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계(花王誡)

2016. 2. 5. 10:27一般

화왕계(花王誡)

겉모습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노년의 지혜를 더욱 윤택하게 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는 한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설총(薛聰)은 우리글이 없어서 우리말을 문자로 기록할 수 없던 시대에 한자의 훈독(訓讀)과 음독(音讀)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우리말을 기록한 이두(향찰)를 집대성, 정리한 사람이다.

설총(薛聰)의 아명은 총지(聰智)이다. 생몰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태종무열왕 때인 654∼6660년 사이에 태어나 경덕왕(景德王) 때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할아버지는 나마(奈麻)인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이고, 어머니는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6두품 신분으로 추정되며,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꼽힌다.

화왕계(花王誡)는 우리나라에서 기록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전체(假傳體) 형식의 설화로 '신라의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을 풍간(諷諫)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가전체는 일명 의인전기체(擬人傳記體)라고도 하여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고자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서양의 이솝(Aesop) 우화(寓話)가 대표적이다.

화왕계(花王誡)를 통해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의미와 겉모습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노년(白頭翁)의 지혜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그 번역문과 원문 을 소개한다.

제가(설총) 들은 것은 옛날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철이 되자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디고운 아름다운 꽃의 정령들이 바삐 달려와 화왕을 알현하고자 하며 오로지 뒤쳐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홀연히 한 미인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맵시 있게 차려입고는 간들간들 오더니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저는 눈처럼 흰 물가의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薔薇)라고 합니다.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들은지라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온데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한 장부가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와서 말하기를 ‘저는 서울 밖의 큰길가에 거처하여, 아래로는 푸르고 넓은 들판의 경치를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솟은 산빛에 의지하고 있사온대, 이름은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이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록 주위에서 받들어 올리는 것들이 넉넉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고 의복이 장롱 속에 쌓여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약으로 기운을 돋우고 독한 침으로 병독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말에 명주실과 삼실 같은 귀한 것이 있다 해도 왕골과 삘기 같은 천한 물건을 버리지 않아, 무릇 모든 군자들은 모자람에 대비하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또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가 ‘두 사람이 왔는데 어느 쪽을 취하고 어느 쪽을 버리시겠습니까?’하니, 화왕이 ‘장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아름다운 여인은 얻기가 어려운 것이니 이 일을 어찌 할꼬?’라고 말했습니다. 장부가 나아와서 말하기를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이치를 잘 알 것이라 생각하여 왔던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릇 임금된 사람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이 때문에 맹가(孟軻, 맹자)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풍당(馮唐)은 낭서(郞署)에 머물러 백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러하였으니 전들 어찌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화왕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이 안색을 바로 하며 말했다.

“그대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있다. 글로 써서 왕 된 이들의 경계로 삼기 바란다.”

그리고는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 등장인물

○ 화왕

꽃의 왕이며 모란꽃이다. 작중에서 신문왕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미인과 현자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현자의 간언에도 미인의 아름다움을 쉬이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나 현자(백두옹)의 설득으로 마음을 고쳐먹는 인물이다. 모든 인간들이 지니는 우유부단함을 지녔다는 한계를 지녔지만, 현자의 간언을 뒤늦게나마 귀담아듣고 뉘우친다..

○ 장미

화왕의 앞에 나타난 미인으로, 말 그대로 장미꽃. 작중에서 상징하는 바는 눈앞에 있는 부귀영화와 쾌락, 혹은 왕에게 아첨함으로써 제 이득을 챙기는 간신으로 왕을 유혹하고 찰나의 즐거움을 주지만 결국 왕을 그릇된 길로 이끄니 마땅히 내쳐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화왕은 처음에는 장미를 포기하지 못해 우유부단하게 굴었으나 현자 백두옹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 백두옹

화왕의 앞에 나타난 늙은 현자로, 할미꽃이다. 작중에서 상징하는 바는 왕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충신. 처음에는 화왕의 앞에서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간언(충고)을 올리나 화왕이 우유부단하게 굴자 이에 실망하여 왕에게 간언을 올렸으나 끝내 왕이 그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 그 결과 불우하게 생을 마친 현자들과 충신들의 예를 들며 화왕의 곁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화왕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사과한다.

聰曰 唯 臣聞昔花王之始來也 植之以香園 護之以翠幕 當三春而發艶 凌百花而獨出 於是 自邇及遐 艶艶之靈 夭夭之英 無不奔走上謁 唯恐不及

忽有一佳人 朱顔玉齒 鮮粧靚服 伶俜而來 綽約而前曰 妾履雪白之沙汀 對鏡淸之海而沐春雨以去垢 快淸風而自適 其名曰薔薇 聞王之令德 期薦枕於香帷 王其容我乎

又有一丈夫 布衣韋帶 戴白持杖 龍鍾而步 傴僂而來曰 僕在京城之外 居大道之旁 下臨蒼茫之野景 上倚嵯峨之山色 其名曰白頭翁 竊謂左右供給雖足 膏梁以充腸 茶酒以淸神 巾衍儲藏 須有良藥以補氣 惡石以蠲毒 故曰 雖有絲麻 無棄菅蒯 凡百君子 無不代匱 不識王亦有意乎

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 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侫 疎遠正直 是以 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

於是 王愀然作色曰 子之寓言 誠有深志 請書之 以謂王者之戒 遂擢聰以高秩 <三國史記, 列傳, 薛聰條>

http://cafe.daum.net/mlts2015/XdCi/50

화왕계.hwp

화왕계.hwp
0.02MB

'一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태기(관계+권태기)  (0) 2016.08.19
재능기부, 자원봉사를 제안할 때  (0) 2016.05.01
수저 계급론  (0) 2016.02.01
백 세 인생  (0) 2015.12.18
제2롯데월드를 위한 침묵(조선일보)  (0) 201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