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14:37ㆍ人文
운은 과연 존재할까
“운 좋은 한 정치인 총선 실패 불구 전화위복 정권 실세로, 운 나쁜 다른 정치인은 총선 당선됐지만 구설 휘말려 고통”
“운 좋게 테스트에 합격해 축구 시작했어요.” - 전북현대 축구선수 김형범
“1977년에 프로 전향한 것은 제겐 큰 행운이었어요.” - 권투선수 박찬희
“운이 좋았죠. 대학 4학년 때 대통령상 받았거든요.” - 서양화가 주태석
운(運)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운의 탓을 하기도 하고, 뜻밖에 일이 잘 풀리게 되면 운의 덕으로 그 공(功)을 돌리기도 한다. “운이 좋다, 나쁘다, 있다, 없다, 행운이다, 불운이다, 호운이다, 악운이다, 길하다, 흉하다, 강하다, 약하다….” 운에 관한 각종 표현은 많기도 많다. 말끝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운이란 대체 무엇일까.
동양에선 예로부터 운의 실체를 파악하고 따지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런 노력은 필연적으로 명(命)을 살피려는 연구와 궤를 같이했는데, 운과 명 즉 ‘운명(運命)’이라 부르는 이 두 글자에 대한 이해는 삶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따지는 명리학(命理學)으로 집성됐다.
運은 자갈길의 스포츠카와 고속도로의 경차
한국정신과학회의 설영상 이사는 “성리학(性理學)이 우주의 질서에 관한 연구라면, 명리학은 인간의 명에 관한 연구”라며 “명이 생긴 것을 생명(生命)이라 하며, 운이란 그 생명을 운행하는 기운을 말한다.”고 말했다. 설 이사는 “명에 대한 이해는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된다”며 “명을 전생의 인연, 다시 말해 업(業)의 덩어리라고 보는 것이 불교라면, 명을 원죄라고 보는 것은 기독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운과 명을 살피는 명리학에선 운이 인간의 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자갈길을 가는 스포츠카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경차를 비유하면서, 아무리 자질이 우수해도(스포츠카라도) 운이 나쁘면(자갈길을 가면) 최고 속도를 내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運은 대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명리학자 노해정씨는 한 정치인의 예를 들어 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운이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지역구 선거에서 떨어진 겁니다. 의아했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낙선한 것이 오히려 잘됐더라 이겁니다. 얼마 뒤 정권이 바뀌면서 그 사람에게 막후에서 활동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이 정치인은 이를 통해 능력을 발휘, 실세로 전면에 등장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김모 전 의원의 경우)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노씨가 말을 이었다. “운이 좋지 않았을 때 총선에 당선된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당선 직후부터 구설이 생겼어요. 결국 선거법 위반 시비가 불거져 불명예를 얻었습니다.”(정모 전 의원의 경우)
노씨는 “이런 사례는 ‘과연 무엇이 길하고 무엇이 흉한가?’ 하는 철학적 사고로 이어진다.”며 “나아가 행운은 곧 불운으로 이어지고, 불운은 다시 행운으로 이어진다는 동양의 전통적 주역 사상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주역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변역(變易) 사상, 그러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는 불역(不易) 사상, 변화하는 모습은 알아보기 쉽다는 이간(易簡) 사상의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며 “이에 따르면 운명의 커다란 흐름은 바꿀 수 없지만, 사람에 따라 안 좋은 운이 올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노씨가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로 든 것이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해 세상을 안타깝게 했던 탤런트 최진실씨다. 노씨에 따르면 최진실씨는 동료 연예인 O모씨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한다. “명리학에선 같은 연·월·일을 타고 나면 대운(大運·운의 커다란 흐름)이 같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O씨와 최씨는 같은 운을 타고 났다고 봐야죠. 그런데 왜 한 사람은 세상을 등졌고, 다른 한 사람은 구설을 겪었느냐. 운명 역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의 주체가 어떤 시각으로 자신의 운을 대하느냐에 따라 큰 흐름은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작은 흐름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죠.”
