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 11:37ㆍ一般
[토요판 커버스토리]文·史·哲의 쓴웃음
인문학 토양 말라가는데, 명품 강좌는 뜨고…
학교 바깥에선 ‘인문학 열풍’이 뜨거운데 안에선 ‘인문학의 사막화’란 우려가 나온다. 어떤 게 정확한 진단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일반 시민을 위한 교양과목이었던 인문학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선 인문학이 ‘신(新) 귀족 학문’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 학기 수강료가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급 인문학 강좌나 800만 원짜리 인문답사여행에 CEO들이 몰린다. 2000년대 후반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문학이 재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롤 모델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다. 이로 인해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은 중요한 ‘스펙’이 됐다. 제목에 인문학이 들어간 책이 쏟아지면서 600여 종에 이르고 4년 전과 비교해 판매량은 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인문학을 진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인문학자들만 따로 불러 고견을 청해 듣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인문학진흥법안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하지만 인문학 연구의 보루여야 할 대학에서 인문학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의 4년제 일반대학(교육대학 제외)은 인문학 관련 학과 457개를 통폐합했다. 같은 기간 인문대 내에 신설된 학과는 54개에 불과하다.
외환위기 이후 실무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기업의 불만을 접수한 대학들이 잇달아 인문학 전공 학과의 통폐합에 나선 결과다. 그러다 보니 대차대조표 읽는 법이라도 익히라고 회계학이 교양필수과목이 되는 대학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문사철(文史哲)의 기초라 할 국문과 사학과 철학과도 없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지하수가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 “소통 중요성 느꼈다”… CEO들 고급 인문강좌에 심취 ▲
인문학 공부에 푹 빠진 최고경영자(CEO)들은 소규모 서클을 꾸려 세계 각지로 인문 기행을 떠난다. CEO로 구성된 한 인문학 서클은 전문가들과 함께 이집트 답사를 떠나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신전(사진), 기자 피라미드, 카이로박물관 등을 견학했다. 동아일보DB
《한국의 최고경영자(CEO) 31명은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과 허베이(河北) 성 청더(承德·열하의 현재 지명)를 찾았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의 현장 답사를 위해서였다. 여느 단체관광과 다른 점은 최고의 인문학자들이 동행해 수준 높은 해설을 들려줬다는 것.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AFP·‘원천으로’란 뜻의 라틴어 경구를 딴 Ad Fontes Program)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답사에서는 명청시대 전공자인 구범진 동양사학과 교수와 동아시아 신화 전문가인 조현설 국문과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AFP는 현장답사비용을 포함해 한 학기(5개월) 수강료가 120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같은 문사철의 향연은 사적인 공부 모임에서도 이뤄진다. CEO로 구성된 한 인문학 서클의 회원 20여 명은 2010년 일주일간 이집트 답사를 다녀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권위자인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와 이집트학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인 미국 브라운대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유성환 박사가 함께했다. 한 참가자는 “전문가가 신전 기둥의 상형문자를 줄줄이 읽고 해석해 주니 참가비 800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7년 9월에 개설된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AFP)은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전문직 고위 인사를 대상으로 한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주로 서울대 인문대학 교수들이 강사로 나서 매주 화요일 저녁 3시간씩, 5개월간 한 학기를 진행한다. 지원자는 재직증명서와 자기소개서를 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소업체나 비상장기업의 경우 최근 2년간의 기업 결산서나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정도로 모집 과정이 엄격하다.
그럼에도 입소문을 타고 지원경쟁률이 3 대 1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문학자들이 강의하는 데다 수강생끼리 고급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능률과 수익을 좇던 기업인에게 소통과 창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는 호평도 잇따랐다.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명동성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이 과정을 거쳤다.
인문학은 CEO를 위한 ‘신(新)귀족학문?
서울대 AFP가 화제가 되던 비슷한 시기에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서도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잇달아 개설했다. 고려대 박물관의 ‘문화예술 최고위과정’ 수강료는 4개월에 600만 원(해외답사비 별도), 대한상공회의소의 ‘CEO 인문학 포럼’은 7개월에 회원사 400만 원, 비회원사 500만 원(부가가치세 및 해외연수비 별도), IGM세계경영연구원의 ‘창조 오디세이아’는 10주에 400만 원에 이른다. 이들 강좌에서는 고전문학 철학 종교 미술 음악 분야의 최고 석학들이 강사로 나선다.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 수료 후에는 인문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CEO끼리 사적으로 모임을 꾸리기도 한다. 이들은 중국 철학, 그리스 철학, 한문 명문장, 대항해시대, 이슬람 등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석학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강의를 듣고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로 해외답사를 떠난다. 해외답사 때 고급호텔에서 숙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석학의 고급 강의를 듣고 토론을 이어간다. 최고위층 인문학 공부 모임의 해외답사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교육 목적의 호화 유럽여행인 ‘그랜드투어’를 연상시킨다.
