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4. 08:19ㆍ佛敎
"신앙의 그릇을 키우세요… 다른 종교도 담아낼 만큼"
강원용·김수환·法頂… '세 거인들이 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김 추기경 "나도 한국인, 유교의 피 흘러"… 법정 스님, 길상사에 '마리아 관음상' 모셔
"'죽음의 문화'를 해결하는 길은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유교의 인(仁),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 그리스도교의 사랑 정신이 큰 빛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김수환 추기경)
"종교 간의 관계에 있어서 종교적 정체성이 성실하고 진지할수록 다른 종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서로 간에 배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겸손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강원용 목사)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나 모두 한 보따리 안에 있는 것이니까 따로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말라."(법정 스님)
강원용(1917~2006) 목사, 김수환(1922~2009) 추기경, 법정(1932~2010) 스님―.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를 대표하는 성직자이면서 한국 사회의 원로였던 세 사람은 종교 간 대화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서로 교유하며 종교 간 대화에 힘을 기울였던 이들의 노력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3일 오후 서울 연세대 백양관강당에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 이정배 감신대 교수)가 개최한 '세 명의 거인들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세미나였다. 이 자리에선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경동교회의 박종화 담임목사와 변진흥 가톨릭대 김수환추기경연구소 부소장, 송광사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을 시봉(侍奉)했던 현장 스님(티베트박물관장)이 각각 발표했다.
▲ 지난 2006년 소천한 강원용 목사의 장례예배 때 대형 영정 앞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조사를 읽고 있다. / 전기병 기자
김수환 추기경이 종교 간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독일 유학시절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사회를 위한 교회'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것을 목격한 그는 사랑과 대화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특히 1968년 5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着座)한 후 강원용 목사, 청담 스님·법정 스님과 함께 활동하며 '3대 종단 지도자'의 권위를 우리 사회에 부각시켰다.
김 추기경은 2000년 유학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 선생을 기리는 심산상을 수상했을 때 심산 선생 묘소를 참배하면서 절을 했으며 수상 강연에서 "저는 천주교 성직자이지만 한국인이기에 제 몸 안에도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인본적(人本的), 상향적(上向的), 현재적(現在的)인 유교와 신본적(神本的), 하향적(下向的), 미래적(未來的)인 그리스도교는 양자택일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했다.
▲ 1997년 12월 서울 성북동 길상사 개원법회에 참석한 김수환 추기경이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있다. / 허영한 기자
강원용 목사는 '다름 속의 같음'을 추구했다. 그는 "관용은 섞음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 뒤 다른 종교의 정체성도 인정하는 것"이라며 "다른 종교인의 신앙을 배운다고 자기 신앙이 없어진다면, 그 정도의 신앙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자기 신앙이 있다면 그 신앙의 그릇에 다른 사람의 신앙을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는가?'라는 질문엔 "모르겠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종교 안에 구원이 있다는 주장이 없는 종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문제는 그런 주장이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것인지, 다른 종교를 열린 자세로 대하는지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입적한 법정 스님은 천주교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규칙을 '맑고 향기롭게' 소식지에 소개하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지인 이탈리아 아시시를 방문하고 "인도 불교성지를 참배할 때처럼 크나큰 성스러움과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는 기독교에서 종교의 사회활동을 배우고, 기독교는 불교에서 한국의 전통을 배우면서 더 풍성하게 심화시켜 가야 한다"고도 했다. 법정 스님은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관음상을 모시면서 가톨릭미술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전국 성당들의 성모상을 많이 제작한 조각가 최종태씨에게 맡겨 '마리아 관음상'이 만들어졌다. 스님의 이런 뜻을 이어 길상사는 부처님오신날 연등 수입의 10%를 천주교가 운영하는 '성가정입양원'에 기부하는 등 인연을 이어갔고, 길상사는 수녀와 수사 등 천주교 인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찰이 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03/2010060303506.html?Dep1=news&Dep2=headline2&Dep3=h2_09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입력 : 2010.06.04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