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궁금증

2009. 12. 9. 12:32職業

한화 김승연 사건 세간의 궁금증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서 ‘폭행 현장의 미스터리’ 외에, 세간에는 또 다른 궁금증이 떠돌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거의 한 달 보름이나 지나 언론에 보도된 이유는 무엇인지, 재벌마다 경호조직이 있는 것인지, 김 회장 아들이 갔다는 술집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등이다.

○ 왜 한 달 보름 지나 보도됐나?

이 사건은 지난 3월8일에 발생했다. 하지만 4월24일 연합뉴스에 첫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이런 시차가 있었던 것일까.

사건 발생 직후부터 증권가와 언론 쪽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의도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지(속칭 ‘찌라시’)에 김 회장 보복 폭행 건이 거론됐고, 한국일보와 국민일보, MBC, KBS 등이 이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거나 제보를 받았다. 사건 발생 나흘째인 3월12일, 이와 관련된 제보를 받은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사건 현장이었던 서울 북창동 S술집의 조모 사장을 만났다. 조 사장 지인의 상가(喪家)에서 직접 폭행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그러나 조 사장이 “한화 측의 합의 요청이 있고 나도 이 건을 덮고 가기로 했다”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하는 바람에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역시 제보를 받은 뒤 2~3일 취재를 시도하다가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하는 바람에 중도 포기했다. MBC와 KBS 역시 사건 취재를 시도하다가 당사자와 경찰 모두 확인을 해주지 않아 기사화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언론사들은 피해자와 한화측이 모두 언론 보도를 원하지 않은데다, 경찰이 ‘모르쇠’ 작전으로 나오는 바람에 보도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서울시 경찰청 출입기자 사이에서도 이런 첩보 내용이 나돌았지만, ‘워낙 황당하고 소설 같아서’ 기사화해야겠다는 생각은 대부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연합뉴스가 처음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뉴스 공병설 시경 출입기자는 “타 언론사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어느 정도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건을 제보 받은 즉시 취재에 나서 4월24일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모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술집에서 폭행당하자 경호원 등을 동원해 보복성 폭력을 휘둘렸다는 첩보가 입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나오고 사흘 뒤 4월27일 한겨레신문이 김 회장의 실명을 거론한 뒤 그가 직접 폭력에 가담했다고 보도하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한화측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사건 관련자들을 내사해왔다”며 “경찰 관계자가 언론에 제보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제보를 접한 연합뉴스가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내사(內査)를 했던 내용인 ‘3월28일자 경찰 첩보보고서’를 입수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리 취재에 나선 언론사들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연합뉴스의 경우 경찰이 작성한 문건이 있었기 때문에 김승연 회장의 실명만 공개하지 않고 사건의 내용을 보도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재벌 경호팀 실체는?

과연 모든 대기업이 경호조직을 운영하는 것인지, 과연 그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한화와 삼성그룹, 현대차 등은 경호원들을 별도로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경호팀이라는 이름 대신 비서실의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한화의 경우, 김 회장 직속 경호원들은 8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조직상에는 경호 관련 팀은 없다”고 말했다. 언론에 보도된 ‘경호과장’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그런 직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비서실 소속으로 되어있다. 2~3명이 한 조(組)가 돼 경호를 하며 3교대로 운영된다. 경호원들은 대부분 청와대 경호실이나, Y대와 H대 출신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정상 승진이 보장되는데다 웬만한 직원들보다 대우가 낫다고 말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계 순위 10위인 한화에서 유독 경호팀이 눈에 띄는 것은 김 회장 개인 특유의 ‘과시하는’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직접 면접을 통해 경호원들을 특채하고 있어 일반 직원들은 이들의 실체에 대해 접근이 곤란하다. 김 회장의 폭행 현장에 함께 했던 일부 건장한 청년들은 한화의 건물 경비 등을 담당하는 S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이 회사 대표 오 모 씨는 한화 출신이다.

삼성은 ‘에스원’에서 파견 나온 직원을 중심으로 이건희 회장 경호팀을 가동하고 있다. 에스원측은 “이 회장과 가족들의 경호를 위해 직원들이 파견 나가 있다”며 구체적인 인원이나 경호 시스템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하지만 한 경호업체 사장은 “평상시에도 이 회장 경호에만 6명의 경호팀이 가동된다.”며 “아들과 딸 등 가족에 대해서도 1~2명씩 경호원이 따라붙는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 출신들이 삼성에 상당수 정식 직원으로 고용돼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정몽구 회장 경호를 위해 경호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호원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등에 대해 관계자들은 “회장 경호는 대외비 사항”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경호업체는 “기업에 채용된 경호원들은 단일 종목 4단 이상의 무술실력과 순발력 등이 탁월한 자들로 구성된다.”며 “회장들의 일정이 외부에 노출돼 있지 않아 경호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LG, SK, 두산 등 나머지 대기업은 경호원들을 두고 있지 않았다. 이들 회사의 회장들은 수행 비서를 대동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 역시 계열사나 하청업체 노조들의 시위나 테러 위험 발생 등 회장에 대한 경호가 불가피할 경우, 경호업체와 계약 형식으로 경호원들을 일정 기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경호·경비업체 수는 2500여개. 종사자 수는 약 12만 명에 이른다.

