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4. 13:20ㆍ一般
[한현우의 팝 컬처] 도대체 언제부터 그들이 公人이 되었나?
성추문 물의 일으킨 유명인들 '공인으로서 죄송'할 필요는 없어…
유명세와 공적 책임은 다른데… TV·인터넷에서 격상된 연예인들
스스로 공인 지칭하는 것은 착각… '진짜 공인'들 사과 듣는 것도 지겨워
탤런트 박○○가 한 여성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만 해도 이 사건 전말은 매우 명확해 보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서 이 다툼은 더 이상 지저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건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주고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낱낱이 보는 것도 이제는 더럽고 추하다는 느낌밖에 없다. 알 필요 없는 것을 알 수밖에 없는 '정보 천국'에 살며 치르는 죗값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겹게 듣는 것이 '공인(公人) 타령'이다. 박○○ 역시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국민 타령'과 '공인 타령'의 병창(竝唱)인 셈이다. 때마침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미용 프랜차이즈 대표 박○도 '공식 입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표현이 비슷하다. 자기는 공인이며 물의를 일으켰고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예인이 공인이고 미용사가 공인인가. 공인은 공적 책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아무도 박○○에게 부디 연기를 잘해서 인기를 얻어달라거나 박○에게 머리를 잘 깎아 전국 100개 넘는 미용실 체인을 만들어달라고 책임을 부여한 적이 없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연예인이 공인이라면 무명 연예인은 공인인가 아닌가. 이를테면 아무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역배우는 공인인가. 출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몇 %를 넘어야 공인이 되는 것이고, 출연한 영화가 관객 몇 명을 모아야 공인을 자처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박○○와 박남○○은 공인이 아니고 박○○와 박○은 공인인가. 박시후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람은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공인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인가.
박시후와 박준은 재능을 발휘해 자기 인생을 살 뿐이다. 그런데 직업 특성상 유명해졌을 뿐이다. 유명한 사람이 의외의 일을 당하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공인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유명인으로서 민망한 일을 당한' 것이다. 따라서 죄송할 필요가 없다. 창피할 수는 있겠다. 사과를 하더라도 가족과 팬클럽, 단골손님과 가맹점주들에게 해야지 국민을 상대로 할 필요는 없다.
연예인들이 스스로를 공인으로 착각하게 만든 데는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 연예인을 내세우는 지상파 TV 3사의 공이 크다.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뿐 아니라 교양, 다큐멘터리, 인터뷰까지 모조리 연예인이 장악했으니 스스로 대단한 사회적 인사(人士)가 된 양 착각할 만도 하다. 연예인을 내세우지 않으면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 것이라고 확신하는 TV의 무례함은, 시청자의 지적 수준을 자기들 수준으로 생각하는 제작진의 무지와 오만에서 비롯됐다. 이런 TV가 배설하듯 쏟아내는 연예인 신변잡기를 뉴스랍시고 써대는 미디어가 있고, 자기들은 멍석만 깔아놓았을 뿐이라며 손 안 대고 코 푸는 인터넷 포털이 있다. 모두 연예인을 공인으로 한껏 격상시켰다가 또 잡아먹을 듯 으르렁댄다.
물론 연예인처럼 유명한 사람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일반인보다 크다. 그러므로 공인에 준하는, 또는 버금가는 윤리와 책임 의식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공적 성격이 강한 직업'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 직업에는 사인(私人)이지만 의사와 교사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법원은 오래전부터 '공적 인물(public figure)'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1960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경찰국장이었던 설리번은 자기를 비난한 의견 광고를 실은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적 문제에 대한 토론은 공직자들에 대해 격정적이고 통렬하며 불쾌할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될 수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것이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엔 이런 원칙이 공직자에서 '공적 인물'로 확대됐다. 여기엔 연예인이나 기업 대표 같은 유명 인사도 포함될 수 있다.
연예인들은 물을 것이다. 공인 대접도 안 해주면서 책임과 윤리는 공인에 준해 적용하고, 언론의 무자비한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 도대체 연예인이 봉이냐고. 억울하겠지만 사실이다. 그렇기에 연예인이란 너무나 힘든 직업이다.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수록 그 정도가 더하다. 그러니 제발 무슨 일 났을 때 공인 타령 좀 그만 들었으면 한다. 군대 면제받은 공인, 부동산 투기 한 공인, 전쟁 났는데 골프 친 '진짜 공인'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겹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3/2013031302648.html?gnb_opi_opi01 한현우 대중문화부 차장 입력 : 2013.03.1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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