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딸을 더 원하게 됐는가

2010. 1. 14. 11:17人間

[사설] 우리 사회는 왜 딸을 더 원하게 됐는가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2008년 4~7월 태어난 신생아 2078명의 아버지를 조사했더니 37.4%가 아내의 임신 중 딸을 바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들을 원한 아버지는 28.6%에 불과했다. 아기 어머니의 37.9%도 딸을 기대해 아들을 바란 31.3%보다 많았다. 아버지의 딸 선호도는 40대가 27.9%에 그친 데 비해 30대 37.8%, 20대 38.9%에 이르러 젊은 세대로 갈수록 높았다. 앞으로 더 젊은 부모 세대가 등장할수록 딸 선호도가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남아선호도 조사에서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40.5%나 됐지만 2006년엔 10.2%로 크게 줄었다. 실제로 출생성비(여자 출생아 100명당 남자 출생아)가 1990년 116.5로 정점을 찍은 이래 2008년 106.4까지 떨어져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아들은 사춘기 되면 남남, 군대 가면 손님, 장가들면 사돈의 아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란 '아들 유머' 시리즈는 근래 아들들이 경제적으론 친가(親家)에 기대면서 처가(妻家)를 더 살갑게 여기고 더 꼼꼼히 챙기는 현상을 꼬집는다.

맞벌이 부부가 육아를 친정에 맡기는 경우가 늘면서 아들들은 처가에 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게 됐다. 여름 휴가여행 때 친가의 부모형제보다 처가 식구들과 함께 가는 것은 이미 낯익은 모습이 됐다. 급격한 핵가족화, 여성의 지위 향상, 맞벌이 부부 증가는 '신(新)모계사회'가 왔다는 얘기를 실감 나게 만들고 있다.

예부터 중국은 가산(家産) 상속을, 일본은 가업(家業) 계승을 중시했지만 한국은 가문(家門)을 잇는 것을 최고로 치다 보니 혈통을 이을 아들을 더 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요즘 아버지들은 대 잇기에 무관심해졌고, 아들에게 노후를 기댈 생각도 접은 지 오래다. 전통사회에서 아들이 맡아야 했던 부모 봉양 의무는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부모나 자식이 같이 나누게 된 것이다.

원래 조선시대 중기까지 아들들은 혼인 초 처가살이를 해야 했고, 결혼하고도 상당기간 부모 곁에 살았던 딸들은 남자 형제들과 똑같은 재산상속권을 누렸다. 아내는 친정에서 물려받는 재산을 처변(妻邊)이라고 해서 남편의 상속재산인 부변(夫邊)과 따로 분리해 관리하고 친정 부모 제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오늘날 '딸의 귀환'은 우리 역사에 면면히 흘러오다 불과 300년 전인 조선 후기에 잊혀버린 남녀평등의 전통이 21세기 사회변화에 부응해 다시 되살아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1가구 1자녀' 시대로 성큼 옮겨가는 지금, 아들과 딸의 역할무대를 '사회'와 '가정'으로 나눠 생각했던 전통적 자녀 성(性) 모델과 가정에서의 아들·딸 교육도 새 방향을 찾아야 한다. 사회에서 성공했던 아버지들이 사업하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보증을 섰다가 무일푼이 돼 숨어 지내며 비참한 노년을 보내는 모습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아들 공포증'이라는 말이 나돈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자식을 키워 출가시키고도 평생 뒤를 봐주는 게 당연시되는 풍토도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전통적 부모 자식 관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야 없겠지만, 가족 구조와 가족관(觀)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우리 사회의 인식과 관습도 변화의 새 물꼬를 터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3/2010011301508.html 입력 : 2010.01.1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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