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12. 12:36ㆍ佛敎
‘하나만 봐도 보살된다’는 고려 불화 61점
국립중앙박물관, G20정상회의 기념전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5.2×59.1cm, 일본 게조인(華藏院) 소장. 지장보살과 시왕 등을 한 폭에 그렸다. 지장은 중생을 교화·구제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죽은 자에 대한 죄의 경중을 다루는 10명의 왕이다. 지장은 맨머리로 표현되나, 고려불화에선 두건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불교미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고려불화 61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이 G20정상회의를 기념해 마련한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가 11일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해 다음달 2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은 우아한 빛으로 가득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림이 뿜어내는 기운은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고려불화는 원나라 침공으로 강화도로 옮겨간 고려 조정이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부터 약 120년간에 걸쳐 제작됐다. 이 짧은 시기에 제작된 그림은 전 세계 160여 점밖에 남아있지 않는데다 그 중 10여 점만 국내에 있을 따름이다.
이번 전시 유물은 모두 108점. 고려불화가 61점이고 동시대 일본과 중국의 불화 20점, 조선 전기 불화 5점, 고려시대 불상과 공예품이 22점이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총 44개 기관에서 작품을 빌려왔다. 관련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고려불화는 워낙 귀하기에 한두 점만 봐도 불보살의 경지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61점이라니. 수월관음도만 해도 12점이나 나란히 걸려 있어 비교해가며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0×51㎝,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보218호. 아미타불(그림 오른쪽)이 보살들을 거느리고 극락왕생할 사람을 맞이하러 오고 있다. ▶
고려불화의 특징 중 하나는 색채다. 민병찬 전시팀장은 “동시대 중국불화 보이는 청색이 고려불화에는 보이지 않는 등 이웃나라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지역마다 나는 안료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붉은빛만 해도 중국의 것은 조금 더 선홍에 가까운 반면, 고려의 것은 다소 어둡다.
조선 미술의 영향으로 한국의 미는 흔히 단순하고 검박한 것이 특징이라 알려져 있지만 고려불화는 눈에 띄게 화려하다. 특히 금가루를 아교에 갠 ‘금니(金泥)’로 표현한 영향이 크다. 중국이나 일본은 붉은 가사가 단색으로 표현되는 반면, 고려의 것은 당초문·모란문 등의 문양을 금니로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 가사자락의 주름을 섬세히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요, 투명한 사라(紗羅·베일)에 직조된 무늬까지 그려 넣었다.
중앙박물관 미술부 배영일 학예연구사는 “물방울무늬의 광배가 전신을 감싸 ‘물방울 보살’로 불리는 일본 센소지 소장 수월관음도는 금니를 머리카락 한 올짜리 붓으로 찍어 그렸으리라 추정될 정도로 그 섬세함이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아야만 보인다. 조선 전기까지 고려불화의 기법이나 도상이 전해지긴 하나 그 섬세함은 확연히 떨어진다. 고려불화의 발원문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임금은 하늘처럼 오래 사시고 왕비는 만년토록 오래 사시기를’이란 문구가 흔히 등장한다.
고려불화는 단순히 인간의 손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호국과 성불의 염원이 그려낸 그림이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479/4515479.html?ctg=1700&cloc=home|list|list3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2010.10.12 01:25 입력 / 2010.10.12 01:32 수정
[양상훈 칼럼] 우리 생애 단 한 번의 사랑
700년 만에 만난 연인과 단 한 번의 사랑을 하고 이제 헤어진다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날 듯했다
고려와 국난을 함께했던 세계 최고의 고려 불화들… 세계를 떠돌다 고국에 왔다
거란은 고려를 세 차례 침공했다. 그 전쟁 하나하나에 나라의 존망이 걸렸다. 고려는 때로는 패하고 때로는 이기면서 끝내 자기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앙이 닥치면 절에 부처 그림을 바치고 국난 극복을 기원했다.
1000년 전 그 어느 때 한 절에서 관음보살도(圖)를 바치는 의식이 열렸다. 그곳에서 낭독된 축원문이 '동국이상국집'에 남아 있다. "…엎드려 원하건대 빨리 큰 음덕을 내리시고 이내 묘한 위력을 더하사, 지극히 인자하면서 무서운 광대천처럼 적의 무리를 통틀어 무찌르게 하고, 무의 신통으로써 그 나머지는 저절로 물러나 옛 소굴로 돌아가게 하옵소서."(고려불화대전·국립중앙박물관) 지금도 나라의 사정이 같아선지 그 간절함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려군은 퇴각하던 거란군을 압록강 근처에서 매복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고려군의 화살은 위력을 배가해 거란군 진영으로 쏟아졌다고 한다. 관음보살이 우리 선조의 애절한 기원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믿고 싶다.
당시 내 가족과 우리나라를 지켜달라는 기원식이 열렸던 사찰마다 불화(佛畵)가 걸렸다. 고려 불화는 비단에 금을 포함한 광물질로 만든 안료로 그렸다. 뒷면에도 칠을 하여 안료가 배어 나오게 한 뒤 앞에서 색깔과 명암을 보완하는 배채법을 사용했다. 그 구도와 문양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교한지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금으로 그린 문양 선 사이의 간격이 비단 올 간격과 같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고려 불화가 세계 최고의 종교 미술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이런 예술성과 기교 때문만이 아니라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전력을 다해 그렸던 그 절실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외국 여행을 하면서 문화적 열등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려 불화와 우리 사찰을 알게 되면서 이를 극복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지금 고려 불화는 160여점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못난 후손 탓에 이 땅엔 10점밖에 없다. 그 이유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고려 불화는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로 흩어졌다. 불교와 불화를 모르는 미국의 한 박물관은 전시 규격에 맞춘다고 이 보물의 한쪽 부분을 잘라내기도 했다. 나라를 잃고 세계를 떠돈 한 민족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그림을 그렸을 어느 조상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만 같다.
고려 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각국의 박물관들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당연히 쉽게 대여하지 않는다. 일본에선 아예 전시조차 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세계에 흩어진 고려 불화를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 일을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관들이 해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선 고려 불화 66점이 전시되는 대전(大展)이 열리고 있다. 고려 불화 특별전은 전 세계를 통틀어 몇 차례밖에 열리지 못했고, 그나마 소규모였다. 이 기회는 아마도 앞으로 수십년 내에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의무감 같은 것을 갖고서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니 일본에서 온 아미타불도가 맞는다. 고려의 어느 화사(畵師)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와 한 후손을 인자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경이로운 표현, 기하학적인 문양, 따뜻한 색감을 통해서 우리 조상의 기원과 고난이 눈에 밟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고려 불화 특유의 온화한 붉은색이 인상적이었다. 중국 불화의 붉은색은 가볍고, 일본 불화의 붉은색은 강한데, 고려 불화는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붉은색을 갖고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 온 시왕도(十王圖)의 붉은색들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남아 있는 고려 불화는 대부분 몽골군이 고려를 침공한 이후에 그려진 것이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전시회에 '700년 만의 해후'라는 부제를 붙였다.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700년 만에 만난 연인과 내 생애엔 다시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사랑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연인들이 이제 얼마 안 있어 다시 이 땅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림과 불교를 알든 모르든 많은 분이 시간을 내어 우리 민족이 이룩한 최고의 예술품들을 만났으면 한다.(그림 보호 때문에 실내가 어두우니 공연 관람용 단안경을 갖고 가면 세밀한 표현들을 좀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9/2010101902422.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4 양상훈 편집국 부국장 입력 : 2010.10.19 23:00 / 수정 : 2010.10.20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