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5. 17:38ㆍ政治
[뉴스의눈]'대통령 나체 풍자화', 10년 전 미국에선 이랬다
'더러운 잠' 파문 계기, 외국사례 보니… 벌거벗은 조지 부시 그림 논란, 그 이후
조지 왕의 휴식(Man of Leisure, King George), 케이티 디드릭슨 작(2004)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이구영 화가의 '더러운 잠'이 논란에 휩싸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 한 작품이다. 최순실이 몽롱한 표정으로 잠든 박 대통령의 곁에 시종처럼 서 있다. 창문 너머 가라앉는 세월호가 보인다.
해외에선 '정치인 패러디' 문제없어
유사한 해외 사례가 있다. 지난 2004년 미국 워싱턴의 시립 박물관에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이 전시됐다. 그림 속에는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가 벌거벗은 채 누워 있고 옆에는 부통령 딕 체니가 시추탑 모양의 왕관을 들고 있다. 뉴욕서 활동하는 케이티 디드릭슨이라는 여류화가가 그렸다.
이 그림은 하루 만에 전시 목록에서 제외됐다. 남성 혐오 논란이나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켜서는 아니었다. 단지 시립박물관이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며 아이 동반 가족이 많이 관람하는 장소라는 이유에서였다.(…라는 게 시립 박물관의 공식입장이다.) 물론 정부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가족 관람객이 보기에 적절치 않다는 박물관측의 입장에 동의했다. 그리고 작품의도를 살릴 수 있는 더 적절한 전시장소를 찾겠다고 했다. 몇몇 매체가 이 해프닝을 기사로 썼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처럼 그림을 훼손하거나 전시장에서 소란을 피운 이는 없었다. 미국에서만 매년 수도 없이 정치인 패러디가 쏟아지지만 이를 문제삼는 이들도 없다.
미국뿐이랴. 한겨레의 여행 칼럼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에는 정치 풍자가 자유로운 아르헨티나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벌거벗은 남자가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있었고, 벌거벗은 여자가 그물 스타킹 차림으로 사타구니에 차고 있는 딜도를 남자의 항문에 반쯤 밀어 넣은 상태로 활짝 웃고 있었어. 성인용 잡지인가, 했는데 다시 보니 그 그림이 실린 지면은 신문이었어. 이 여자는 크리스티나고, 모자 쓴 남자는 방송 피디야.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에 그려진 ‘678’은 아르헨티나 공영 방송국을 가리켜! (중략)
크리스티나는 2007년 말부터 2015년 말까지 재임한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크리스티나가 공영방송을 제 맘대로 하던 걸 풍자한 그림이라고 설명했어. 가령 저 자리에 크리스티나 대신 대한민국 대통령을, 678 방송국 피디 대신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그려 넣은 그림이 신문 전면에 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겨레, 2016. 11.9)
더러운 잠. 이구영(2016)
'여혐' 문제 삼기보다 작가 의도 우선해야
여성 정치인을 풍자화 하는 일은 여성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조심스럽다. '더러운 잠'도 여성이라는 젠더를 비하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작가의 의도에 집중해야 한다. '더러운 잠'은 어지러운 바깥세상은 나 몰라라 하는 권력자의 나태함을 비판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이라는 공적인 영역에 사적인 영역을 연계시킨 것이다. "업무시간에 무엇을 했냐?"는 상사(국민)의 질문에 “그건 여성의 사적인 영역이라서 밝힐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부하(박 대통령)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부하가 사적 영역이라고 말하는 순간 상사의 머릿속에는 "업무시간에 땡땡이(?)를 부리며 무슨 짓을 했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상상은 '국민의 한사람'인 이구영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참담한 현실과 무심한 권력이라는 두 주제를 극명히 대비시키기 위해 누드 작품 패러디를 택했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구영 작가는 2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적절성이라든가 표현의 수위라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더러운 잠이) 정확히 풍자 예술의 범주 안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해외 사례를 보자. 지난 해 미국 대선 기간에 수없이 많은 힐러리 클린턴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클린턴은 패러디 작품 속에서 창녀가 되기도 했고 벌거벗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젠더의 문제로 확장시킨 사례는 전무하다.
힐러리 클린턴을 풍자한 작품들
표현·논쟁은 무한 자유 보장…경계할 건 파시즘
5년 전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이건희, 박정희, 박근혜, 김일성의 어깨에 고양이를 얹은 패러디 연작을 선보였을 때다. 그녀에게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 패러디에 관한 의견을 물어 봤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에 코알라를 합성하거나 혐오스러운 괴물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들이 한창 유행이었다. "그 정도면 고인 능욕이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녀는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자기의 잣대로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재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거다. 표현에 있어 경계가 있어선 안 된다. 낸시랭은 "서로 다른 시간과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본 집단은 좋게 볼 수 있고 불이익을 당했다면 나쁘게 보겠죠. 자유롭게 보고 즐기고 논쟁하는 게 필요해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법정 시비로까지 번지는 건 경계했다. "촌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 하는 사람의 명예가 훼손됐다 싶으면 법이 있잖아요. 고소하고 싶으면 대한민국 법에 따라 고소를 하시면 되고요. 하지만 법적인 문제까지 가는 건 분명 ‘촌스러운 일’입니다".
