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4. 15:18ㆍ旅行
제주도의 그 많던 빗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제주&] 용천수 명소들
서귀포 대표 계곡 돈내코
용천수가 바다와 만나는 쇠소깍
비가 와야만 만들어지는 엉또폭포
쇠소깍
제주에는 ‘물 항아리에 물이 비면 집이 빨리 망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물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는 것은 부지런함의 척도였다. 물 항아리에 물을 채워주는 작은 항아리를 제주에서는 ‘물허벅’이라 하는데, 제주 여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용천수가 솟아나는 샘물에서 물허벅으로 물을 긷는 것이었다. 용천수는 대부분 해안 지역에서 솟아났기 때문에 중산간 지역에 사는 여인들은 5㎞나 되는 길을 매일 걸어야만 했다. 조선 후기 이형상 목사는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백성들은 10리 안에서 물을 떠다 마신다. 멀면 40~50리에 이르고’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물을 아낄 수밖에 없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 항아리를 확인해야만 했다. 물이 떨어지는 날에는 또다시 물허벅을 등에 짊어지고 다시 샘터로 가야만 했다. 제주 여인들이 가장 고된 노동을 말할 때 늘 빠지지 않는 것이 물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마을 대소사에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다 주는 ‘물 부조’가 있을 정도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는 한국 제일의 다우 지역이자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생수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연간 강수량이 2000㎜로 서울 강수량의 배가 넘고, 일년 동안 내리는 빗물의 양은 37억6900톤에 이른다. 그런데 그 많은 빗물이 다 어디로 갔기에 과거 제주의 여인네들을 이토록 괴롭혔던 것일까?
그 중심에는 한라산이 있다. 제주는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지질이 대부분 구멍이 숭숭 난 현무암이기 때문에 빗물이 천이 되어 흐르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거나, 한라산의 경사면 때문에 바다로 바로 흘러가 버린다. 땅속으로 몸을 감춘 물은 화산 암반수가 되거나 용천수가 된다. 화산 암반수가 되는 빗물은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420m의 땅속으로 내려가 오랜 겨울잠을 자고, 해안가 땅속으로 내려온 빗물은 바닷물과 밀도 차이가 나 바위 틈새로 솟아나는 용천수가 된다.
빗물과 화산섬의 만남은 독특한 제주만의 환경을 만들어냈다. 빗물이 땅속으로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을 때 제주의 하천은 물이 없는 건천이지만 비가 올 때는 물이 흐르면서 간헐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집중호우가 내리는 날이면 말라 있던 절벽에서 거대한 폭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와 달리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천들도 간혹 있다. 바위틈 사이 곳곳에서 솟아 올라온 작은 용천수들이 모이고 모여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들이다. 해안가에서 솟아올라온 용천수들은 식수원, 빨래터 혹은 천연 목욕탕으로 사용되었다. 70년대 이후로 상수도가 만들어지면서 샘물은 삶과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천연 수영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돈내코
제주도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쪽이 완만한 지형을 이룬다면 남북쪽은 경사진 지형이다. 북쪽보다 서귀포 쪽인 남쪽이 더욱 가팔라 서귀포에는 제주를 대표하는 계곡과 천 그리고 폭포가 많다. 서귀포를 대표하는 계곡은 단연 돈내코다. 제주어로 ‘돗’은 멧돼지, ‘코’는 계곡으로, 돈내코는 멧돼지들이 목을 적시던 ‘내’의 입구라는 뜻이다. 계곡 양옆은 난대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계곡에는 돌 사이로 올라온 맑고 차가운 용천수가 모여 일 년 내내 흐른다. 나무가 울창해 공기가 좋고 해가 잘 들지 않아 서귀포 시민들의 일등 피서지이다. 돈내코의 물은 중산간 마을을 적셔주고 바다로 나아간다.
관광객들이 탐방로에서 쇠소깍을 내려다보고 있다.