○ 청담동 술집은 어떤 곳

사건의 발단이 된 서울 ‘G가라오케’는 청담4거리 근처 빌딩 1층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내․외관 인테리어나 술값 등이 A급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자주 찾는 곳은, 바로 주변에 있는 H가라오케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 업소 관계자는 “김 회장 아들이 왜 H가라오케가 아닌 G가라오케로 갔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마도 H가라오케에 빈 방이 없어서 그곳으로 갔을 것이라는 게 유력한 해석이다.

일반인들에겐 청담동은 부유층 자제들만 드나드는 A급 업소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좀 다르다. 청담동은 술집 종업원이나 접대부들도 근무가 끝난 뒤 새벽 2~5시에 모여 자기들끼리 스트레스를 풀며 술을 마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이 청담동에서 술을 마셨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G가라오케는 국산 양주 1명, 안주, 기본음료, 맥주 5병 등을 기본으로 해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룸 DJ(방에 들어와 음악을 틀어주는 도우미)는 없다. 이런 업계에서는 룸 DJ의 유무가 가라오케의 등급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다. 이곳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손님들이 대부분이며, 유흥업소 종업원들도 최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병선 기자 bschung@chosun.com 입력 : 2007.05.04 23:03 / 수정 : 2007.05.05 14:33

○ 조선일보 편집장에게 부탁합니다! 김승연씨 관련기사를 준엄한 법의 집행 때까지 고정란을 두어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돈이면 다된다는 쓰레기들(일부재벌 또는 졸부들…)의 인식을 바꾸고 법이 살아있음을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05/06/2007 02:42:49)

○ 이제 좀 알 것 같다. 언론도 기업회장이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 안 써주는구나 그러니 이 나라 수장도 열 받지 왜 기업회장은 봐주고 이 나라 대통령을 갈구는가? 입장 바꿔 생각해봐 열 안 받겠는가? 기업회장이 이나라 수장 보다 높은가? 연합뉴스가 아니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소.…(05/05/2007 23:56:29)

○ 그때 청담동 술집에서 맞고 청담동 경찰서로 직행했으면 완벽하게 회장 아들이 피해자이고 북창동 술집 애들은 인생 쫑이 되는 것이다. 회장 아들도 일반인처럼 똑같이 그런 상황에서 경찰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김 회장은 암만 생각해도 자식 교육에 대한 책임감에서인 거 같다. 제발 공부들 좀 하고 빨리 어른이 되어라.(05/05/2007 23:40:24)

○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가 이래서 중요하다. 결국 회장 아들이 어려서 미숙했다. 친구도 있었던 술집에서 폭행을 당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친구의 도움으로 청담동 소재의 경찰서로 직행했어야 했다.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경호원부터 불러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확대해석하면 재벌2세의 권력성이고 사실대로 해석하면 젊은이의 미숙함뿐이다.(05/05/2007 23:35:41)

○ 이번 사건의 핵심은 폭행 자체를 떠나, 돈 많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이를 감싸는데 있다. 노블리제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란 한국 지도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돈이면 다 통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05/05/2007 21:28:33)

○ 이번 사건을 통하여 우리 국민들이 새삼 확인하게 된 가장 실망스럽고 우려스런 점은 경찰이 보여준 그 불공정하고 무능력한 수사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늑장수사에 무성의한 압수수색 등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 경찰 수준이 진짜 겨우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철저한 반성과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05/05/2007 18:25:40)

○ 이번 '김승연' 사건은 아직 미성숙된 우리 사회의 정의감과 윤리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승연'같은 자가 버젓이 대기업 회장 노릇하며 우리 사회를 활개 친다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김승연 사건이 감춰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재벌과 언론, 수사기관들 사이의 마피아 뺨치는 거대한 커넥션 및 서로 봐주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05/05/2007 18:06:39)