'여혐'이니 '표현의 자유'니 논쟁을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국민들이 누려야할 특권이다. 그러니 새누리당도 구멍가게 주인도 '더러운 잠'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낸시랭이 말한 법적인 절차도 무시하고 오로지 '충성! 충성! 충성!'을 강요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보수'라고 칭한다. 전시회장에 난입해 '더러운 잠'을 훼손한 무리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건강한 토론이 있는 사회를 좀먹는다. 그들의 서북청년단처럼 용감무쌍한 활약(?)을 보며 본인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빨갱이', '홍위병'의 그림자를 느낀다.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이구영 작가가 보수성향 시민에 의해 파손된 자신의 작품 '더러운 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출처: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2513531396159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최종수정 2017.01.25 16:57 기사입력 2017.01.25 15:54
[시민마이크] ‘대통령 나체 풍자그림’ 당신의 생각은
국회 의원회관에 걸렸던 그림 한 점이 시민마이크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더러운 잠’으로 이름 붙여진 이구영 작가의 그림에 탄핵소추된 박근혜 대통령이 패러디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이 그림은 ‘인격 모독’에 해당할까요, 아니면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까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를 패러디했다. [중앙포토]
조민정씨는 해당 작품이 ‘인격 모독’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씨는 “(풍자의 대상이 된) 그들(대통령과 최순실)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해야지 여성이라는 것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며 “작품은 인격 모독, 여성 혐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종완씨는 “전시회를 주최하는 측에서 충분한 설명을 했더라면 일방적 비난을 넘어 혐오와 조롱까지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소통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배건태씨는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격 모독 그림 … 국회에 전시한 것도 부적절”, “정치 진흙탕에 풍자, 막는 건 민주주의 훼손”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비열한 여성 인격 모독 행위”라고 반발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그림은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이 지켜 온 고귀한 가치들인 여성성·모성·인간애·예의 등의 가치를 무참히 훼손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여성단체들은 또 “이 행위는 표현의 자유로 포장될 수 없는 잔인한 인격 살인 행위”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불가침의 인간의 기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생활 보호 등의 헌법적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행위”라고 주장했다.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이 전시된 장소가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임재원씨는 “문제시되는 것은 국회라는 장소에 (그림이) 걸렸다는 것이지, 표현의 대상과 방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남겼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안희정 충남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논란에 대한 글을 올렸다. 안 지사는 “한국여성민우회의 의견을 보면서 제가 놓친 점을 알았다.”며 “‘작품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무리 정당해도 성별·지역·인종·학력·장애 등 일체의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새삼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안 전 대표는 “표현의 자유는 보호돼야 한다.”면서도 “정치의 공간인 국회에서 전시를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와 달리 작품의 내용이나 전시 장소와 무관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다. 강윤호씨는 시민마이크에 “정치라는 진흙탕 속에 풍자라는 연꽃이 폈는데, 그 연꽃마저 꺾어버린다면 정치는 더러운 늪이 되어 민주주의를 속박하게 될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강씨는 이어 “민주주의의 상징인 표현의 자유가 정치판을 거치면 어떻게 변질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처럼 문건의 내용이 아니라 유출 경위로 (정치권이) 프레임을 바꾼 것처럼, 풍자한 그림의 내용이 아니라 혐오로 프레임을 바꿔 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강씨는 “표현의 자유를 정치인들의 정치적 해석으로 구속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진수씨는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든 작품이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것이,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외설이 아니지만 마네의 ‘올랭피아’는 외설이라고 하던 19세기 상류층의 기만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용자(아이디 john lee)는 미국 대법관인 올리버 웬들 홈스의 말을 인용해 “아무리 혐오스러운 주장이라 해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아닌 이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존재해야 할 정도로 사회가 엄격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더러운 잠’이 패러디한 누드는 ‘올랭피아’만이 아니다. 15세기 화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교차 패러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왜 ‘올랭피아’는 정면을 응시하고, ‘비너스’는 잠들어 있는가. 작가의 의도는 제목에서 이미 드러난다. 절대권력에 대한 풍자”라고 강조했다. 출처: 중앙일보 종합 10면 [시민마이크] http://news.joins.com/article/21178747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peoplemic@peoplemic.com 입력 2017.01.26 02:14 수정 2017.01.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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