용천수가 바다와 만나는 곳이 바로 ‘쇠소깍’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며 진한 옥빛 물빛을 만들어내는 곳. 쇠소깍은 심해처럼 깊고 하늘처럼 맑은 물빛을 만들어내는데, 그 모습이 신비롭고 오묘하다. 밀물과 썰물 때마다 수심이 다르다. 밀물 때는 썰물 때보다 수심이 5m 이상 깊어진다. 만조 때 물빛이 가장 아름답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지금은 서귀포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서귀포에는 비가 와야만 만들어진 독특한 폭포도 있다.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엉또폭포’다. 이 폭포는 한라산에 70㎜ 이상 비가 내릴 때만 생긴다. ‘엉또’의 ‘엉’은 제주어로 작은 바위굴을, ‘또’는 입구를 뜻한다. 풀어서 설명하면 작은 바위굴 근처에 있는 폭포라는 뜻이다. 비가 올 때가 아니라 큰비가 지나간 뒤에 가장 멋진 장관을 이루는데 절벽 50m 위에서 물이 쏟아 붓는 모습은 자연의 신비로움과 함께 위압감마저 느끼게 한다.
엉또폭포
해변에서 올라오는 용천수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문수물’은 제주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이호테우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올라오는 용천수다. 문수물 주위에는 돌로 쌓아올린 ‘원담’이 있다. 이 담은 밀물과 썰물 차이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쌓은 담이다. 밀물 때 담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들이 썰물 때 나가지 못하고 담 안에 갇히게 된다. 지금도 이호테우해수욕장에 가면 원담을 볼 수 있다.
이호테우해수욕장
곽지과물해변
‘곽지과물해변’ 또한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용천수가 솟아난다. ‘과물’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달콤한 물을 뜻한다. 물이 실제로 달콤하지는 않지만 과거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달콤할 만큼 귀했던 물이었다. 담수는 차가워 오랫동안 몸을 담글 수 없을 정도다. 깨끗한 곽지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긴 뒤 용천수에서 몸을 씻는 것이 제주인들만의 여름 피서법이다.
여름이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만남의 기쁨보다 이별의 슬픔이 늘 애잔하듯, 덥다 못해 뜨거웠던 올해 여름의 기억은 다른 해의 여름보다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2017년 한번뿐인 여름과의 이별을 제주의 용천수와 해보는 것은 어떨까?
1. 돈내코(서귀포시 돈내코로 1114)
서귀포 시민들의 여름 1등 피서지 돈내코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계곡 한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원앙폭포 때문이다. 물에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푸른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한라산은 웅장하게 보인다. 돈내코 야영장, 야외 공연장, 주차장 등이 잘 갖춰져 있다.
2. 쇠소깍(서귀포시 쇠소깍로 128)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인 쇠소깍은 서귀포시 효돈천 하구에 있다. 용수천과 바닷물이 만나 깊은 옥색 물빛을 빚는 곳이다. 물빛 자체로도 신비롭고 계곡도 아름답다. 예전에는 투명 카약을 타고 코앞에서 옥색 물빛을 볼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이용할 수 없다.
3. 엉또폭포(서귀포시 강정도 1587)
엉또폭포는 간헐천에 있는 폭포다. 한라산에서 강정마을로 흐르는 악근천이라는 간헐천이 있다. 악근천의 중간 지점, 서귀포시 강정동 북쪽에 폭포가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명소였는데 티브이 프로그램 <1박 2일>에 소개되면서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비가 많이 올수록 폭포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제주에 집중호우가 내릴 때면 웅장한 폭포를 볼 수 있다.
4. 이호테우해수욕장(제주시 도리로 20)
제주시민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여름 피서지 중 한곳. 제주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모래가 고운 백사장 길이가 250m에 이르고, 물이 얕아 어린아이들이 놀기 좋다. 해수욕장 귀퉁이에 문수물이 솟아오르고, 문수물 안에 원담이 있다. 밤에는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5. 곽지과물해변(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티브이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나와 더욱 유명해진 해변이다. 모래가 곱고 물이 맑기로 유명해 제주도민들이 사랑하는 해변 중 한곳이다. 물속을 걷다 보면 차가운 용천수가 올라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용천수를 눈으로도 볼 수 있다.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jejuand/809517.html 입력 2017.09.04. 10:06 수정 2017.09.04.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