이 같은 노씨의 시각은 “모든 것은 미리 결정돼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이를 바꿀 수 없다”는 결정론과 상반된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며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결정론자들은 명심보감(明心寶鑑) 순명(順命) 편을 근거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공자는 이 글을 통해 “죽고 사는 것은 본래 정해진 명이 있고 부하고 귀함은 하늘에 달려있다(生死有命富貴在天), 모든 것이 이미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부질없는 인생만 저 혼자 바쁘도다(萬事分已定浮生空自忙)”라고 한탄했다. 결정론자들은 이 말에 대해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無以爲君子也)는 논어(論語)의 다른 말과 상통한다.”며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運은 변하는 것, 얼마든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동론자들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이들은 논어의 이 구절을 “군자는 자기의 명을 알기에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욕심을 멀리하는 마음의 수양을 강조한다.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씨 역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조씨는 “동양학에선 ‘누구로부터 얻어맞을 운일 경우, 안 맞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쇠몽둥이로 맞을 것이냐, 회초리로 맞을 것이냐는 선택이 가능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조씨는 대표적인 사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 입문 후 한동안 어렵게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켜 일대 선풍을 일으켰죠. 그 뒤에 벌어졌던 극적 드라마를 기억할 겁니다. 정몽준 의원과 단일화를 이뤄내 대통령에 당선됐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탄핵 바람을 맞았죠. 하지만 그걸 딛고 일어나 크게 한판을 먹었습니다. 이런 유형을 명리학에선 괴강(魁剛)이라고 합니다.”
조씨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괴강(魁剛)’이 현실적으로 무슨 얘기냐. 자기주장이 아주 강하다는 의미예요. 노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은 높은 고공에서 아래를 관조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판세를 보는 눈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서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판 붙는 거죠. 이기면 장땡이고, 지면 자기 고집에 자기가 넘어갑니다. 이게 뭐냐. 성격이죠. 그러니까 운이란 뭐냐.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성격입니다. 그럼 운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무엇보다도 성격을 바꿔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격을 바꾸기가 쉽습니까. 보통 사람은 하기 힘들죠. 그러니 어떻게 하느냐. ‘매사 작은 것에 감사하며, 덕을 쌓으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運 바꾸려면 훌륭한 스승을 만나라
국내 첫 기학(氣學) 박사인 명지대 김종업 교수 역시 이 같은 견해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기가 움직이는 것을 기운(氣運)이라 하고, 명이 움직이는 것은 운명(運命)이라 한다.”며, 운에 대해 “그 자체가 기본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명은 어떻게 정해지며, 운은 어떤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는가. 김 교수는 인간 중심의 우주관을 피력한 동양학의 고전 ‘천부경(天符經)’을 인용해 운의 이치를 설명했다. “천부경엔 ‘우주는 하늘·땅·사람의 3극(極)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로, 때에 따라 나뉘어도 그 근본은 다하지 않는다(一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며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죠. 일반적으로 운이 좋으냐 아니냐를 따지는 척도는 본인이 의도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일 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인 자신이 빚어낸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김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럼 운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선 자신의 내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내게 일어났던 결정적 사건들을 반추해 보고, 그 각각의 인과관계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죠. 그러면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좋은 스승입니다. 삶과 죽음의 실체를 알려줄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적선이죠. 공자도 ‘착한 일을 꾸준히 하면 반드시 경사가 따르고, 악한 일을 많이 하면 재앙을 만나게 된다(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세 가지를 꾸준히 행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운이 따라오게 됩니다.”
運 바꾸려면 자신을 찾아 내면을 성찰하고 선행 베풀라
동양학자 조용헌씨는 순위를 다르게 꼽았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김 교수와 같은 시각을 취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선(積善)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되지요. 주변의 도움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큰 힘이 됩니다. 두 번째는 현명한 스승, 즉 명사(明師)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 선생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느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 이게 좋은 선생입니다. 세 번째는 독서와 성찰입니다.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스스로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죠. 그 다음 네 번째가 기도와 명상입니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자기 운명에 대한 안목을 스스로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17/2008101701179.html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입력 : 2008.10.17 17:23 / 수정 : 2008.10.1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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