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2009. 11. 24. 21:21受持

부자는…, `평소에는 `흥정`, `물건` 만나면 `베팅`

부촌에 가 보면 5,000원짜리 이발소와 100만 원짜리 미용실이 나란히 성업 중인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비싸면 무조건 잘 팔린다는 속설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자들은 무조건 비싼 물건만 산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

1. 네 정거장 떨어진 은행 매번 걸어가다.

서울 동부이촌동에 사는 40대 후반의 부동산 부자 L모 씨의 소비 습관은 이렇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는 평소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로 통근한다. 직장이 가까워서가 아니다. 그가 근무하는 곳은 인천. 자동차를 타고 가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 직장까지 가려면 2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물론 그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한때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던 그는 40세를 넘기면서부터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 삼아 시작한 일이 바로 자전거 출퇴근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전거를 이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돈 때문이다.

“3년 전쯤 담배를 끊었습니다. 물론 건강도 생각했지만 그때 담뱃값이 올랐거든요. 이번에도 헬스클럽에 다닐까 생각해 봤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씨의 한 달 용돈은 5만 원. 점심은 사내 식당에서 공짜로 해결하고, 저녁 약속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어찌 보면 꽁생원처럼 보일 수 있는 생활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처럼 지독한 습관이 생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L씨가 중학생일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경기도와 서울 강남 등에 시가 수백억 원이 넘는 땅을 유산으로 남겼지만 정작 현금자산은 거의 남겨놓지 않았다.

물려받은 땅에서는 단돈 10원의 수입도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매년 수천만 원이 넘는 세금이 가족을 짓누를 뿐이었다. 3형제의 장남인 L씨와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모친이 동생들을 돌보며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는 길은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땅을 파 봐라. 10원이 나오나’라는 우스갯소리가 딱 맞습디다. 세금 낼 때가 되면 어머니가 외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돈 좀 꿔달라며 울먹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이가 들어 지금은 형제들이 재산을 나눠 가졌지만 그는 여전히 예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화끈하게 지갑을 열 때가 있다.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발견했을 때다. L씨의 집에는 10대가 넘는 자전거가 있다. 이들 자전거를 구입하는 데 들인 비용이 강북의 2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은 된다.

건강을 생각해 시작한 자전거 타기가 취미가 되면서 그는 자전거에 푹 빠져들었다. 마음에 드는 자전거는 본체 값만 적으면 500만 원, 비싼 것은 한 대에 1,000만 원이 넘었다. 게다가 자전거가 출퇴근 수단으로 이어지면서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안전모와 무릎보호대 등 안전장비를 구입하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 몸에 착 붙는 자전거용 유니폼까지 갖추면 L씨가 출근길에 끌고 나가는 자전거 용품의 가격은 중형 승용차 한 대 값과 맞먹는다.

2. 입버릇처럼 하는 말 “돈이 아깝다”

소위 신흥 부자라고 불리는 서울 도곡동의 S(여)씨. 부동산보다는 현금자산이 많은 S씨는 보유한 현금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은행 출입이 잦다. 그런데 S씨는 집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이나 떨어진 은행까지 매번 걸어서 간다. 차비가 아까워서다. 뿐만 아니다. 집에서 가까운 큰 은행을 놔두고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저축은행을 이용한다. 작은 차이지만 이자율이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인 그는 주부다. 마트나 백화점 물건보다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아파트 내 장터를 더 좋아한다. 운동은 골프가 아니라 걷기로 대신한다.

“골프를 칠 줄은 알아요. 남편 따라 다니면서 배웠거든요. 하지만 한국에서 골프를 치면 돈이 아까워서….”

골프채 잡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1년에 수십 차례 골프를 친다. 취미가 해외여행이기 때문이다. S씨 가족은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 등 위험이 따르는 곳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한 해 소요되는 여행경비만 수천만 원 이상이다. 그의 여행 스케줄에는 골프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한국의 10분이 1 가격이면 소위 ‘황제 골프’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S씨가 보유한 해외 골프장 평생 회원권만 10개가 넘는다.

