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6. 11:41ㆍ日記
어르신 문해교육
오늘 보라마을 수업(2015.10.19.)
보라마을에서 학습에 참가하는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고, 수업시간은 야간입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 국가교육기관이 미비하였고, 극심한 남녀차별 등 사회적 여건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의 이웃입니다.
요즈음은 해가 많이 짧아져서 어둑어둑하여 출발해서 보라마을에 도착하면 이미 한밤중입니다. 가르치는 나보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에게 글눈을 뜨게 해드린다는 자부심과 뿌듯함, 보람이 이 모든 스산함을 날려버립니다.
오늘 돌아올 때에는 초승달이 서쪽하늘에 걸려있고, 언제나 그렇듯 가로등도 없는 야심한 밤중입니다. 도시에 살 때에는 아무리 한밤이라도 이렇게 불빛이 아쉬운 밤이 있었던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보라마을에서 24번 국도로 진입하기까지는 그야말로 가로등 하나 없는 심연(深淵) 같은 어두움뿐입니다. 가로등 없기는 24번 국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어두운 국도에서 뒤따르면서 옆을 스쳐가는 자동차의 불빛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는 열두 명 중에서 네 명이 결석하고 두 명이 지각을 하였습니다.
하얀 억새와 울긋불긋한 만산의 홍엽(紅葉)이 극치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농부님들은 오늘도 깻잎 따느라고, 고구마 거둔다고, 벼 베고, 나락 말린다고 녹초가 되지만, 날이 어두워도 집으로는 물론이고, 보라한글교실에도 출석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글눈을 뜨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지만, 생업이 더 앞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사는 분들이 항상 행복하고, 흙에서도 보람을 찾으시고 또한 글눈도 좀 더 빨리 뜨기를 기원합니다.
<참고> 밀양시에서는 2015년 하반기부터 이들을 위하여 문자해득 기회를 주는 뜻 깊은 교육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밀양시 문해교육협회 초대회장(2015) 배흥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