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1. 15:24ㆍ人間
[Weekly BIZ] 의사결정의 '함정' 을 돌파하라
인간은 직관적 사고체계와 이성적 사고체계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직관적 사고체계는 자연반사적인 사고체계를, 이성적 사고체계는 생각(thinking)을 동반하는 사고체계를 말한다.
그런데 의외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직관적 사고체계가 종종 활용된다. 현대의 경영 환경이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체계적으로 분석할 시간이 별로 없고 분석에 필요한 정보도 빈약한 경우, 의사결정자는 종종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동원한 직관적인 방법에 의존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결정 행태는 여러 가지 판단 착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의사결정의 함정을 살펴보자.
◀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 정보편향의 함정 내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 경청해야
정보 편향의 함정이란 동일한 출처, 동일한 내용의 정보를 중복해서 받아들임으로써 발생하는 자기합리화 및 객관화를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생각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는 정보를 찾고,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는 정보(비록 그 정보가 중복된 것이라 하더라도)에 애착을 갖는다. 이처럼 중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확신을 갖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단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 투자 귀재인 피터 번스타인이 작고 전 Weekly BIZ와 가진 인터뷰(2009년 4월 18일자)에서 "칼럼니스트나 전문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것은 귀 기울일 만한 대목이다. "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해요. 내 의견에 동조하는 글을 읽는 것은 쉽죠. 하지만 그건 시간 낭비입니다."
특정 정보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는 것은 심각한 판단 착오와 함께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비극이 초래된 이유도 사실은 미항공우주국(NASA) 관리층의 특정 정보에 대한 편향된 시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챌린저호는 역사상 가장 추운 날씨에 발사되었다. 사실, 추운 날씨가 고체 연료 추진 장치의 접합 부품인 오링(O-rings)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첩보가 발사 전 NASA에 입수되었다.
◀ 챌린저호 폭발 장면
그리고 NASA는 추운 날씨와 오링간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자료도 충분히 갖고 있었다. 하지만 NASA 관리층은 챌린저호를 제시간에 발사시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단지 일부의 자료, 즉 오링에 문제가 있었던 일곱 번의 발사 사례만을 분석해서 두 변수 간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오판을 내렸다. 그 결과 우주인 7명 의 목숨을 빼앗는 비극을 초래했다.
사고가 난 후, 뒤늦게 24번의 모든 발사 자료를 분석했더니 챌린저호가 발사된 날 오링에 문제가 일어날 확률은 99%를 넘었다. 온도와 오링 간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분석하려면 추운 날 오링에 문제가 생겼던 사례, 추운 날 오링에 문제가 생기지 않은 사례, 춥지 않은 날 오링에 문제가 생겼던 사례, 춥지 않은 날 오링에 문제가 생기지 않은 사례 등 4가지 경우를 모두 조사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NASA에서는 오링에 문제가 있었던 일부 사례만을 조사하여 두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성급히 결론짓고 챌린저호를 발사시킨 것이다.
이러한 정보 편향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가령 구조화된 브레인스토밍 과정(structured brainstorming process) 등을 도입해서 자신과는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기꺼이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생각이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당 주장을 지원하는 증거뿐만 아니라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도 모두 검토할 필요가 있다. 회의에서 대세에 편승하기보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devil's advocate)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지이불행(知而不行) 안다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
아는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Merck)가 자사의 관절염 치료제인 바이옥스(Vioxx)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뒤늦게 철수시킨 사례이다.
바이옥스가 심각한 심장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부작용 우려는
2000년부터 의학저널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머크는 2004년 9월이 되어서야 이 약을 시장에서 전부 거둬들였다. 약이 이미 1억 개 이상 처방된 상태였다. 바이옥스 부작용과 관련된 첫 재판에서 머크가 2억53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 이 회사를 상대로 한 바이옥스 피해 소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현재까지 2만5000건의 심장마비 발작이 이 약과 관련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TV에는 바이옥스를 처방받은 사람에게 부작용 소송을 권유하는 변호사들의 웃지 못할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귀중한 정보를 손에 쥐고도 뒤늦게 대응하는 바람에,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됐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제약회사로서의 신뢰도도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 바이옥스
왜 머크는 이러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뒤늦게 대응했을까? 왜 의사들은 이 약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처방을 계속한 것일까? 의사들의 경우, 일부 환자에게서는 약의 긍정적인 효과도 보았을 것이다. 회사는 판매를 위해 이 약의 안전성을 주장했을 것이다. 부작용에 대한 공식적인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자인 의사와 제약회사가 정보 편향의 함정에 빠져 자신의 생각을 반박하는 가치 있는 정보를 무시한 것이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 일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요즘 경영자들이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너무나 많이 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천 권의 경영서적이 쏟아지고, 수많은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며, 수많은 경영 컨설팅이 진행되고, 수많은 경영학과 졸업생들이 산업계로 진출하며, 수많은 경영 관련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그러니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어느새 내가 '해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 4대 은행의 하나인 웰스파고(Wells Fargo)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리처드 코바세비치(Kovacebich)는 출장 중 회사의 중요한 전략계획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기밀문서가 유출된 걸 걱정했지만,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계획을 실행할 기업은 없을 테니까요. 우리의 성공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
☞ 매몰비용의 함정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투자는 그만!
우리는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이미 지불된 비용에 연연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매몰비용(sunk cost·이미 투자한 비용)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 앞으로의 의사결정에는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몰비용에 근거해 그 후에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가 더 이상 매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에 이미 투자한 비용 때문에 계속 진행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미 낸 돈이 아까워 상한 음식일 지라도 계속 먹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1969년 함께 참여한 이 초음속 여객기 개발 프로젝트는 생산 비용이 높고, 비행기 구조상 좌석 수가 부족해 수입 창출에도 문제가 있으며, 마케팅 활동도 효과적이지 못해 항공사들이 별로 주문을 하지 않았던, 그래서 장래가 매우 불투명한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영국과 프랑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자하다가 결국 2003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 콩코드기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예전에 자신이 했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습성, 그리고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그 많은 자원을 낭비한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결정이란 미래에 관한 것이다.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과 앞으로 누리게 될 혜택을 저울질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방도를 다음처럼 궁리해야 한다.
첫째, 이 일과 관련되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안을 판단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객관적 시각에서 앞으로의 혜택과 비용만을 고려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둘째, 의사결정자 스스로 판단이란 항상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내렸던 판단을 뒤집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셋째, 매몰비용의 포기를 자원의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가치 있는 정보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필요하다.
워런 버핏(Buffet)은 우리에게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미 있는 말을 던져주고 있다. "당신이 구덩이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삽질을 그만 멈추는 것이다." 민재형 서강대 경영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19/2010021901093.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7&Dep3=h4_01 입력 : 2010.02.20 03:03
민재형 교수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에서 의사결정학(Decision Sciences)으로 경영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를 지냈고, 1992년부터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고객만족경영학회의 최우수논문상(2004년), 서강대 경영대 최우수강의상(2006년) 등을 받았다. 한국경영과학회·한국기업경영학회 부회장, 세계성과측정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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