“사업 때문에 한국에서 골프를 쳐야 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한국 골프장이 정말 싫어요.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치르러 가는 것 같거든요. 게다가 가격은 왜 그리 비싼지,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 돈 내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S씨는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고 한다. 약 120m2(약 40평) 가량으로 그가 평생 회원권을 갖고 있는 골프장 안에 세워진 리조트형 아파트다. 가격은 1억 원 정도로 300만 원짜리 평생회원권의 300배가 넘는 가격이다. 그런데도 S씨가 선뜻 지갑을 연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골프장은 빨리 치라고 재촉하는 사람은 고사하고 평일에는 손님이 하루 한 팀 있을까 말까예요. 늦은 아침을 먹은 뒤 골프채를 들고 아파트를 나서면 30만 평짜리 정원을 산책하는 기분이죠. 한국에서 골프 두 번만 참으면 비행기 삯은 벌 수 있으니까 국내 골프장이 더 싫어지더라고요.”

부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때는 수천만 원의 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반면 남들이 아무 부담 없이 당연히 구입하는 재화에 대해서는 입버릇처럼 “돈이 아깝다”는 말을 했다. 1,000만 원이 넘는 자전거는 아무렇지 않게 구입하면서 버스비 1,000원은 아깝다는 그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은 이 질문에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내놓는다. “10원을 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이 아깝고, 10억 원이 들더라도 흡족하면 제 값을 하는 물건”이라는 것이 부자들의 말이다. 게다가 부자들은 절대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 부자들치고 TV 홈쇼핑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가격흥정에도 능하다.

부자들 중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물건 파는 쪽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정찰제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백화점에서도 부자들은 서슴없이 물건 값을 후려친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백화점이 값을 깎아준다는 사실이다. 서민들에게는 정찰제를 고집하면서 부자들에게는 오히려 가격을 할인해 주는 백화점의 처사가 얄밉기도 하지만, S씨의 생각은 다르다.

“깎아달라고 말은 해봤는지 궁금하네요. 친구들과 같이 쇼핑을 가보면 백화점에서 물건 값을 깎는 저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들르는 매장의 점원들은 대부분 안면이 있어요. 깎아 주지 않으면 다른 백화점에 가서 산다는 것을 잘 알죠.”

부자들이 지갑을 여는 또 다른 순간은 ‘물건’을 만났을 때다. 그들은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발견하면 흥정이 아니라 ‘베팅’에 들어간다.

3. 성북동 L씨의 별명은 단벌신사…, 부자들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대개 검소한 생활이 숨어있다.

서울에서 튼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서울 성북동 L씨. 그의 별명은 단벌신사다. 부친이 30년 전 맞춰 준 명품 양복을 지금도 여전히 입는다. 뿐만 아니다. 그의 집은 온통 골동품 투성이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셔널 선풍기, 20년 이상 된 월풀 냉장고와 세탁기 등 온통 오래된 물건뿐이다. TV 역시 30년이 다 된 브라운관 TV를 그대로 쓴다. 그런데도 그는 집에 있는 물건들에 불만이 없다. 어떤 물건을 사든 구입할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좋은 물건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한번 살 때 좋은 물건을 사 두면 그만큼 오래 쓰기 때문에 저렴한 물건을 여러 번 구입하는 것보다 오히려 절약이 돼요. 가끔 고장이 나기도 하는데, AS를 신청하면 수리공이 와서는 깜짝 놀라며 좋아하죠. 이런 물건 오랜만에 봤다면서 오히려 정성껏 수리해 줘요.”

그가 아끼지 않는 부분은 바로 자녀교육이다. 그는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3년 내내 1주일 용돈으로 500원을 줄 만큼 인색했다.

하지만 교육에는 아낌없이 썼다. 딸아이 과외비로 한 달 평균 700만 원 정도의 경비를 지출했다. 때로는 한 달 과외비가 1,000만 원 이상 드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그가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라는 과외 선생을 데려오는 데 들어간 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조족지혈이다. L씨는 “도저히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그에게 “1주일에 3,000만 원 주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L씨는 그 과외선생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출이 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 교육도 좋은 물건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지출이라면 비싸더라도 가장 좋은 서비스를 구입해 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딸은 수시입학을 통해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래서 남들 한창 수능시험 준비하던 가을에 이미 입학을 확정지었죠. 물론 불과 몇 달 차이지만 입시 스트레스에서 일찍 해방시켜 줬으니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4. 전시장의 차 끌어내려 집으로 가져가

L씨의 친구이자 또 다른 중소기업 CEO인 서울 방배동 토박이 M씨도 짠돌이식 생활 방식을 고수하지만 돈을 쓸 때 손이 크기로는 L씨 못지않다. 주변인들에게 재테크의 달인으로 불리는 M씨는 주식투자와 부동산으로 수십억 원대의 부를 가지고 있다. 부자들은 은행 프라이빗 뱅킹(PB)에 가입해 거액을 넣어 두지만 대개 1억 원 정도는 외국계 은행에 맡긴다. 그는 거의 모든 자산을 PB를 거치지 않고 직접 운용한다. 특히 외국계 은행과의 거래가 많다. 거액 거래는 국내 주거래 은행을 통하지만, 비교적 소액이고 출입이 잦은 돈은 대부분 외국계 은행을 이용한다.

