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8. 09:29ㆍ受持
[만물상] 어머니의 입
화가 김병종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한평생 혼자 살림을 꾸려 자식들을 키웠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일하며 노동요(勞動謠)처럼 찬송가를 나직이 불렀다. 유행가는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새벽녘 잠이 깨면 건넌방에서 기도 소리처럼 단조롭게 들려오던 찬송가. 그것은 인생이라는 절망의 바다를 힘겹게 노 저어 가며 토해내는 한숨 소리였다. 김병종은 어머니 입가를 떠나지 않던 그 가락을 그리워한다.
▶떠돌던 소설가 윤대녕이 집에 왔다가 어두운 방에서 저녁을 드는 어머니를 뵈었다. 밥상에는 김치와 깻잎장아찌, 냉수 한 그릇뿐이었다. 아들이 "어찌 이런 저녁을 드시느냐?"고 여쭸다. 어머니는 못 보일 일이라도 들킨 듯 돌아앉으며 말했다. "늙은 여자가 혼자 먹는 밥상은 다 이런 거다. 어느 어미가 저 혼자 배불리 먹겠다고 따로 밥상을 차린 다더냐?" 집 떠난 자식 생각하면 어머니 입은 깔끄럽기만 하다.
만물상 일러스트
▶젊을 적 가난에 몰린 시인 함민복이 상계동 산꼭대기 셋방에 모시고 살던 홀어머니를 시골로 보내드려야 했다. 이모댁으로 가던 충주 터미널에서 어머니가 고깃국을 먹자고 했다. 어머니는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먹으면 귀에서 고름이 나왔다. 그런 어머니가 고깃국 먹자는 뜻을 아들은 알았다. 어머니는 "설렁탕이 짜다."며 주인에게 국물을 더 달라더니 몰래 아들 투가리에 부어줬다. 어머니는 자식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야 비로소 배가 부르다.
▶6년 전 조선일보 사회면에 자그맣게 실린 기사를 잊지 못한다. 한밤중 서울 어느 시장통에 혼자 쭈그리고 있던 여든한 살 할머니를 경찰이 발견했다. 아들딸이 서로 "어머니를 데려가라."고 다투다 버려둔 할머니였다. 경찰이 남매를 존속유기 혐의로 입건하자 할머니가 사정했다. "내가 오래 산 거지, 우리 아이들은 죄가 없어요. 안 모시겠다고 한 적도 없어요. 다 내 자식인데…." 자식에게 버림받아도 어머니는 자식을 미워하지 못한다.
▶말기 신부전증을 앓는 예순여섯 살 할머니를 아들이 길가에 버리고 달아났다. 할머니는 경찰이 물어도 "아무것도 묻지 말라."며 입을 다물었다. 경찰이 보낸 복지시설에서도 "집이 예산에 있다. 아들이 있다"고만 할 뿐 끝내 아들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 사흘 만에 숨졌다. 경찰은 그제 외아들을 존속유기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어머니의 입은 자식에게 해될 말을 결코 내뱉지 않는다. "내리사랑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다. 자식 사랑 가없다 해도 영원한 짝사랑인가 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23/2013102303807.html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입력 : 2013.10.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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