○ 조선일보가 하고 싶은 말은 터지고 보니까 아주 큰 사건인데 "낙종"한 이유는 연합뉴스가 유능했던 것도 아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이 눈감아주거나 무능해서 알지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순전히 환경 탓에 누군 특종하고 나머지는 낙종했다는 얘긴데. 그 밑에 앞뒤 순서도 안 맞게 술집과 경호원 얘기는 참으로 궁색하다. 추측이지만 재벌의 일이다 보니 눈 꼭 감은 게 진실 아닐까…(05/05/2007 17:27:02)

○ 독자들이 진짜 궁금한 건 그 많은 기자들이 그 유능한 기자들이 특히 우리가 신뢰하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이 사건을 그토록 오랫동안 몰랐었는가 하는 것과 우리가 보기엔 가장 용기 있어 보이는 이 사건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연합뉴스 기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05/05/2007 16:14:28)

○ 경찰이 재벌에 눌려 피해자의 증언이 있음에도 구속영장도 신청 못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군요. 오히려 재벌의 막강한 변호인단에 위축된 검찰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시켜 버릴까봐, 더욱 확실한 증거를 찾느라 시간을 끄는 것 같군요. 경찰의 재벌아들 출국 금지신청을 기각한 검사나. 피의자 인권 운운한 검찰총장의 발언이 오히려 더 의심이 가네요.(05/05/2007 15:54:39)

○ 재벌기업들 경호팀 실체를 알아내려고 애쓴 정병선 기자의 노고가 가상하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밤의 대통령'이라는 언론재벌 방 씨네 경호팀도 짱짱할 것인데, 기왕이면 정 기자가 자사 사정도 아는 대로 토로했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05/05/2007 14:53:27)

○ 미국이나 일본 같으면 이런 회사의 총수와 기업을 가만히 놓아두었겠는가? 그래서 다들 한국서 살기 싫다고 나가려고 하는 거다!! 누구하나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정치인 하나 없는 것 보면 정말 이 나라에 소신 있는 국회의원 검사 사회지도층이 있는 나라인지 한심 그 차제이다!! 모래시계 검사한분 안계십니까? 취조실에서 국민을 대신해서 뺨이나 한대 시원하게 갈겨 주세요!!(05/05/2007 12:28:10)

○ 한화가 연초에 로고 바꾸고 뻑적지근하게 새 출발 하면서 전 최기문 경찰총장을 고문으로 쓴 겁니다. 최기문은 노무현 때 첫 임기제 총장인 동시에 경찰 지위 향상에 힘을 써서 부하들한테 신망이 높다죠. 김동원이랑 북창동애들이랑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나도 아리송하고, 김승연이 방패 믿고 깝치다가 딱 걸린 거 같기도 하고. 암튼 이 사건 나고, 민주당만 묵묵부답 입 다물더군요.(05/05/2007 10:28:06)

○ 화약공장 재벌이란 자가 이정도로 형편없는 비인격자라니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북조선의 김정일의 횡포를 알만하다. 칭하여 재벌. 돈이 좋아 회장님이지 하는 꼬라지를 보면 조폭행동대원 다름없다. 국민의 사랑으로 그만큼 이루었으면 사회에 봉사하고 후학을 길러 민족의 장래를 걱정해야지 하늘보기가 부끄럽다. 또 외국으로 튈 때가 됐는데.(05/05/2007 10:10:39)

30분마다 전화·벨 15차례 “안 계시는데요.”

‘H 그룹 K 회장’ 실명 밝히며 굵직한 특종에 편집국 후끈

26일 목요일 밤 9시. <한겨레> 편집국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설’로만 나돌던 ‘H 그룹 K 회장의 보복 폭행’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임을 확인한 <한겨레>는 다음날 1면 머리기사로 이를 보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상을 놀라게 할 사건이었다.

재벌회장이 경호원을 동원해 자신의 자식을 때린 술집 종업원을 납치해 집단폭행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해외토픽감이었다. 사회부 기자로서는 가슴이 뛸 만큼 ‘사건’이었다. 선배기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겨레>의 김승연회장 폭행 관련 보도는 오랜만의 ‘굵직한 특종’인만큼, 기자들은 마치 군사작전을 감행하듯 긴장하면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수습 딱지 떼기 하루 앞두고 ‘흐뭇’하게 관전하다 ‘아뿔싸’

나를 비롯한 새내기기자 몇몇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19시간 뒤면 지난해 말 시작된 ‘수습기자’ 교육과정이 끝난다.” 힘들었던 수습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수습기자를 제외한 경찰기자 전원이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선배기자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절로 흐뭇했다. “고생하시오. 모두들.”

