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맛의 비밀

2011. 11. 30. 20:59生活

김치맛 비밀은 유산균, 무 없으면 ‘무산균’

[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김장은 과학이다

김치 박사 정가진 교수에게 듣는 발효의 마법

김장 김치 한 포기에는 무채와 마늘·고춧가루·젓갈 등 다양한 양념이 들어간다. 알맞게 익은 김치의 깔끔한 맛은 ‘김장 과학’의 결정체다. 김치 맛은 김장 담그는 이의 손맛에 달려 있다지만 숨겨진 비밀은 유산균이다. 유산균이 없는 김치는 익지도, 상큼한 맛도, 감칠맛도 나지 않는다. 겉절이 비슷한 일본의 ‘기무치’가 되고 만다. 발효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장철을 맞아 김치의 과학을 ‘김치 박사’로 불리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정가진(57·사진) 교수와 탐험해 본다. 김장 김치는 유산균의 ‘소우주’다. 김장 김치를 막 담가 놓으면 그 속에 뒤섞여 있는 잡균과 유산균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토를 넓히고, 마릿수를 늘리기 위해서다. 문제는 생활환경이다. 잡균은 산소가 포함된 공기를 좋아하고, 유산균은 산소를 싫어한다. 막 담근 김치와 국물 속에는 산소가 많지만 금방 소진된다. 처음에 번성하던 잡균은 산소의 결핍과 유산균의 번성으로 설 자리를 잃고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산소가 없어진 국물에 잠긴 김장 김치는 이제 유산균의 세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막 김장을 했을 때는 ml당 1만 마리 정도인 유산균 수는 김치가 익었을 때는 6000만 마리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때는 유산균이 김치 속을 완전히 평정한 상황이다. 이때 김치 한 젓가락만 먹어도 무려 40억~50억 마리의 유산균을 함께 섭취하는 셈이다. 김치 속 유산균은 배춧잎과 물관 등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있기 때문에 장(腸)까지도 생균 상태로 도달하는 놈이 많다.

유산균은 김장 김치 속의 ‘화학 공장’이나 다름없다. 유산균의 먹이는 배추와 무·고춧가루 속에 들어있는 포도당과 과당, 양념과 버무려 들어간 설탕이다. 과당은 꿀과 과당시럽의 주성분이다. 유산균은 이들을 먹고, 김장 김치의 독특한 맛을 내는 여러 물질들을 배설한다. 이를 발효 부산물이라고 하며 젖산과 초산, 주정(酒精), 덱스트란(Dextran: 감칠맛 나는 점성 물질), 만니톨(당 알코올), 이산화탄소 등이다. 젖산은 신맛을, 초산은 신맛과 냄새를, 주정은 술 냄새를, 덱스트란은 감칠맛을, 만니톨은 단맛을, 이산화탄소는 소위 톡 쏘는 탄산을 만든다. 이들이 어우러져 김장 김치의 맛을 낸다.

잘 익은 김장 김치의 산성도는 pH 3.5~4.5다. 콜라는 pH 2.8이다. 식탁에 음식을 내놓을 때 김장 김치를 가장 늦게 내놓으면 탄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장독을 열어 김치를 꺼내 먹기 시작하면 다시 유산균에게 시련이 닥친다. 김치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면서 효모와 같은 잡균이 다시 제 세상을 맞는다. 그래서 국물 표면이나 국물 밖으로 나온 배추에는 허연 골가지가 핀다. 그러면서 군내 등 역한 냄새도 난다. 효모는 또 배추김치의 아삭아삭한 식감(食感)을 주는 성분을 분해해 김치가 물러지게 한다.

김치가 익는 과정의 유산균 발효는 영하 1도~영상 15도 사이의 온도에서 복잡하게 일어난다.

일본의 ‘기무치’는 살짝만 절이고, 거기에 염소 소독까지 하기 때문에 유산균이 거의 없다. 그래서 발효 김치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산 김치는 발효 김치이기는 한데 유산균 종류가 한국과 다르다. 토종이 그 속에 없는 것이다.

