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7. 21:50ㆍ生活
시달린 '속' 푸는 데는 역시 돼지국밥
"피란 온 이북 사람들, 돼지로 만든 설렁탕에서 유래"
돼지국밥 송(頌) 1편
춥고 배도 고프다. 이럴 때는 돼지국밥이 최고이다. 돼지국밥집 앞에서 낯선 서울 말씨가 들린다. "부산 사람들은 돼지도 국을 끓여 먹어?" 정말 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다. 모르는 것도 이해는 된다. '돼지국밥'은 사전에도 안 나오고, 여태까지 레시피도 없었단다. 돼지국밥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래서 이번 주 맛면은 '돼지국밥송(頌)' 1편, '돼지국밥을 위하여'이다.
나눠먹기에 이만한 음식이
부산의 아무개 돼지국밥집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시켰다. 해장에는 역시 돼지국밥이 최고이다. 뜨끈한 국물이 전날 고생한 속을 달랜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인다. 돼지국밥을 먹을 때는 왜 소주를 시켜 반주하는 경우가 많은 걸까. 설렁탕이나 곰탕을 먹을 때는 그렇지 않는데 말이다. 설렁탕의 유래부터 찾아봤다. 설렁탕은 신농(神農)에게 제사를 지낸 후 군(君), 신, 민이 고루 나누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여기에는 적은 양의 고기를 많은 식구가 나눠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하지만 설렁탕이나 곰탕에는 고기라고 해봤자 대여섯 점이 고작이다. 돼지국밥은 '국 반 고기 반'이다. 밥을 먹고 딸려 나온 고기로 술을 한 잔하기에 돼지국밥만 한 게 없다. 가격은 4천∼5천 원대로 아주 '착하다'. 맨밥만 먹고 버티기에 힘이 들 때 돼지국밥이 생각난다. 야근할 때도 돼지국밥이다.
피란민들 정착하며 향토음식
돼지국밥은 서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반면 부산, 마산, 밀양, 대구 등 경상도에서는 아주 흔하다. 특히 부산에는 왜 이렇게 돼지국밥집이 많은 걸까. 알고 보니 돼지국밥의 유래와 관련이 있다. 전 신라대 식품영양학과 김상애 교수는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 온 이북사람들이 돼지로 설렁탕을 하면서 비롯되어 경상도의 고유음식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또 "돼지국밥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고기를 넣고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돼지국밥은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고유의 음식이라기보다 시대적 사회적 토대 위에서 탄생한 음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대중적인 음식으로
세계미식가협회 부산지회장인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김종헌 상무가 가장 즐겨먹는 음식은 의외로 돼지국밥이다. 김 지회장은 "돼지국밥은 부추, 고추, 양파 등 야채와 육류의 밸런스가 아주 잘 맞다. 저녁 약속이 없고 격식을 차리고 싶지 않은 자리에 아주 편하게 찾는 음식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재벌 회장이나 서민이나 모두 다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어서 매력이 있다" 고 말한다.
최영철 시인은 "돼지국밥은 돼지고기 외에도 부추, 마늘 등 성질이 강한 것들이 한 그릇에 뒤섞여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묘한 음식이다. 뜨거운 김을 훌훌 불어가며 돼지국밥을 먹고 나면 처진 마음이 일으켜 세워진다. 돼지국밥은 파닥거리는 야성이 살아있는 음식이다"고 말했다.
'식객'으로 이름난 허영만 화백도 알고보니 돼지국밥 마니아이다. 식객 제15권 '돼지고기 열전'에 돼지국밥 이야기가 나온다. 허 화백은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먹고 올까 할 정도로 돼지국밥 생각이 난다. 돼지국밥은 한 그릇의 음식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다"라고 말했다. 돼지국밥을 먹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경상도 사람들의 피에는 돼지국밥의 육수가 흐르는 게 아닐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지금 국회의장도 단골"
■ 부산 서구 토성동 신창국밥
돼지국밥에도 계보가 있다. 설렁탕을 연상시키는 뽀얀 색깔의 국물을 '밀양 돼지국밥'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드물지만 곰탕식의 맑은 국물을 선보이는 돼지국밥집들도 있다. 60년 전통의 옛 보림극장 옆 골목의 할매국밥(051-646-6295)과 신창국밥, 지금은 사라진 고성집 등이 이 계열이다. 이 가운데 신창국밥이 창업자인 서혜자(70)씨의 직계가 하는 토성동 본점, 남천동점, 해운대점을 비롯해 서씨 조카가 하는 서면의 '서진철 신창국밥' 등으로 성업 중이어서 '신창국밥류'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서혜자씨를 만나 신창국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씨는 1969년 중구 신창동의 구호물자를 파는 케네디 시장에서 테이블 2개로 국밥집을 처음 열었단다. 3개월 만에 테이블이 6개로 늘었다. 간판이 없었지만 손님은 워낙 많아 서서 먹고 가기가 일쑤였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국밥도 김치도 듬뿍 퍼서 주었다. 몇 년이 지나 세무서에서 "이제는 세금을 내야한다"며 "상호를 뭐로 하겠냐?"고 물었다. 서씨가 "신창동이니 신창국밥이라고 하자"고 해서 신창국밥이 되었다. 신창국밥 육수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약재를 쓰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단다. 뼈와 고기를 곤 물에 직접 만든 순대를 넣어 어우러지게 하면 맑은 색이 나온다. 1995년에 특허 등록도 했다. 고기는 돼지 앞다리 고기를 쓴다. 전직 부산시장부터 국회의장까지 단골도 많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돼지국밥이 먹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단골도 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처음부터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맛이 똑같은 게 자랑이다. 돼지고기를 다룰수록 깔끔해야 한다는 게 서씨의 신조이다. 토성동 본점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0시. 일요일에는 쉰다. 본점은 복개천 중간 신호대 앞. 051-244-1112. 박종호 기자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091216000208 |35면| 입력시간: 2009-12-17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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