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8. 10:58ㆍ佛敎
[국제칼럼] 절돈 3,000원 내놓으라
성철스님 만나려면 3,000배부터 해야, 극한 고통 이겨낸 뒤 자기 불성 보라는 뜻
성철스님은 1993년 입적하기 전까지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서 30년가량 은거했다. 백련암은 가야산에서 가장 높이 자리하고 있지만 해인사 초입에서 30분 남짓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럼에도 굳이 '은거'라고 하는 것은 큰스님 스스로 벽을 만들어 외부와 경계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 벽은 다름 아닌 3,000배다. 큰스님은 나를 보려거든 '절돈 3,000원 내놓으라.'면서 누구든 예외 없이 이 기도를 주문했다. 친견할 때마다 매번 그랬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얽힌 일화도 여기서 생겼다. 1978년 구마고속도로 개통 때 박 대통령이 해인사를 찾아갔지만, 3,000배 조건 탓에 두 사람의 만남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소문과 달리 박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세상에선 대통령이 어른이지만 절에선 방장이 어른이므로 3배를 해야 한다. 그렇게 안 한다면 만나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는 것이다. 큰스님을 곁에서 모셨던 원택스님의 이야기다. 대통령에게 3,000배나 3배나 별 다르지 않을 터, 큰스님으로선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제5공화국 초기 희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세상을 흔들었던 장영자·이철희 부부가 큰스님 뵙기를 청했다. 친견만 허락한다면 큰손답게 종단의 불사를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사도 전했다. 성철스님이 조계종 종정에 막 취임한 상황인 만큼 일부 스님들의 권유도 많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큰스님의 추상같은 한마디가 떨어졌다. "절돈 3,000원이나 내놓으라고 해라.”
3,000배는 본디 과거·현재·미래 3대겁(大劫)에 출현하는 3,000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예법이다. 평소 절에 능숙한 신도라면 6~7시간이면 되지만, 처음하면 8~10시간은 족히 걸린다. 누구나 다 해내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수련회를 통해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100명 가운데 30~40명 정도라고 한다. 시작한 지 500배쯤 될 때 1차 고비가 온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그야말로 고행이다. 이 순간을 넘기면 대개 2,000배까지 가는데, 이 두 번째 고비가 문제다. 마(魔)가 끼어든다.
내가 이 짓을 왜 하지'하는 회의부터 온갖 망상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극한의 고통을 이겨야 하는 수행법이 아닐 수 없다. "큰스님을 뵙기 위해 3,000배를 하는 도중 온몸에 고통이 퍼져나갔지만, 하고 나니 신선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불자로 잘 알려져 있는 화승그룹 현승훈 회장의 경험담이다.
성철스님의 3,000배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려는 아만(我慢)이라거나, 생활불교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었다. 원택스님의 설명은 다르다. 큰스님이 권력과 돈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3,000배라는 만리장성을 일부러 쌓았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고난도의 수행을 요구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경계하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큰스님의 존재가 아니면 사그라질 줄 알았던 3,000배 기도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요즘 백련암은 주말이면 3,000배를 하러 오는 재가 수행자들로 붐빈다. 백련암 외에도 이 기도법을 권장하고, 수련회를 마련하는 사찰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지고 영혼을 위로 받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반증이라고 쇳소리 하는 사람도 있다.
꼭 30년 전인 1982년 부처님 오신 날 성철스님은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법어를 내렸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습니다.'. 오늘은 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속은 어지럽고 승은 혼돈스럽다. 불가에선 사람을 바꾸는 데 1,000일, 세상을 바꾸는 데는 1만 일의 공덕을 쌓아야 된다고 한다. 꼬박 3년과 30년의 세월을 바쳐야 하는 일이다. 염원하는 이들에겐 '절돈 3,000원'도 티끌 같은 시줏돈인 셈이다. 성철스님 법어집을 뒤적이다 보니 유독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지 승려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그것은 천당도 극락도 아닌 지옥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볼 일이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봐서는 안 된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20528.22023194251 박무성논설위원 jcp1101@kookje.co.kr 2012-05-2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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