인문학에 심취한 CEO들은 별도로 자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마련하기도 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해 9월 계열사 CEO 및 주요 사업본부장 60여 명과 함께 ‘인문학적 이해와 리더십’을 주제로 전략회의를 열고 정재승 KAIST 교수, 김상근 연세대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등에게 강의를 맡겼다. 대개 기업에서 여는 인문학 강연의 강연자는 회당 최소 1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강연자는 회당 300만∼500만 원, CEO나 기업 임원의 소규모 모임에서는 강연료가 회당 1000만 원을 넘는다는 전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여러 인문학자는 CEO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현상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교수는 “인문학의 근본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나눔인데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기업인들이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문학이 모든 시민을 위한 교양이 아니라 돈 많은 특권층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인문학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설파한 ‘문화자본’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는 공저 ‘우파의 불만’(글항아리·2012년)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상층 계급은 더 고급스러운, 고전적인, 고가의, 권위 있는 취향을 향유함으로써 다른 계급과의 ‘구별 짓기’를 시도한다.”며 “이는 한국 사회가 충분히 양극화되어 있고 부자들이 돈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할 만큼의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인문학이 순수 학문으로 향유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의 하위 학문으로 도구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출판인은 노자를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에 갔다가 사회자가 천연덕스럽게 ‘노자를 배워서 훌륭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어 가시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경악했다. 그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경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인문학의 도구화일 뿐”이라며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인데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여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인문학은 불황 속 출판계에도 단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가에서도 ‘인문학’이란 제목이 들어간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다. “책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만 넣으면 웬만큼 팔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기계발, 힐링 다음은 인문학”이라는 말도 나온다.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들녘), ‘인문학, 한옥에 살다’(채륜서), ‘인문학 지도’(지식갤러리), ‘인문학으로 풀어 쓴 건강’(밸런스하우스), ‘매일 읽는 인문학’(천지인), ‘인문학 수프 시리즈’(작가와비평)….
현재 판매되는 책 가운데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은 620여 종에 이른다. 최근 2주 사이에만 10권이 넘게 나왔다. 인문 분야뿐 아니라 수험서, 경제·경영, 종교, 시, 에세이, 아동 분야까지 망라한다. 이들 책은 교보문고에서 2009년 1만3500부가 팔렸지만 올해는 10월까지 약 7만 부가 팔렸다. 5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재익 교보문고 MD는 “2010년 전후로 자기계발서 바람이 한풀 꺾이고 일부 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한다고 알려지면서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을 중심으로 인문학 책을 많이 찾기 시작했다.”며 “마케팅을 위해 인문학이라는 껍데기만 쓴 책도 늘어난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주된 독자층도 청년층이 많다. 교보문고 조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인문학’ 제목을 단 책 구입자는 20대가 27.3%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6.6%로 뒤를 이었다. 주로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CEO부터 취업준비생까지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에도 도처에서 ‘인문학 일병 구하기’ 담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 대학 강의실선 한숨… 취업 앞두고 면접용 요약만 인기 ▲
2012년 6월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정의를 주제로 한 강의에 청중 1만4000여 명이 몰린 것은 인문학을 향한 대중의 갈증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문학 연구의 베이스캠프인 대학에서 인문학의 수원(水源)은 메말라가고 있다. 뉴시스
《인문학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꿈을 품고 올해 중앙대 인문대 비교민속학과에 입학한 유모 씨(25)는 6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학교 이사회가 비교민속학과를 포함한 4개 학과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유 씨는 원래 2007년 학비와 취업 걱정이 없는 사관학교에 합격했으나 2년 후 자퇴했다. 전쟁이 일어난 뒤 필요한 군인보다는 그에 앞서 평화를 조성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전쟁을 유발하는 갈등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고심 끝에 비교민속학과를 선택했다. 졸업 후 유네스코에 취직해 국제 교류 일을 할 계획까지 세웠다.
두산그룹이 2008년 인수한 중앙대는 이듬해부터 회계학을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올해는 경쟁력 있는 학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 비율이 낮은 4개 학과를 폐지하고 경영학부와 경제학부 정원을 대거 늘린 것이다. 유 씨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고 인간적인 삶을 위해 인문학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대학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인문학계 인사 13명과 오찬을 하며 인문학 중흥 의지를 밝힌 데 이어 최근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안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위원장 유종호 문학평론가)를 설치했다.
