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를 위한 침묵(조선일보)

2015. 8. 29. 21:05一般

[최보식 칼럼] 제2롯데월드를 위한 침묵

3주 전 이 지면에 실린 '누가 제2롯데월드의 본질을 봤는가' 칼럼은 세간에 제법 회자됐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쪽에서는 조용했다. 그건 그럴 수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도 침묵했다. 무엇보다 야당이 평소와 달리 안 나서는 것은 미스터리했다.

이미 버스가 떠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제2롯데월드는 117층까지 올라갔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완공된다. 555m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 공군 성남기지를 막아서는 걸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재난은 '과거형'이 아니다.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제2롯데월드를 반대하다가 교체된 공군참모총장 K씨가 지적한 대로다. "실제 비행을 해봤다면 그걸 안다. 악천후와 기체 결함, 조종 미숙 등으로 컨트롤이 약간만 안 돼도 국가적 재앙을 맞는다. 전쟁과 유사시 작전 수행에서 제2롯데월드는 치명적 장애다."

늦었지만 그래도 당시 결정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고 배후에 무엇이 작용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이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직업적 양심을 버릴 때 어떤 사태가 초래될 수 있는지 뒷날의 교훈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MB가 민관 합동 청와대 회의에서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제2롯데월드 문제를 해결하라"며 대놓고 국방장관을 질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역대 정권에서 퇴짜 맞으며 14년 동안 끌어오던 롯데의 민원(民願)이었다. 당연히 경제 살리기, 투자와 일자리 활성화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하지만 호텔롯데 사장이 MB의 대학 동기였고, MB가 호텔 헬스클럽 회원이었고, 당선인 시절에는 호텔 스위트룸을 개인 사무실로 써온 것도 정책 결정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물론 제2롯데월드 건축을 승인해주는 과정에서 법적 절차와 형식에는 하자가 없었다. 최고 권력자가 결정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답이 만들어진다. 권력 주위에는 어젯밤까지 가졌던 자신의 논리와 신념을 금방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늘 모여들기 때문이다. 제2롯데월드 건축 사업을 담당한 롯데물산 측 인사 A씨로부터 최근 이런 증언을 들었다.

"당시 군 장성 출신인 청와대 경호처장 K씨가 주도했다. 2008년 9월 17일 저녁 K 처장은 제2롯데월드에 반대한 공군총장에게 '청와대에서 항명(抗命)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통보했다. 다음 날 공군총장이 전격 경질됐고 MB는 전경련 회의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 배석한 K 처장이 '제2롯데월드를 지어도 비행 안전에 지장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인가?

"롯데는 K 경호처장과 줄을 댔다. 공군총장의 경질 사실도 그날 그가 알려온 것이다. 당시 한자리를 했던 사람들은 서로 나서서 '내가 제2롯데 문제를 풀어주겠다'고들 했다."

어떤 일이 성사되려면 이런 고위 결정권자 못지않게 실무자급도 중요하다.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2009년 공청회 영상자료를 보면서 들었던 느낌이다. 당시 국방국방부 관계자는 "555m 초고층빌딩의 건축으로 대형 재난 사고가 날 경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로를 만들었다고 자동차 사고 나면…. 만든 책임도 있지만 운전자의 잘못도 있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제2롯데월드는 국제 항공안전규범으로 허용되는 범위라고 했다. 시간에 맞춰 이착륙하는 민간 공항의 경우에는 그렇다.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스크램블(긴급발진)'을 걸어 동시 출격하게 되는 공군기지에 적용할 일은 아니었다. 법 규정으로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면 몰라도.

더욱 놀라운 장면은 공군 성남기지 관계자의 답변이었다. 후배 조종사들의 안전을 우선 생각해야 하는 위치였다. 한 여당 의원이 그걸 묻는 질문에 "군이 사심 없이 내린 결단에 대해 비방하지 마라.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그가 '제복'을 입고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착륙하는 과정에서 자칫 항로를 이탈하면 10~35초 만에 제2롯데월드와 충돌할 수 있다고 한다. 향후 그 입주자들은 창문에서 옆으로 지나가는 군용기를 보게 될지 모른다. 이들은 성남기지 폐쇄와 이전을 요구하는 집단 민원을 낼 게 틀림없다. 하지만 성남기지는 '에어 포스 원'인 대통령 전용기가 있고 유사시 국가원수를 비롯한 정부 요인들의 이동을 책임져야 한다. 수도권 바깥으로 옮길 수 없는 이유다. 하물며 재벌 회사의 빌딩을 위해 국가안보시설을 옮기는 건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당시 공청회에서 "롯데는 하필 왜 거기에 지으려고 하는가?" 묻자, 롯데 측이 답변했다.

"제1롯데월드와 연관해 상승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기업 나름의 철학과 사명이 있다."

롯데는 1987년 말 서울시로부터 819억 원에 부지를 사들였다. 지금 그 땅값만 2조7000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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