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12:44ㆍ政治
개구리를 기억하세요?
“새벽부터 밤중까지 뼈 빠지게 일했다. 부모님 모시고 애들 잘 키우겠다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밖에서나 집에서나 언제 잘릴까 불안하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
오십 고개 안팎의 직장인이 모이면 흔히 나오는 소리다. 취업 5종 세트(학점, 토익, 해외연수, 인턴십, 공모전 입상)를 완비하고도 비정규직이 된 88만 원 세대는 물론,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살아남은 대학 신입생들까지 모두가 불안하다. 이 불안을 한 방에 날려 줄 구세주처럼 그들은 새 정부를 기다려 왔다.
글로벌 변화 외면도 罪다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출범 닷새도 안 돼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좌파정부든 우파정부든 내 식구 챙기기는 마찬가지고, 국민 삶은 별로 달라질 수 없을 거라는 냉소가 번져 간다.
‘옳은 말을 그토록 싸가지 없이’ 하던 전임 정부에 데었는데 이젠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싸구려 골프회원권이 2개” “교수 부부가 재산 30억 원이면 양반” 같은,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새 정부에 급속 화상을 입게 생겼다. 이러다간 이명박 정부가 펼치는 어떤 정책도 그들끼리 잘해 먹으려는 음모가 아닌지 더 불안해진다.
그러나 대통령만, 인사만, 정책만 잘하면 내 불안도 저절로 해소될 거라는 착각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민의에 따라 행정부를 갈아 치우는 제도이지, 경제를 살리거나 전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이랄 수 없다. 미국의 대공황을 끝장낸 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연구가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공공지출은 요샛말로 포퓰리즘이었고 경제 침체를 질질 끌고 갔을 뿐이다.
‘벌써 레임덕’ 같은 이명박 정부가 인사는 망쳤어도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는 점에선 천만다행이다. 작은 정부, 큰 시장 등 새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 정책은 1978년 덩샤오핑이, 1979년 마거릿 대처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앞장선 이래 세계적으로 성공이 확인된 정책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빈부 차를 확대시켰을 뿐이라며 주체사상보다 사악하게 보는 사람들을 위해, 하버드대학 안드레이 슐레이퍼 교수는 시장파와 반시장파 경제학 논문집을 분석한 최근 논문 ‘밀턴 프리드먼의 시대’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같은 학자는 틀렸다”고 꼭 집어 지적했을 정도다.
성장과 번영을 선택한 국가는 탈규제, 감세, 민영화로 가고 있고 최근엔 교육과 직업훈련을 강화해 세계화에서 뒤처진 국민까지 껴안는 추세다. 집권세력이 보수든 진보든 심지어 중국 같은 독재정권이든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이 방향으로 나가는 한, 뭐든 잘못되기만 하면 대통령 탓이나 하면서 면책 특권을 누리는 시대는 갔다. 이런 글로벌 변화를 모르는 것도 글로벌 세상에선 죄다.
튀어나갈래, 우물 안에서 죽을래?
개구리가 아무리 우물 안에서 안온하게 살고 싶어도 우물물까지 펄펄 끓게 만드는 게 세계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한탄해 봤자 소용없다. 변화에 적응할 줄 아는 개구리는 안 되겠다며 튀어나가지만 뭔가 달라진다, 뜨거워진다 하면서도 순응하는 개구리는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승부욕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변화와 경쟁을 즐기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는 경쟁을 통해 개개인과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고, 파괴의 불안이 있기에 끊임없는 창조와 발전 역시 가능하다. 그래서 ‘창조적 파괴’ 아니던가.
새 정부가 스마트하게 정책을 집행해 나가면 참 좋겠지만 안 그래도 다음 선거까진 어쩔 수 없다. 대통령 탓할 시간에 내 경쟁력부터 키우는 게 남는 장사다. 동아일보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입력2008.02.28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