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3. 17:51ㆍ故鄕
[人+間]「인간」을 찍는 사진예술가 최민식
HUMAN-인간(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 2007년)
부산, 1966
저 나그네의 표정 좀 봐. 남포동과 광복동 사이 어느 골목길이었을 걸. 두 자식 사이에서 앉은 나그네는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어. 아니, 주시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지. 아이들도 지쳤고. 가장의 저 쓸쓸하고 난감한 표정을 나는 아직 기억해.
아, 그런데 저 딸아이의 표정 좀 봐. 아이의 표정이 아니야. 이미 삶의 신산함을 맛보고 난 어른의 표정이랄까. 배고픔, 이별, 절망, 가난, 눈물이 묻어있는 얼굴이지.
이 사진은 외국에서 호평을 받았어. 얼굴 표정에 좋은 점수를 준 게지. 요즘에는 찾기 힘든 얼굴 표정이야. 1966년이라면, 막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의 해체, 가족의 해체를 통해 도시빈민이 된 가장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던 때였지. 바로 그러한 시대 상황을 포착한 얼굴들이지.
부산, 1961
이 아이들의 표정 좀 봐. 뭔가 수줍은 듯하면서도 순수함이 넘치는 저 웃음 좀 봐. 이 작품은 굉장히 순간적으로 포착한 작품이야. 아이들을 한 장면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았어. 애들이 기다려주지 않고 한 장 찍자마자 사진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어.
나는 아이들에게 웃어달라고 하지 않았어. 아이들의 웃음이 우연히 내 사진 속에 들어온 거야. 셔터를 누르는 순간, '꽤 괜찮은 걸 건졌구나' 하는 느낌이 팍 오더라고.
웃어 달라, 움직이지 말라, 이쪽을 봐 달라고 하는 순간 진실은 부서져버린다는 게 나의 방식이야. 연출하면 진실하지 못해. 그렇다면 조작하지 않으면 다 진실이냐는 질문을 받는데 그건 아냐. 대상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이 일치해야 진실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지.
한 번 자세히 봐. 지금 아이들이 뭘 하고 있어? 맨 오른쪽 아이는 집게를 들고 있어. 앞쪽에 수건 쓴 아이의 등에는 자루가 있지. 그래. 바로 넝마주이야. 소녀 넝마주이. 쇠붙이에서부터 휴지 땔감까지 주워 팔아 생활에 보태는 넝마주이 말이야. 아마 학교는 가지 않았을 터이고.
그런 길거리의 아이들 치고는 표정이 너무 밝지. 안 그래? 밝아서 오히려 슬픔을 안겨주지. 물질적인 것에 반응하며, 조작된 것에 깔깔거리는 요즘의 아이들의 웃음을 한번 떠올려 봐. 난 이 아이들의 웃음이야말로 진정 인간적인 웃음이라고 봐.
5년 전, 부산시립미술관에 내 작품들이 기증됐어. 그 자리에서 관장님이 그러시더군. 이 얼굴들이 50년 전 우리의 얼굴인데 앞으로 50년이 더 흘러 '100년 전 우리의 얼굴'이 될 것이라고.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 그것이 바로 스냅 다큐멘터리의 장점 아닐까.
부산, 1969
자갈치였어. 아이가 누나의 등에 업혀서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더군. 나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어. 노출이고 표정이고 구도고 뭐고 따질 겨를 없이 사진을 찍었어. 사진 속 어머니는 셔터 소리에 놀라 나를 바라보더군. 그러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등을 보이더군.
한 장을 찍고 나서 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 뭐랄까, 어떤 숭고한 장면 앞에서 압도되었던 거야.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었어. 각도를 틀어 사진을 더 찍을 수가 없었어. 이 사진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 있는 장면이 단 한 번의 셔터에 담긴 거야. 나로서는 굉장한 행운이었지.
이 사진은 독일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았어. 이런 휴머니티가 그들에겐 낯설었던 것 같아.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가 뒷짐을 지고 있어. '열중 쉬엇' 자세로 말이야. 자갈치에서 생선을 팔던 여인은 씻을 물이 없었던 거야. 손을 씻고 아이에게 젖을 먹일 시간이 없었던 거야.
[연보]
1928년 황해도 출생
1945년 평안남도 미쓰비시 기능자양성소 나와 기능공 근무 중 광복
1957년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수료. 독학으로 사진 시작
1963년 국내 사진 공모전 출품. 이후 150여 편 입상
1967년 미국 'US카메라'지 입상. 20여 개국서 220점 입상
1971년 일본 펜탁스 갤러리 초대전. 이후 미국 등 7개국 15회 전시
1990년 경성대 동아대 인제대 등 출강 시작
2000년 대한민국문화훈장 수상
[저작]
1968년 '인간' 제1집
1973년 '인간' 제2집
1999년 '인간' 제10집
1996년 사진산문집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등 20여 권
2007년 '인간' 50년 기념 선집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110519000207 이상민 기자 yeyun@busan.com |12면| 입력시간: 2011-05-21 [16: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