여기에 세 갈래의 인문학진흥법이 각각 추진되고 있다. 29일 ‘인문진흥을 위한 연구 환경 모색 토론회’를 개최한 한국인문학총연합회가 추진 중인 인문학진흥법, 신계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31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할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안’이다.
한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서 쓸모를 찾아야 한다(無用之用)’고 자조하던 인문학도들에겐 복음처럼 들릴 만한 뉴스들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인문학의 사막화’로 신음하는 대학가
실제로 인문학 연구의 베이스캠프인 대학에서 인문학은 고사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인문계열 졸업생은 대학의 취업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데다 신입생을 유치하기도 어려워 인문계열 학과들은 구조조정 1순위로 꼽힌다.
올해 비교민속학과를 폐지하기로 한 중앙대 외에도 한남대는 철학과와 독일어문학과, 배재대는 프랑스어문화학과와 독일어문화학과를 폐지하기로 했다. 대전대는 지난해 철학과를 폐지하고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를 통합했다. 건양대는 2005년 국어국문학과를 문학영상학과로 바꾼 데 이어 지난해 아예 이 학과를 없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지방대일수록 심해져 “본디 대학의 핵심이 문사철(文史哲)에 있는데 국문과, 사학과, 철학과 없는 ‘무늬만 대학’이 속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 내 인문학은 그나마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인문한국(HK)사업으로 인문학 진흥이라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다. HK사업은 2006년 전국 80여 개 인문대학장이 인문학 위기 선언을 하자 인문학 진흥책의 하나로 시작됐다.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 연구소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출범한 10년간의 장기 사업으로 사업비가 4000억 원이 넘는다.
대학 연구소들의 신청서를 심사해 지원할 연구소들을 선정하는데 1일 기준으로 43개 연구소가 HK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의 쌀 문화 연구,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의 로컬리티 인문학,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의 인문치료,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평화인문학이 대표적이다.
HK사업은 인문학 내의 다양한 어젠다를 발굴하고 심층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HK사업에 선정된 연구소가 채용하는 HK교수직과 HK연구교수직이 소장 인문학자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크다. 현재 43개 연구소에서 HK교수(전임) 181명, HK연구교수(비전임) 233명이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 일자리 역시 안정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비전임 교원인 HK연구교수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연구소를 떠나야 한다. 전임 교원인 HK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한 연구비에서 월급을 받는데 HK사업이 끝나면 그중 절반을 해당 대학이 의무적으로 전임으로 전환해 줘야 한다. 그 부담 때문인지 HK사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대학도 있다.
고급 문화자본 아니면 취업용 스펙으로 전락
인문학의 아성이 돼야 할 대학의 형편이 이렇다 보니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문학을 하나의 ‘스펙’처럼 쌓고 있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찾는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고독한 사유’로서의 인문학이라는 본질은 퇴색되고 취업준비생들은 핵심 내용이 요약된 인문서를 들추며 인스턴트식으로 인문학을 소비하는 추세다.
출판가의 인문학 열풍은 이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 취업컨설턴트는 “실용적인 스펙 준비에만 힘을 쏟던 취업준비생들은 갑자기 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니 당황한다.”며 “인문학은 단기간에 연마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임시방편으로 급하게 요약 수준의 인문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8월 신간 ‘절망의 인문학’(이매진)을 출간한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는 “자기계발 열풍의 연장선상에서 인문학을 수단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문학은 개인이 스스로 본원적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향유되는 것입니다. 취업이나 기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인문학 강좌를 듣는 것은 인문학을 빙자한 폭력일 뿐이지요. 인문학이 스펙처럼 장착되거나 과시를 위한 문화자본으로 이용되는 것은 반(反)인문학적 행태입니다.”
문제는 요즘 인문학에 심취한 기업 경영가들이 과거엔 실무에 도움도 안 되는 쓸데없는 지식만 배운다며 인문학 전공자를 외면했다는 데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마다 인문학 전공자를 외면하자 취업률에 목을 맨 대학들은 2000년대 들어 인문학 강좌를 폐강하거나 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지해왔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지난 커버스토리를 보실 수 있습니다.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뿌리가 썩어 가는데 상류층의 문화자본으로서의 인문학, 스펙을 위한 얄팍한 인문학만 성행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인문학의 양극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경집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는 저서 ‘인문학은 밥이다’(알에이치코리아·2013년)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인문학은 지하수와 같다. 지하수는 지표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수가 없으면 수많은 생물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인문학에 대한 투자도 지하수의 수맥을 관리하고 개발하듯 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투기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인문학이라는 지하수는 말라버리고 만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31130/59238100/1 신성미 savoring@donga.com ·박훈상·우정렬 기자 기사입력 2013-11-30 03:00:00 기사수정 2013-11-30 09: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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