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0. 13:11ㆍ敎育
[사람과 이야기] "한국 최고라는 서울대에 지적(知的)공동체 없어"
초빙석좌교수로 2년간 지켜봤더니… 뉴욕주립대 김성복 교수 쓴소리
교수들, 학문보다 술·정치 관심 학생들은 진리보다 돈벌이 고민
법대 교수연구실, 카드키 '장벽' 법인화 계기로 공격적 개혁 필요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서울대에 '지적(知的) 공동체'가 없어요. 교수들은 학문을 논(論)하지 않고, 고시공부와 취업에 골몰하는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초빙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울대를 지켜본 미국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김성복(78) 석좌교수는 서울대의 현실을 개탄했다. 1956년 서울대 문리대(사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2008년 서울대 인문대 초청으로 '인문대 종합 진단평가'를 맡았다. 그는 대학본부의 교수 승진 심사, 외국인 교수 임용과 관련한 주요 위원회에도 참여했다.
▲ 지난 2년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초빙석좌교수로 재직했던 미국 뉴욕주립대 역사학과 김성복(78) 석좌교수. 지난 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학문 토론이 사라진 서울대 현실을 개탄했다. /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7일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자기학과의 이익이나 개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교수들 사이에서 진지한 학문적 토론을 볼 수 없다"며 "학술회의나 세미나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시시콜콜한 정치 이야기만 한다면 그걸 지적 공동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진정 학생과 학문을 위한다면 학과 간, 교수 간 장벽을 낮추고 소통해야 한다."며 "줄 세우기나 자리보전 같은 눈앞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봉건적 할거주의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역사학자인 그는 역사 관련 3개 학과(국사·동양사·서양사)가 나뉘어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가령 지난 150년의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세계열강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능동적 학습자(active learner)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울대 교수들이 학생들과 거리를 더 좁혀야 한다."고 했다. "법대 건물에 갔더니 교수 연구실이 있는 층은 카드키(열쇠)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더군요. 교수와 학생의 밀착도가 얼마나 낮은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교수 연구실 문을 보면 '재실(在室)' '퇴근' 이런 말만 있지 언제 교수를 만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면담 가능 시간(office hour)이 적힌 경우가 드물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교수들이 학생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과제를 많이 내고 공부하지 않으면 학점을 나쁘게 줘야 한다."며 "서울대는 단순히 연구소나 직업학교가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창조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 평가항목 가운데 '교육' 부문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대 교수 평가에서 연구와 교육은 각각 40%로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 교수는 "교육에 대한 평가에 '동료 평가(peer review)'를 도입해 같은 학과 교수들이 언제든지 다른 교수의 강의에 들어가서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는 "술이나 마시는 낭만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낭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젊은이라면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돈을 잘 벌까'하는 고민만 한다면 '대학도(大學徒)'로서 수치스러운 것"이라면서 "교수들은 '대학도로서의 긍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법인화에 대해선 "둘도 없는 좋은 기회"라면서도 "법인화로 얻은 자율(自律)이 자폭(自爆)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와 교육에서 질적 향상을 이뤄낼 수 있는 총장의 리더십이 중요하고,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법인화는 대학에 일종의 자치(self-government)를 부여한 것인데 총장 권한이 막대해진 만큼 옳은 길이 있다면 교수나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뚝심 있고 공격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0일 미국으로 떠났다가 올 7월 다시 들어온다. 당초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려 했지만 법인화가 결정된 뒤 학교 측의 설득으로 다시 초빙석좌교수(서양사학과) 자격으로 남기로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10/2011011000097.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7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입력 : 2011.01.10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