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2012. 11. 2. 13:00故鄕

가을에 찾아간 밀양

10분, 영남알프스 한눈에 즐기기에 걸린 시간

경남 밀양 얼음골에서 출발한 케이블카가 영남 알프스 능선으로 향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곳은 백운산 자락

가을의 영남 알프스. 한 번쯤 가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경남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보고 왔습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11시께 밀양시 산내면의 얼음골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 도착 1㎞ 전부터 정체가 시작됐습니다. 매표소에 들어서자 이미 오후 4시45분 운행까지 매진. 그날의 마지막 상행선인 오후 5시 출발 표만 40여 장 남아 있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한 번 타기 위해 6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케이블카의 인기가 이 정도라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매표소 앞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습니다. "벌써 표가 없다니 말이 되느냐?"고 따지는 등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케이블카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환경 훼손 논란은 잠시 제쳐두기로 하고 케이블카에 몸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탑승구에 줄을 섰습니다. 왁자지껄. 10분 남짓 기다리는 시간은 초등학생 때 소풍 가는 것처럼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김 사장, 당신이 아침 7시에 와서 표를 끊은 덕에 내가 호강한다." 이 난리통 속에서 표를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는 표정입니다.

상부승강장에서 내려오는 케이블카가 하부승강장으로 서서히 접근합니다. 기대가 부풀어 오릅니다. 50명 정원인 케이블카 안은 조금 혼잡합니다. 창가에 빼곡히 사람들이 몰립니다. 때문에 안쪽에 선 키가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쭉 빼올려야 영남 알프스의 단풍을 조금이라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의 운행속도는 초당 4m. 공중에서 느끼기에 천천히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케이블카와 교차할 때는 '휙' 하는 소리가 날 만큼 상당한 속도가 느껴집니다. 선로의 길이는 국내 최장인 1.8㎞나 됩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는 약 10분. 상부 승강장은 1020m로 국내 최고 높이를 자랑하며, 상·하부 승강장의 표고차도 680m로 우리나라 케이블카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합니다.

"뒤를 돌아보세요. 백운산 중턱에 하얀 바위가 만들어낸 백호가 있습니다. 마음이 착한 분에게만 보인다고 합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입니다. 백호를 찾는 사이에 상부승강장 '하늘정원'에 도착합니다.

산은 그대로 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맛이 다릅니다. 저는 그 가운데 가을 산을 최고로 꼽습니다. 파랗다 못해 눈이 시린 가을하늘이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맑은 날이 많은 가을에는 사방 시야가 탁 트입니다. 단풍에 물든 영남 알프스의 가을이라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하늘정원에서 바라봅니다. 억산(944m)-운문산(1188m)-백운산(885m)-가지산(1240m) 등 영남 알프스 군락이 파노라마를 이룹니다. 이번에는 뒤를 돌아봅니다. 흔들리는 억새 너머로 간월산(1037m)-신불산(1159m)-영축산(1081m)이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이곳에서 천황산까지는 1시간여, 재약산까지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상부승강장에서 전망대까지는 나무데크로 편하게 걸을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해발 1000m 고지에서 명품 가방을 든 아주머니, 백발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 헐렁한 배낭도 힘겨워 보이는 할아버지, 구두 신고 넥타이를 맨 중년의 신사들도 벤치에 앉아서 영남 알프스의 가을을 만끽합니다.

내려오는 길. 하늘에서 보니 가을 햇살을 받은 얼음골의 명품, 사과가 유난히 빨갛습니다. "내리실 때 잃으신 물건이 없도록 단디 챙기시기 바랍니다. 승강장과 케이블카 사이에 손발이 찡기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가이드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 밀양연극촌과 퇴로고가마을

- 숲의 극장에서 연극 한편 보고…

- 관객 사로잡는 연극·음악 공연 등 예술촌 주말밤이면 시끌벅적

- 인근 한옥마을서 하룻밤 추억도

아름드리 수목이 어우러진 위양연못

역사와 문화. 경남 밀양이라는 도시를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연극촌이 있으며, 고가 한옥마을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 지난해 복원한 밀양관아도 새로운 볼거리로 떠올랐다. 특히 천혜의 자연까지 어우러지기 때문에 고즈넉한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불과 30~40분 거리. 더 늦기 전에 밀양의 가을로 들어가 보자.

연극과 전통, 사람과 자연이라는 테마가 어우러진 밀양 연극촌·고가 탐방로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밀양연극촌은 폐교된 월산초등학교 1만6100㎡ 부지에 조성한 종합 예술촌이다. 1999년 10월 말 문을 열었고, 이윤택 감독이 이끄는 연희단 거리패 단원 60여 명이 상주한다.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성벽 극장'과 '숲의 극장' 등 야외 공연장이 있다. 우리 동네극장 등 실내 공연장이 함께 조성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예술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밀양 시내에서 5㎞ 정도 떨어진 한적한 농촌마을인 부북면 가산리는 밀양연극촌 때문에 주말 밤이면 다른 농촌마을과 달리 시끌벅적하다. 해마다 7월 말부터 8월 초에 개최되는 여름공연예술축제 시기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객을 사로잡는 연극인들의 몸짓과 음악 소리, 그리고 관객들이 자아내는 폭소와 박수소리에 밀양 연극촌의 늦은 가을밤은 깊어가는 줄 모른다.

