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12:46ㆍ人文
'예기주소(禮記注疏)' 대학(大學)편에는 공직자의 축재(蓄財) 기준에 대한 사례가 실려 있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마승(馬乘)을 기르는 대부는 닭이나 돼지를 기르지 않고, 상제(喪祭)에 얼음을 쓰는 대부는 소나 양을 기르지 않고, 백승의 가문〔百乘之家〕은 취렴(聚斂:백성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걷는 것)하는 신하를 두지 않는다.
취렴하는 신하를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다. 맹헌자는 노(魯)나라 대부 중손멸(仲孫蔑)을 뜻하는데, 마승은 초시(初試)에 합격한 대부(大夫)가 타는 4필의 말이 끄는 수레이고, 상제에 얼음을 쓰는 대부는 경대부(卿大夫) 이상을 뜻하고, 백승의 가문은 전쟁 때 백승의 전차를 동원할 수 있는 대국의 경대부로서 자신의 식읍(食邑)이 있는 가문을 뜻한다. 국록(國祿)을 받는 벼슬아치로서 백성들의 생업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부당한 세금을 거둬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동중서(董仲舒) 열전에는 노(魯)나라 무공(繆公) 때 재상이었던 공의자(公儀子)가 부인이 비단을 짜는 것을 보고 노해서 쫓아버리고, 식탁에 아욱〔葵〕이 오른 것을 보고 마당의 아욱을 뽑아버리며, "내가 국록을 먹는데, 어찌 여공(女工)과 농부의 이익을 빼앗는가?"라고 꾸짖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과 '일사유사(逸士遺事)'에는 비슷한 조선 사례가 전해진다.
영조 때 호조의 서리였던 중인 김수팽(金壽彭)이 선혜청의 서리로 있는 아우의 집에 갔더니 제수(弟嫂)가 염색업을 하고 있었다. 김수팽은 동생을 매질하며, "우리 형제가 다 후한 녹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한다면 저 빈자(貧者)들은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냐?"면서 염색 항아리를 모두 엎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앞의 '대학'편은 '이를 일러 나라는 이(利)로써 이로움을 삼지 않고, 의(義)로써 이로움을 삼는다고 말하는 것이다〔此謂國不以利爲利以義爲利也〕'고 결론짓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고위 공직자는 이(利)가 아니라 의(義)를 추구해야 하며, 지닌 재산도 형성 과정이 의심스러운 탁부(濁富)가 아니라 청부(淸富)여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이덕일 입력 : 2008.02.28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