김치 유산균은 20여 종이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해 국제학회에 보고한 것만 6종이다. 김치 유산균은 생명력도 강하다. 김치 유산균을 우유에 넣으면 펄펄 살아 치즈를 만들지만, 우유에서 추출한 유산균을 김치에 넣으면 곧 죽어 버린다. 김치 유산균의 항암 효과, 아토피 치료 효과 등 질병 치료 효과도 여럿 보고되고 있다.

◆ 무는 ‘맛의 미다스’

김장 김치를 담글 때 무채를 속으로 안 넣으면 어떨까. 그러면 김장 김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큼한 맛도 나지 않고 익기도 전에 상해 버리기 십상이다. 무에는 배추뿐 아니라 다른 양념 어디에도 없는 유산균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를 넣어주지 않으면 결정적으로 김장 김치 맛을 좌우하는 유산균이 거의 자라지 못하고, 잡균만 무성해 김장 김치 본래의 맛을 내지 못한다.

김장철에 재발견하는 무의 진가다. 양배추김치·물김치·갓김치·죽순김치 등 어느 김치를 담가도 무를 넣지 않으면 제대로 익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무가 한국의 ‘발효 김치’ 맛의 열쇠 중 열쇠인 셈이다.

마늘은 유산균의 공급처다. 맨 처음 마늘을 까면 표면에 유산균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20~30분만 그릇에 담아 두면 어디에서 왔는지 수십 종의 유산균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마늘을 넣어주지 않으면, 유산균 공급이 제대로 안 돼 김장 김치가 일찍 상한다. 정 교수는 배추 무게의 0.5% 정도의 마늘을 넣어주면 좋다고 한다. 동물성 아미노산은 유산균의 먹이 역할을 한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38/6783738.html?ctg=1603&cloc=joongang|home|newslist1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1.11.30 01:49 / 수정 2011.11.30 19:37

◆ 유산균(乳酸菌·Lactic Acid Bacteria)

눈에 보이지도 않는 0.5~2㎛(㎛:1000분의 1㎜) 크기로 당분과 아미노산 등을 먹고, 젖산을 생산하는 균. 우유를 치즈로 만들거나 김치를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십 종이 발견됐으며 김치 유산균은 20여 종이다.

[김장은 과학이다] 설탕 염려증 버리세요. … 유산균이 이로운 물질로 바꿔

배추 무게의 1% 넣으면 좋아

건강을 지키려면 세 가지 흰 것을 멀리하라는 말이 있다. 소금과 설탕, 백미다. 그러나 김장 김치에서만큼은 설탕을 피하면 손해다. 설탕을 적당량 넣으면 김치 맛이 안정되고 맛이 좋아진다. 유산균이 설탕을 먹고 배출한 물질은 설탕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설탕 발효’라고 한다. 설탕으로 인한 건강 염려증을 버려도 되는 이유다. 정가진 교수는 배추 무게의 1%에 해당하는 설탕을 넣는 게 좋다고 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유산균이 설탕을 먹으면 그 결합을 ‘효소 가위’로 잘라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리한 뒤 생화학 과정을 거쳐 덱스트란과 만니톨을 만들어 낸다. 배추와 고춧가루 등에는 포도당과 과당은 있으나 설탕은 들어 있지 않다. 과당은 과당시럽과 꿀의 주성분이다. 김치 맛을 깊게 하는 유산균은 포도당과 과당·설탕을 먹고, 부산물인 젖산·초산·주정·이산화탄소·만니톨·덱스트란 등을 만든다.

그런데 배추와 고춧가루에 있는 이들 당분의 양은 많지 않다. 그러면 유산균은 김장 김치의 깊은 맛을 내는 이들 부산물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가을 배추의 당분은 배추 무게의 최대 2.3%, 고춧가루는 30% 정도다. 설탕으로 이를 보충해주는 것이다. 만니톨을 예로 들어보자. 만니톨은 당분은 아니고 당 알코올이라고 하며, 그 단맛은 설탕의 절반 정도다. 유산균의 생존율을 높이고 세포 노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만니톨이 김장 김치에 많으면 맛도 좋다. 이를 ‘맛있는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설탕을 넣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 수확한 배추로 김치를 담그면 만니톨을 마구 먹어 치우는 유산균이 번성한다. 그래서 여름 김치에는 설탕을 더 넣어주면 좋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39/6783739.html?ctg=1603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1.11.30 01:50 / 수정 2011.11.30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