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논리학

2009. 11. 28. 19:34受持

선택의 논리학(디트리히 되르너 지음, 이덕임 옮김, 프로네시스, 368쪽, 1만5000원)

선택의 명수들은 `그물망 사고`를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난다. A를 바로잡으니, B가 엉망이 되고, B를 손 봤더니 이젠 C가 문제를 일으킨다. 도대체 끝이 없다. '골칫거리 총량 불변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개인은 물론이고 조직이나 정부도 늘 겪는 일이다.

왜 그럴까. 저자는 현실의 복잡성과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우선 저자는 현실을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해한다. 어떤 문제 하나를 건드리면 이와 연관된 일들이 줄줄이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상황이 설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슨 결정을 할 때는 급한 불을 끄려고만 하지 말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시스템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른 표현으론 '그물망 사고'다.

이런 현실에서 한 가지 목표만 겨냥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는 되레 새로운 문제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저자는 이를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해 보인다. 가상의 공간에 사는 부족의 지도자가 돼 주민 복지를 증진시키라는 과제를 내자 참가자들은 너도나도 병원 짓고, 가축 늘려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줬다. 그 결과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 생산도 늘었다. 그러나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지하수와 목초지가 고갈돼 기근이 닥쳤다.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사실 이런 일은 굳이 실험을 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강남의 아파트 값 하나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잡고야 말겠다는 정권의 불타는 의욕이 대표 사례 아닌가. 그런 의지 앞에서 시스템적 사고는 의지박약이나 좌고우면으로 비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도 중시한다. 촉박하게 닥쳐오는 일에 몰입한 나머지 일의 경중을 가리지 못하는 바람에 실패했던 사례도 제시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상황을 넣었다면 사례가 훨씬 풍부해졌을 법하다.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연금 개혁, 공교육 개선,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산적해 있는데도 기자실 없애는 데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또 실패가 '좋은 의도'에서도 비롯된다고 경고한다. 대개 의도가 선하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목적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에 더욱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마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혁명운동이 현실적인 지옥을 만들어냈듯 말이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한 이 책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실패학'의 독일판인 셈이다.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에겐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1986년 독일의 최고 과학자상인 라이프니츠 상을 받았다. 남윤호 기자 중앙일보 2007.06.01 19:53 입력 / 2007.06.02 05: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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