특히 밀양연극촌은 작품의 연출부터 제작, 공연까지 이어지는 종합예술촌으로 다양한 작품활동이 펼쳐지고 있어 해를 거듭할수록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밀양연극촌의 성벽극장 공연 장면

밀양연극촌은 2007년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사업에서 '연극촌 중심 복합테마 마을'로 선정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계속해 오고 있다. 다양한 공연시설이 들어섰고, 주변 경관을 새롭게 정비해 고풍스러운 성벽이 연극의 무대가 됐다. 운동장에 객석을 설치한 성벽극장과 원형극장, 숲의 극장은 관객들에게 국내 어느 극장에서도 느낄 수 없는 연극의 생생한 감동을 선사한다.

밀양연극촌에서 한 편의 연극을 감상한 후 수려한 연꽃단지를 돌아볼 수 있다. 가산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가산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 된다.

가산저수지를 지나 퇴로고가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밀양연극촌과 가까운 퇴로마을은 화악산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여주 이씨 집성촌이다. 시간이 멈추고, 발길도 멈추게 하는 곳. 퇴로 마을에 들어서면 결국 마음마저 한 곳에 머물게 된다. 사라져 가는 옛 것과 새 문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며 황톳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밀양시는 2008년부터 퇴로마을 한옥 11동에 대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 저녁에는 고가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소요 경비는 5만 원.

퇴로 고가마을은 잊을 수 없는 이색 체험의 기회도 선사한다. 마을 옆에 전통문화관이 준공돼 김장 된장 등 다양한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디딜방아 널뛰기 윷놀이 투호놀이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함께 운영된다.

마을 한편에 있는 밀양치즈스쿨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치즈 만들기 체험과 소 우유 먹이기, 뻥튀기 만들기 등을 직접 해보자.

퇴로마을 인근에는 밀양이 자랑하는 팔경의 하나인 위양못이 자리하고 있다. 연못 주변으로 진귀한 모양의 나무들이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뽐낸다.

밀양 연극촌·고가 탐방로는 문화와 전통, 웰빙 등 3박자를 갖춘 테마가 살아 있는 체험 관광의 명소다. 길이 평탄해 어린이들도 쉽게 탐방할 수 있다.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약 7.5㎞로, 천천히 걸어도 2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 그 밖에 둘러볼 만한 곳들

- 영남루 올라 아랑의 한 달래고…

- 복원한 조선시대 관아 새 명소로

- 밀양읍성 아랑사당 무봉사 등 가는 곳마다 유서 깊은 문화유적

밀양관아

높은 산과 깊은 골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산야를 휘몰아 밀양강을 이루고, 곳곳에 빼어난 절경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있는 곳, 경남 밀양 시내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밀양시는 지난해 300년 가까이 고장을 지키던 관아를 복원했다. 동헌 매죽당 북별실 등이 재탄생하면서 밀양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됐다. 밀양관아는 선조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으로 전부 불탔다. 1612년에 원유남 부사가 부임해 원래 자리에 관아를 재건했다.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군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27년도에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이 신축 이전하면서 밀양읍사무소, 밀양시청, 내일동사무소의 청사로 이용됐다.

관아 마당에는 19개의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부사와 밀양을 관할하던 관찰사 등이 재임기간 동안에 베푼 선정과 애민정신을 잊지 않고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것들이다. 입구에는 100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포졸이 서 있다. 처음 나타난 곳이 동헌 정청. 이곳은 현감 부사 목사 감사가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던 건물이다. 동헌에 앉아 잠시 쉬면서 둘러보면 관아 마당에는 300백 년쯤 된 회화나무 2그루가 관아의 역사를 말해준다.

매죽당(梅竹當)은 관아별실의 하나로 부사의 비서사무를 맡은 책방이 거처하던 건물이다. 관리의 아들들이 독서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후에 창건한 당초의 건물은 허물어졌고, 1775년 중건했으나 1927년 관아 폐쇄와 함께 사라졌던 것을 지난해 새로 복원한 것이다.

북별실(北別室)은 부사가 사용한 건물로 보이며,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별실이란 명칭으로 보아 부사가 정사를 보던 의례적인 정청과는 달리 외부인을 만나거나 책을 읽던 주택의 별당 기능에 해당하는 건물로 추정된다.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을 자랑하는 영남누각

관아를 지나면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 위에 위치한 보물 제147호 '영남루'를 만나게 된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각지붕으로 건물기둥이 높고 웅대한 조선후기 대표적 목조 건축물이다. 밀양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밀양 영남루는 신라경덕왕(742~765년) 때 신라의 5대 명사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다. 현재의 누각은 이인재 부사가 1844년에 중건한 것이다.

영남루는 밀양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외적인 아름다운 모습뿐만 아니라 높은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경치 또한 수려하다. 특히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진 누각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1843년 당시 이인재 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 현판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수많은 서예가로부터 찬사를 듣고 있다.

영남루 주변에는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당, 영남루 앞뜰에 피는 석화 군락, 530년을 이어온 밀양읍성, 옛 영남사의 부속 암자였던 천년 고찰 무봉사가 있다. 영남루가 밀양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주목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 기념물 제167호 밀양읍성은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행정 기능을 함께 수행했던 곳이다. 밀양읍성은 성종 10년(1479)에 만든 것으로, 보통 다른 읍성들이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기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100년 이상 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밀양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아직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가 또 남아 있다. 영남루와 밀양관아를 비롯해 밀양교 남천교 삼문송림 시립도서관 등을 장식하는 경관조명이다. 해가 넘어가면 화려한 야간 조명이 밀양강과 어우러져 오색의 빛을 발하면서 영남루 일원은 빛의 도시로 재탄생한다.

경남 밀양시에 해가 지면 밀양강과 영남루를 중심으로 야간조명이 밝혀진다. 낮과는 전혀 색다른 밀양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밀양시청 제공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600&key=20121102.22026185503 김용호 기자 kyh73@kookje.co.kr 2012-11-01T19:0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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