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4. 20:13ㆍ受持
[財테크] 외모만 보는 투자는 금물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나쁜 시력을 기억력으로 보완했다. 악보를 통째로 외운 후 지휘를 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솔로몬 베니아미노프란 사람은 30년 후에도 30개의 2자리 숫자들을 모두 외운 천재였다. 라틴어로 된 성경도 모두 외웠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터키의 메흐메드 알리 할리치라는 사람은 성경에 나온 6666개의 시를 라틴어로 기억해낼 만큼 머리가 좋았다. 두뇌능력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스라엘 사람 에란 카츠는 500자리의 숫자를 한번 듣고 기억해내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영화에도 나온다. 숀 코너리, 케빈 코스트너, 로버트 드니로, 앤디 가르시아가 나온 ‘언터처블(1987,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생각나는가. 이 영화는 1920년대 금주법시대에 마피아 보스로서 악명을 떨친 알 카포네를 쫓는 특별수사반을 그린 영화다. 갱스터 영화로 유명한 데 특히 기차역 총격 장면은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여기서 특별수사반은 알 카포네의 회계사를 체포하기 위해 시카고 유니온 역으로 온다. 높은 계단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닥뜨린 특별수사반과 마피아 일당. 잡으려는 수사반과 도망치려는 마피아는 총격전을 벌인다. 이 때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오르던 한 여인은 총성에 놀라 유모차를 놓치고 만다. 덜컹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유모차. 조지 스톤(앤디 가르시아) 경관은 한 발로 유모차를 막아 세우며 마피아를 향해 총탄을 날린다.
영화팬은 이 장면이 기억나겠지만 필자는 알 카포네의 회계사 인상도 새로웠다. 그는 교묘하게 위장된 알 카포네의 세금포탈 내역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줄줄이 꿰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기억력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천재의 머리보다 몽당연필이 낫다’는 말은 배우면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속성을 지적한 격언이다. 기억은 3일이 지나면 70%가 잊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투자의 세계에서도 ‘망각’이라는 한심한 존재는 늘 우리를 괴롭힌다. 술꾼이 과음으로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리면서 ‘다시는 술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술시(오후 7시)가 되면 다시 술집에 가는 것처럼, 옛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대표적인 게 ‘돈 된다’고 하면 달려가는 투자 행태. 중국에 투자하기, 조선업종 사두기 등 한바탕 불어 닥친 바람에 흔들리더니 최근에는 브라질 펀드가 수익률이 높다하니까 여기저기서 문의가 빗발친다는 후문이다. 눈앞의 미녀(인기업종)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는 남정네와 같은 꼴이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현인’ 워렌 버핏이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한 마디를 했다. 지난해 ‘비정상적인 시장 움직임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던 그는 올 해 “주식투자로 연평균 10%의 수익을 꾸준히 얻을 것이라는 꿈에서 깨라”고 강조했다. 연평균 10%의 수익(배당률 2%, 주가상승 8%)이 생기면 다우지수가 2100년엔 2400만 포인트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주식시장 호황이던 1900년대의 연평균 상승률도 5.3%에 그쳤음을 상기시켰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금융회사의 추한 모습이 드러났고, 보험업계의 파티는 끝났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 컨트리가수 바비 베어(Bobby Bare)의 노래 가사를 빌려 투자의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기초를 잊어버린다. 하기야 기초를 잊어버리는 게 ‘유연하고 창조적인 마인드’의 지름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앨렌 랭거는 투자에 대해 유연하고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지려면 이렇게 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억은 새로운 체험을 하려는 열정을 식히고 쌓아놓은 지식은 오히려 창조성을 방해한다. 넓게 멀리 볼 수 있어야 유연한 생각이 가능하며 그러자면 창조적인 두리번거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랭거 박사는 그러면서도 기초적인 사안에 대한 기억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혼란기에는 투자대상의 기본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케인즈의 투자 격언을 상기하는 게 좋다. 그는 “주식투자란 인기투표로 승자를 결정하는 미인대회나 마찬가지다(대중의 인기를 얻는 주식이 값이 오른다). 투자자와 주식 사이는 부부 관계와 같아야 한다(장기적으로 보고 가치투자를 하라)”는 말을 남겼다. 미모(인기)는 절대 현모양처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발품 팔고, 조사하고, 요리조리 따져야 현모양처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김상민 기자 매일경제 Citylife 제120호(08.03.24일자) http://news.mk.co.kr/newsRead.php?sc=40300005&cm=%C0%E7%C5%D7%C5%A9+%BD%BA%C4%F0&year=2008&no=145078&selFlag=&relatedcode=&wonNo=&sID= 2008.03.14 18:15:50 입력, 최종수정 2008.03.23 06:2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