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8. 13:05ㆍ生活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겨울아이'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1930년대 '겨울 출생이 약하다' 주장, 임신기간 짧아 미숙아 출산율 높아
'봄 출생이 면역력 약하다'는 연구도… 임신 중 겨울 지나 비타민D 합성 부족
과학적 사주는 운명론보다 예방 강조… 운동선수 생일 몰리는 건 취학 연령 탓생일(生日)은 누구에게나 기쁜 날이다. 하지만 생일 축하 노래만큼은 편애(偏愛)가 있다. 1년 내내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부르다가, 겨울만 되면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이라는 '겨울아이'로 바뀐다. 1970년대 이종용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인데, 얼마 전 한 TV 드라마에서 '국민 첫사랑' 수지가 불러 청소년 사이에 다시 인기를 얻었다.
편애는 안쓰러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1930년대 과학자들은 겨울에 태어난 아이들이 다른 계절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건강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성장이 더디고 정신 질환에 걸리기 쉬우며, 심지어 수명이 짧다고까지 했다. 이쯤 되면 태어난 연월일시 네 간지(干支)로 점을 치는 사주(四柱)도 근거가 있다고 나설 판이다. 과연 태어난 날이 건강을 좌우하는 것일까.
요즘 1930년대 연구 결과를 그대로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산모를 좀 더 세밀히 분석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계절보다는 어머니의 인종이나 교육 정도가 아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 산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임신 기간에 영양 섭취 상태가 달라져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출생 계절과 건강 사이의 연관성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8일 미국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인 재닛 퀴리(Curie) 교수는 '과학적 사주'의 근거를 출생 시점이 아니라 임신 시점으로 바꾼 연구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퀴리 교수는 먼저 분석 대상을 바꿨다. 무작위로 아기를 선택해 분석하면 산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나 건강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연구진은 대신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비교해 이런 문제를 차단했다. 분석 대상은 뉴욕·뉴저지·펜실베이니아주의 산모 64만7050명이 낳은 아기 143만5213명이었다.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조사 결과 5월에 임신을 하면 임신 기간이 다른 달보다 1주일가량 짧았다. 미숙아 출산율도 13% 높았다. 아기의 체중도 다른 달보다 가벼웠다. 아기 체중이 가장 무거운 경우는 6~8월 임신으로, 다른 달보다 8g 무거웠다.
이번 연구 결과 역시 겨울아이에게 불리하다. 5월에 임신을 하면 겨울에 아기를 낳는다. 총각들은 5월 임신이면 10개월 지나 3월에 태어난다고 하겠지만, 임신 기간의 기준이 음력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여성의 생리주기가 음력을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아기는 40주 280일, 양력으로 9개월 7일쯤 지나 세상에 태어난다. 연구진은 5월 임신이 조산을 부르는 원인으로 독감을 지목했다. 5월 임신한 아기가 태어나는 2월에 계절 독감이 극성을 부린다.
과학적 사주는 아직도 논란 중이다. 겨울아이가 아니라 '봄아이'가 더 문제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4월 영국 연구진은 5월에 태어난 아기는 11월생 아기보다 탯줄 혈액의 비타민D 수치가 20% 낮고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는 현저하게 많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때문에 5월생 아이는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할 위험이 크다는 것.
비타민D는 피부가 햇빛을 받을 때 만들어진다. 연구진은 5월에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배 속에서 어두운 겨울을 났기 때문에 비타민D가 부족하고, 그 결과로 면역체계가 약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확실한 것은 임신 시점이든, 출생 시점이든 어머니 배 속의 아기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는 것처럼 미리 조심하고 신경 쓰면 누구보다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적 사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도 있다. '가을아이'가 운동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 조사에서 영국 프로축구리그 상위 클럽 선수의 40%가 가을에 태어났으며, 여름에 태어난 선수는 15%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운동선수 중엔 '봄아이'가 많다. 단국대 권민혁 교수(체육교육과)는 2000년 국내 프로축구 선수들의 출생 월을 일반 남성과 비교했다. 일반 남성은 겨울 출생이 가장 많고, 봄·여름·가을이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반면 프로축구 선수는 봄 출생이 41.5%로 가장 많았다. 겨울 출생은 16.7%에 그쳤다. 2007년 국내 프로야구 선수의 출생 월 조사에서도 봄 출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한국의 차이는 학기(學期)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학기는 3월에 시작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가 만 6세 2월생부터 7세 3월생까지 발부됐다. 결국 봄에 태어난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자라고 학교에 가므로 상대적으로 운동선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은 9월부터 학기가 시작돼 가을에 태어난 아이에게 유리하다. 동안(童顔)이 경쟁력인 우리나라 연예계에는 또래보다 어린 2월생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7/2013071703874.html 이영완 산업부 과학팀장 입력 : 2013.07.18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