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6. 22:53ㆍ一般
[태평로] 도심 한복판서 혼자 죽는 사람들
네 집 중 하나는 1인 가구인 한국, 자기 집서 고립死… '안방 조난'의 시대
세상과의 끈 유무, 生과 死를 갈라… 생명구조 시스템 왜 구축 않는가?
은퇴한 대학교수 김모(68)씨가 얼마 전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래층 세입자의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원들이 현관 자물쇠를 뜯어내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사망 후 한 달쯤 지난 상태였다. 자식들이 이민 가고 아내마저 자식들을 따라 떠난 뒤 김씨는 2년간 혼자 살았다.
김씨는 어떤 원인에선가 의식을 잃었고 방치된 상태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됐다. 누군가 주변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일같이 술로 지새우는 그를 친지와 이웃도 외면했다. 조난(遭難)이란 깊은 산속에서나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이젠 대도시의 자기 집 안방에서 고립돼 죽어가는 '도심 조난'의 시대가 됐다.
김씨 사건을 보며 재작년 일본 신문의 사회면 톱을 장식했던 기사를 떠올렸다. 2010년 11월 4일 새벽, 도쿄 미나토(港)구의 서민 아파트에 혼자 살던 시모타 요코(당시 63세)씨는 요의(尿意)를 느껴 잠에서 깼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비극이 시작됐다. 화장실 앞 벽에 세워둔 난방기 상자가 가로로 쓰러져 문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밖으로 여는 화장실 문은 상자가 벽 사이에 끼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문 없는 화장실에서 아무리 외쳐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천장의 환풍기 구멍을 통해서 들려오는 인근 건설 현장의 소음을 듣고 아침이 됐는지 아는 정도였다. 수건과 휴지로 몸을 감싸서 추위를 견디고 수돗물을 마시며 버텼지만 한계가 왔다.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희망은 있었다. 사고 전 그녀는 병원에 입원한 97세 노모(老母)에게 매일 들렀다. 문병이 끊어지면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임을 어머니가 알아챌 가능성이 있었다. 7일째 되던 날, 과연 거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는 밤새도록 울렸고 다음 날 오후 경찰 구조대가 도착했다. 감금 8일 만의 극적인 구조였다.
시모타씨가 살고, 김씨가 죽은 것은 의외로 단순한 차이였다. 시모타씨에겐 그녀의 일상(日常)을 아는 어머니가 있었지만, 김씨에겐 가족·이웃과 연결된 고리가 없었다. 세상과 이어진 끈이 있느냐 없느냐가 생(生)과 사(死)를 갈랐다.
세상과 단절돼 혼자서 죽는 고립사(孤立死)는 이제 폐결핵만큼 흔한 사망 유형이 됐다. 일본에선 사망하고 이틀 이상 지난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연간 2만6000명에 달한다. 우리도 비슷한 양상이 시작됐다. 연락할 가족조차 없는 무연고(無緣故) 사망자가 급증하고, 방치된 시신(屍身)을 반려견이 훼손하는 끔찍한 사례마저 보고되고 있다. 작년엔 32세 시나리오 작가가 집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네 가구 중 한 곳이 혼자 사는 1인 가구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독거(獨居) 노인 119만 명 중 65%가 자녀와 일주일에 한 번도 전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난할수록, 그리고 거동이 불편할수록 가족이나 이웃 공동체와 멀어져 고립에 빠져들 위험이 커진다. 거대한 고립사 위험군(群)이 존재하는 셈이지만 정부는 아직 기초 통계조차 잡지 않고 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존엄하게 숨을 거둘 권리가 있다. 이제 고립사는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국가가 끌어안을 복지 문제가 됐다. 등산객을 위해 조난 대비 시설을 만들면서,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라이프 라인(생명 구조 시스템)은 왜 구축하지 않는가.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방치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직무 유기다.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혼자 세상을 떠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스산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미래의 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5/2012070502884.html 입력 : 2012.07.05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