그러나 아뿔싸. 불똥은 내게도 튀었다. 밤 12시가 되자,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종로구 가회동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집 앞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새벽 6시 대기 지시에 “이번 기회에 특종…” 각오 다져

이른바 ‘뻗치기’인 것이다. 중요사건이 벌어지면 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마치 낚시대를 드리우고 미끼를 물고기가 오기를 기다리듯, 김 회장 집 앞에서 기사거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잠이 잘 오질 않았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멋진 특종을 잡아보리라 각오를 다졌다. 다음날 새벽 6시 김승연 회장 집으로 ‘출근’했다. 그런데 김승연 회장의 얼굴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새벽에 제작된 <한겨레>신문을 사서 얼굴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 날짜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김승연 한화회장이 직접 때렸다"는 제목을 굵게 새겨 놓았고, 김 회장의 얼굴 사진도 함께 실었다. 아침 6시30분. 배도 고팠다.

신문 동나 택시기사 무려 편의점 5군데 들러 겨우 구해와

신문을 사려면 현장을 떠나야 한다. 내가 신문을 사는 동안 김 회장이 외출을 해버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콜택시가 생각났다. 콜택시 기사를 불렀다. 그리고 “돈을 줄 테니 <한겨레> 신문과 빵을 사 달라.”고 했다. 콜택시 기사는 이런 ‘이상한 주문’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알았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무려 5군데 편의점을 들린 끝에 신문을 사왔다. 신문이 모두 팔려 택시비가 1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택시비에 빵과 우유, 신문 비용을 다 합치니 1만3천원이란다. 2000원 더 얹어서 1만5000원을 드렸다. 콜택시 기사는 “그럼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CCTV 여러 대 있고 10미터 높이 울타리…, 타사 기자는 아직 모르는 듯

금요일 아침 김 회장 집은 의외로 조용했다. 주민들은 이곳이 김승연 회장 집인 줄 몰랐다. 10-20분마다 관리인들이 나와 주위를 관찰했고, 조용한 아침을 깨는 사람은 나와 경비원들뿐이었다. 김 회장 집에는 여러 대의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집 울타리는 10미터 이상의 높이였다. 집 뒤 편에는 차량만 주로 다니는 뒷문도 있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한겨레>가 이날 아침 보도한 김 회장 관련 기사를 아직 보지 못했는지, 집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차 한 대 빠져나간 뒤 전화했더니 “1시간 전에 나갔다.” 뻔한 거짓말

오전 7시20분께 검게 선탠을 한 승용차가 한 대 빠져나갔다. 막아서려 했으나 누가 탔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김 회장께서 집에 계시느냐, 언제 나갔냐?”고 물었다. “오전 6시 20분에 나가셨다.”고 일하는 아주머니가 답했다. 그러나 이 시각에는 아무도 안 나갔으므로, 거짓말이었다. 김 회장 집 앞에서 대기한 첫날 금요일.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8시간 동안 김 회장을 기다렸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김 회장 경찰출석 두 번 거부하다 강제구인 방침에 굴복

경찰은 토요일인 28일 오전·오후 2번에 걸쳐 경찰에 김 회장이 출석할 것을 통보했으나, 김 회장은 두 번 모두 거부했다. 경찰이 강제구인 방침 등 강경방침을 밝히자 김 회장은 일요일인 29일 오후4시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경찰에 밝혔다. 토요일 오전·오후의 가회동 집앞 상황도 관심사항이었지만, 신문은 일요일치가 없으니 토요일 상황을 처리하기에는 여유가 있었다.

아예 정문 앞에 자리 깔아놓고 들락거리는 사람들에 말붙여

29일 일요일 오전 7시에 다시 김 회장 집 앞으로 찾아갔다. 김 회장이 오후 4시에 서울 남대문경찰서 폭력 팀에서 조사받기로 했다. 9시간을 더 대기해야 했다. 이번에는 아예 정문 앞에 가방을 놓고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말을 걸기 위해서였다. 오전 8시55분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출근했다.

“차라도 한 잔 달라” 요구에 겨우 문 배꼼

김 회장 집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자마자, 관리인이 문을 열어줬다. 관리인은 “여기 있어봐야 만나기 힘들다. 기자 선생 입장을 이해하지만, 안 계시는 분을 어떻게 만나려 하느냐?”고 말했다.

관리인이 문을 닫았다. 관리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집 앞에 계속 대기하고 있는데, 들어오라는 얘기도 안 하느냐? 차라도 한 잔 안 주나”고 말했다. 그러자 관리인은 잠시 후 커피 한 잔을 가져왔다.

