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정구지)

2021. 8. 28. 10:35日記

50년이나 지난 꽤 오래 전에 글을 읽다가 ‘부추’란 말을 접했다. 무엇인지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봤지만 채소는 채소인데 사전의 설명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르시었다. 궁금하여 이지저리 물어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서울댁’이란 택호를 지닌 이웃 분이 답을 주었다. 그것이 바로 부산에서 말하는 ‘정구지’라고. 나는 부산 출신이니 정구지 밖에 몰랐고, 어머니는 ‘함안’ 분이니, 서부 경남에서 말하는 소나 먹는 다는 뜻의 ‘쇠풀’로만 알고 계셨으니까 모르셨을 것이다. 알고보니 이 부추가 지방마다 그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다.

부추는 흔히 시설농가에서 대량으로 재배하는 부추 말고, 재래 부추란 것이 있다. ‘영양부추’ 또는 잎이 좁아 솔잎 모양을 하고 있어서 ‘솔부추’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마트 등에서는 제법 고급에 속하는 것이라 한다.

지난 3월 17일 밀양장에서 ‘솔부추’ 두 판을 사서 텃밭에다 심었는데, 꽤 맛도 있고 다른 부추와 달리 보관도 오래 할 수 있다. 친구들이 오면 조금씩 나누기도 한다. 구획을 하여 수확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베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정식하려고 부추 상자를 텃밭 축대에 놓고 다니다가 발을 헛디뎌서 1m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무 아파서 한참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6개월이 지난 아직도 허리가 뻑쩍지근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부추를 일컫는 말로 '부부간의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 준다.'고 하여 정구지(精久持)라 했다. 신장을 따뜻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좋게 한다고 하여 온신고정(溫腎固精)이라 하며, 남자의 양기를 세운다 하여 기양초(起陽草)라고도 하며, 담을 넘을 정도로 힘이 생긴다 하여 '월담초',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면 초가삼간이 무너진다고 하여 파옥초(破屋草), 장복(長服)하면 오줌 줄기가 벽을 뚫는다 하여 파벽초(破壁草)라고도 했다.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과 "봄 부추 한 단은 피 한 방울보다 낫다." 는 말도 있다. "부부사이 좋으려면 집 허물고 부추 심는다." 는 옛말도 있고, 체력이 떨어져 밤에 잘 때 식은땀을 많이 흘리며 손발이 쉽게 차가워지는 사람이나 배탈이 자주 나는 사람에게도 좋다고 한다. 아무튼 보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부추 씻은 첫 물은 아들은 안주고 사위에게 준다."는 말이 있는데, 아들에게 주면 좋아할 사람이 며느리이니 차라리 사위에게 먹여 딸이 좋도록 하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햇정구지는 사위도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가 내용이 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부추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전설도 있다.

옛날 어느 두메산골에 한 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노승 앞에서 죽음의 기운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어서 따라 가보니 허름한 초가집 앞에 이르렀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위한 염불송경(念佛誦經)을 하자 안주인이 나와 시주를 하는데 얼굴을 보아하니 수심이 가득했다.

스님이 부인에게 무슨 근심이 있느냐고 묻자 남편의 오랜 병환이 걱정이라고 했다.

스님이 안주인의 신색(神色)을 자세히 살피 보니 안주인의 강한 음기(陰氣)가 문제였다. 부인의 강한 음기에 남편의 양기(陽氣)가 고갈되어 생긴 병이었다.

스님은 담벼락 밑에서 흔히 무성하게 잘 자라는 풀잎 하나를 뜯어 보이며, 이 풀을 잘 가꾸어 베어다가 반찬을 만들어 매일같이 먹이면 남편의 병이 감쪽같이 나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부인은 시키는 대로 그 풀을 잘 가꾸어 음식으로 만들어 지극정성으로 남편에게 먹였더니 신기하게도 남편은 점차 기운을 차렸다. 남편은 오래지 않아 완쾌되어 왕년의 정력을 회복한 데 그치지 않고, 밤새도록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도 힘이 남아돌게 됐다.

부인은 온 마당에, 그리고 기둥 밑까지 파헤쳐 그 풀을 심었다. 남편은 매일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같이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부인은 집이 무너질 걱정은 않고 이 기둥 저 기둥 밑을 온통 파헤쳐 이 풀을 심어댔다.

그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집 기둥 모두가 공중으로 솟구쳐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집이 무너지는 것도 모르고 심은 이 영험(靈驗)한 풀의 이름이 바로 ‘집을 부수고 심은 풀’이라는 뜻의 ‘파옥초(破屋草)’라고 했다.

'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투티의 방문  (0) 2021.11.09
단풍 색깔이 고운 화살나무  (0) 2021.11.05
성하의 제비  (0) 2021.08.20
반가운 후투티  (0) 2021.06.04
진귀한 손님  (0)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