흔적도 없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괴이한 일이 있었다. 무봉사를 감싸고 날아다녔던 나비의 날개에는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이상하게 여겼다. 당시 통일신라는 국론이 분열되는 등 나라가 모진 혼란에 휩싸여 있었던 때라 사람들은 어떤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생긴 지 얼마..
2022.07.21 -
밀양의 문화유적
밀양에서 좋은 기운을 내는 땅으로는 읍내의 교동, 산외면의 다원, 부북면의 퇴로를 든다. 2021년 밀양시립박물관 전시해설자 양성교육이 2021년 6월 9일 ~ 7월 8일까지 매주 수, 목요일에 문화유적 현장 약 20여 곳을 방문하면서 이루어지는데, 6월 9일은 영남루를 6월 10일은 수산제를 답사하였다. 6월 9일 목요일 농경문화의 발달(水利施設) 수산제(守山堤): 경상남도 기념물 제102호 수산제(守山堤)는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의 하나이다. 삼한 시대부터 있었던 수산제는 주위의 고지대로부터 저지대로 모여든 물과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 안강) 물이 넘쳐 농지로 범람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어서 주변 농경지에 이 물을 대어 농사를 ..
2021.06.11 -
조선의 여러 인물들
기억할 만한 인물 https://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534543959922825/3986854088025111 친일반민족행위자 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1239803146063566/1240024382708109
2021.03.19 -
세종대왕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해동의 요순' 세종은 왜 짜증과 불통의 대마왕이 되었나? (가) “너희는 설총은 옳다 하면서 내가 한 일은 그르다 하는 이유가 뭐냐.” “이 따위가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저속한 선비다.” “내가 너희에게 처음부터 죄주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보자보자 하니 안 되겠다. 죄를 벗기 힘들겠구나.” 사뭇 감정적인 언사로 일관하고 있는 발언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것은 새 발의 피다. (나) “대소신료들이 떼지어 날 겁박하는 것이냐” “난 어진 임금이 아니다. 부덕한 임금이라 마음대로 한다.” “내가 세 살 먹은 아이들을 달래는 것 같구나.” “너희가 정승이냐?” “친형제 같은 원로대신도 날 친견하지 않는다. 너희가 무슨 물건이기에 날 보려고 하는..
201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