수소문해 김 회장 자택 전화번호 2개를 알아냈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한화그룹 직원의 핸드폰번호도 알아냈다. 30분마다 번갈아가면서 집전화, 핸드폰, 벨 누르기를 했다. 그때마다 관리인과 일하는 아주머니가 받았지만 한결같이 “안 계신다.”는 답뿐이었다. 모두 15번 연락을 시도했는데, 한 번은 또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김 회장 부인 같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 알고 왔습니다, 인터뷰하시지요.”에 안 계신다는 말은 안 해

“사모님 맞으시죠? 회장님 좀 바꿔주세요. 안에 계시는 것 다 압니다. 저는 한겨레기자입니다.”

“회장님은 집에 안 계십니다.”

“다 알고 왔습니다. 회장님과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한겨레 독자나 국민들께 해명하십시오. 인터뷰를 있는 그대로 실어드리겠습니다.”

전화 상대방은 이 때 “안 계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두 차례 벤츠와 에쿠스 등 집 밖으로…, 기자들 우르르

오후 1시39분 검은색 벤츠와 에쿠스 승용차가 집 밖으로 나갔다. 진한 선탠으로 이 차에 누가 탔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미리 와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뒤늦게 나도 따라 나섰지만, 확인되지 않았고 4시에 남대문경찰서에 출두할 사람이 언론에 노출돼가며 일찍 나갈리 없다고 보았다. 차도 되돌아왔다.

오후 3시16분. 또 다른 에쿠스 승용차가 김 회장 집에서 나갔다. 이번에는 모든 언론사가 뒤쫓아 갔다. 김 회장 집에서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 쪽에 한화그룹이 있었다. 거기까지 쫓아간 언론사도 있었으나, 김 회장이 승차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되돌아왔다. 이때 나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내가 차량을 막을 테니, 차창 안으로 김 회장인지 아닌지 확인하라”고 말했다.

길 막아서자 살짝 위협…, 김 회장 비슷한 용모로 ‘변장’

또 다른 에쿠스 승용차가 내려왔을 때 나는 도로 한 가운데서 차량을 막았다. 에쿠스 승용차 운전자는 겁을 주기 위해 내 무릎을 살짝 밀쳤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앞 쪽에서 보면, 승차한 사람들이 김 회장과 비슷했다. 비슷한 안경에 비슷한 머리스타일까지. 순간 경비원들이 나를 잡아챘다. 나는 버티며 승용차 범퍼 위쪽 가운데에 있는 장식물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위장전술이었다. 김 회장은 없었다.

마지막. 오후 3시45분. 아예 택시를 불러 대기시켰다. 이번에는 무조건 추격하기로 했다. 출두시각 15분 전이니, 김 회장이나 취재진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었다.

출두 15분 앞두고 택시 불러 대기…벤츠 따라 가능한 한 최고속도로

45분. 검은색 에쿠스가 출발하고, 이어 검은색 벤츠가 나가자, 나는 대기시켰던 택시에 올라타 가능한 최고속도로 추격했다. 광화문 앞에서 신호가 걸리자 방송사들이 도로 한 가운데서 김 회장을 촬영했다. 시속 100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속도로 김 회장 차량은 도로를 질주했고, 또 남대문 앞에서도 광화문 앞과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너무 빨리 달려 속도위반에 걸릴 것 같았지만 김 회장보다 먼저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경들에게 가로 막혔다. 김 회장은 자택에서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남대문 경찰서에는 1백여 명의 취재진들이 김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2만원을 주었다. 평소에는 5000원이면 충분할 거리였다.

딱 한줄 챙긴 ‘팩트’…, ‘수습기자 정옥재’ 마지막 임무 마무리

이틀에 걸쳐 17시간 넘게 김 회장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다 택시를 잡아타고 도심의 추격전을 벌이며 챙긴 ‘팩트’는 아래와 같이 신문에 한 줄로 반영되었다.

[해당기사] 김회장, 종업원 4명과 심야 대질신문, 재벌 회장 사상 첫 폭력혐의 경찰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6157.html)

오후 3시45분께 김 회장을 태우고 종로구 가회동 김 회장의 집을 떠난 검은색 벤츠 차량은 비상등을 켠 채 빠른 속도로 달렸다. 차는 광화문과 남대문에서 신호등에 걸리기도 했지만 10분 만인 3시55분께 남대문경찰서에 도착했다.

수습기자는 취재와 기사작성의 기본적인 기능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한 줄의 사실이 신문에 실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29일 그렇게 ‘수습기자 정옥재’의 ‘마지막 임무’는 마무리되었다. 수습 ‘과정’을 마치고 이제 부서에 배속됐다. 포부처럼 ‘특종’을 하지는 못했지만, ‘기자로서의 기본’을 배운 과정이었다. 한겨레신문 온라인뉴스팀 정옥재 기자 jungock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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