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노예

2010. 1. 27. 10:47人間

[만물상] 자식의 노예 '하이누(孩奴)'

1998년 중국에서 '초생(超生)유격대'라는 TV 코믹극이 인기를 끌었다. 딸 하나를 둔 부부가 아들을 낳으려고 정부의 '한 자녀 정책'을 넘어 '초과 출산 유격전'을 벌인다는 얘기다. 부부는 자식이 둘까지 허용되는 소수민족을 가장해 신장위구르로 이사 가 출산한다. 그런데 딸이다. 한족(漢族)이라는 게 들통 나 이번엔 남쪽 하이난다오(海南島)로 건너간다. 또 딸이다. 부부는 호구조사를 피해 상하이로 숨어든다.

▶ 중국은 폭발적 인구 증가를 누르려고 1980년부터 55개 소수민족과 농촌을 빼곤 한 자녀만 낳게 했다. 어기면 우리 돈 450만 원쯤 되는 큰돈을 물리고 낙태까지 시켰다. 그래도 몰래 둘 넘게 자식을 낳는 집이 많았다. 호적에 올리지 않은 아이들 '헤이하이쯔(黑孩子)'가 90년대 말 2000만 명에 이르렀다. 부유층 임신부들은 홍콩은 물론 미국까지 원정출산을 떠났다.

▶ 중국 속담에 "돈이 많아도 자식이 없으면 부자라 할 수 없고, 돈 없어도 자식 많으면 가난하지 않다"고 했다. "세 가지 불효 중 대를 못 잇는 불효가 가장 크다(不孝有三 無後爲大)"는 남아 선호가 뿌리 깊다. 그런 중국에 요즘 '하이누(孩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어린아이' 해(孩) 자를 써서 자식의 노예라는 뜻이다. 양육비가 치솟아 뼈 빠지게 벌어봐야 자식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 현실을 꼬집는다.

▶ 하이누는 중국에 일고 있는 출산 기피풍조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학벌 좋고 직업 좋은 대도시 30대들은 결혼을 미루고 '단신귀족(單身貴族)'의 삶을 누린다. 우리 식으로 말해 '화려한 싱글'이다. '무자식 상팔자'를 즐기는 맞벌이 딩커쭈(丁克族)도 늘어간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에 퍼진 딩크족(DINK·Double Income No Kids)의 중국식 이름이다.

▶ '자식의 노예' 처지를 누구보다 절절하게 실감할 이가 우리네 부모들이다. 키우고 가르치느라 허리 휘는 건 고사하고, 사회에 내보내 결혼시키고도 자식에 얽매인 삶은 끝나지 않는다.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하니 '자식 공포증'이 생길 만도 하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삶에서 사랑의 참맛을 포기하는 일이다. 국가는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부모의 무한책임을 덜 수 있는 새 가족문화를 고민할 때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26/2010012601653.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3&Dep3=h3_06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2010.01.26 23:13

'人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0) 2010.04.05
의사결정의 '함정'  (0) 2010.02.21
왜 딸을 더 원하게 됐는가  (0) 2010.01.14
핏줄의 재발견  (0) 2009.12.03
남성과 여성의 차이  (0) 200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