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31. 11:18ㆍ人文
김태길, 윤리적 사회의 조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세 가지 규제 방법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충동에 따라 멋대로 행동한다면 잠시도 충돌과 혼란이 그칠 때가 없을 것이니, 사회가 사회로서 존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 성원들의 행위에 어떤 규제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로, 강제성을 띠고 밖으로부터 행위자에게 가해지는‘강자의 힘’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은 폭력과 위협이다. 법에 의한 질서도 그 본래의 성격으로 말하면 ‘힘의 질서’의 한 유형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은 그것을 어긴 사람에게 강제적 제재를 가한다는 전제 아래 제정되는 것이며, 이 전제는 국가 권력이라는 막강한 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다만 현대 민주 국가의 법은 두 가지 점에서 무법자의 폭력과 다르다. 우선 민주 국가의 법은 그것의 규제를 받을 국민들 자신의 참여를 거쳐서 제정된다는 점에서 자유 계약에 의한 규범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단순히 타인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과 다르다. 또한 민주 국가의 법은 국민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규제라는 점에서 힘에 의해 마지못해 굴종하는 폭력과 다르다.
둘째로,‘사회적 이목(耳目)’도 우리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남의 칭찬과 비난을 의식하게 마련이며, 이것이 우리들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칭찬과 비난의 주체가 되는 이목은 그것이 자신의 밖에 있다는 점에서 외적 규제력이다. 그러나 무시해도 강제적 제재가 따르지 않으므로 강자의 힘과는 다르다. 강자의 힘이 본질에 있어 물리적이라면 이목은 심리적이다. 이것은 그것이 자신의 밖에 있다는 점에서 ‘남의 힘’에 가깝고, 그것이 심리적이라는 점에서는 ‘내적 자제력’에 가깝다. 이목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것은 그 사회의 도덕적 통념에 입각한 비난 또는 칭찬이다. 남을 평가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주관적인 비난이나 칭찬은 사람들이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치 판단을 포함하는 도덕적인 이목이다.
다음으로‘자제력’은 양심이나 이성에 바탕을 두고 행위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가하는 내적인 힘이다. 그것은 자율적인 능력이라는 점에서 타율적인 힘이나 이목과 크게 다르다. 힘이나 이목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사람들은 밖으로부터의 규제가 없을 경우에는 제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외부의 감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방종에서 오는 사회적 불안을 막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내부에 존재하는 양심이나 이성의 감시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충분히 강력하기만 하다면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위에서 말한 어느 한 가지만이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의 정도의 차이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힘이 행동 규제를 위한 주된 장치로 기능을 하는 사회도 있고, 이목이나 자제력이 큰 힘으로 작용하는 사회도 있다. 윤리적 견지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 행위는 행위자의 자율에 따른 것이면서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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