그가 외국계 은행을 이용하는 이유는 요즘 외국계 은행의 경우 ATM 수수료가 무료일 뿐 아니라 타행 거래 때도 수수료가 없기 때문이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건강과 금전적 이유로 최근 술·담배를 끊었으며.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은 삼간다. 대신 걷기로 건강을 지킨다.

그는 몇 년 전 국제유가가 급등할 조짐이 보일 무렵 갖고 있던 휘발유 차를 처분하고 LPG 차량을 구입했다. 지금도 그는 “그때 차를 바꾼 것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는 일이었다.”며 흡족해 한다.

그가 LPG 차량을 구입했다고 해서 자동차의 성능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M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자동차 마니아다. 집에 있는 2개의 차고에 8대, 회사 주차장에 3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차량 중 10여 년 전에 구입한 한 수입 자동차는 자동차 수입업체 관계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간직한 차다.

M씨는 당시 서울에서 열린 모터쇼를 구경하러 갔다 전시돼 있는 한 자동차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는 곧바로 차량 구입을 문의했지만 당시 그 차량은 아직 정식 수입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그 차에 마음을 빼앗긴 M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동차 제조회사와 직접 접촉해 전시한 차를 팔라고 졸랐다. 해당 수입차회사는 난색을 표했지만 그는 당시로는 거액을 내놓겠다며 설득했다. 그 차량을 대신할 다른 차를 실어와 전시하는 데 드는 비용도 자신이 모두 부담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모터쇼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M씨는 끝내 그 차를 전시장에서 끌어내려 집으로 가져갔다.

“그때 들어간 돈이 2억 원 정도 됩니다. 당시 서울 강북의 25평짜리 아파트 값이 1억 원 정도였으니 아파트 두 채 값이었죠. 게다가 그 차는 모터쇼가 끝나고 몇 년 뒤 수입이 시작돼 희귀모델도 아니에요. 지금 중고차업자에게 팔면 2,0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제 차가 어떤 차인지 알죠.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녀석이거든요.”

5. 미술가 대동 인사동서 그림 쇼핑

50여 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임대사업을 하는 서울 평창동의 K(여)씨. 그는 거리에서 마주치면 겉모습이 검소하다 못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다. 게다가 그는 화장지 구입하는 데 드는 돈이 아까워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이나 도넛 가게에서 냅킨을 뭉텅이로 집어와 집에서 쓴다.

80평 복층 빌라에 사는 K씨는 주로 사용하는 방 두어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은 아예 난방을 차단하고 산다. 덕분에 80평짜리 복층 빌라의 한겨울 난방비가 10만 원 남짓이다. 자린고비가 울고 갈 생활을 하는 그도 아끼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림이다. 그는 한 점에 수백만 원부터 수천만 원 이상 되는 그림을 수십 년 전부터 취미로 모아왔다.

평창동에 사는 이유도 주위에 예술가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K씨는 그들과 교류하며 그림에 관한 식견도 넓힐 뿐 아니라 “좋은 작품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을 누구보다 빨리 입수한다.

그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한 동네 주민인 미술가를 대동하고 집에서 가까운 인사동으로 그림 쇼핑을 나간다. 미술가는 작품의 가치를 평가해줄 뿐 아니라 위작인지 여부도 판단해 준다.

이처럼 부자들은 지갑을 열 때와 꼭꼭 닫아둘 때가 분명하다. 물론 일부 졸부들의 소비 행태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지만, 제대로 된 부자들은 10원을 쓸 때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지름신(충동구매 유발,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의 강림을 막지 못하고 지갑을 열고 마는 이들에게는 인색함으로 비칠 뿐이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렇게 돈을 쓰고 언제 부자 될래?” 하고 되묻고 있었다.

부자의 소비 습관

1. 돈 아까워 헬스클럽 안 가면서 값비싼 자전거로 건강관리

2. 해외여행 다니며 골프 치지만 은행까지는 항상 걸어 다닌다

3. 입버릇처럼 "돈 아깝다"…, 말레이시아에는 아파트 한 채 구입

4.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원도 아깝고, 흡족하면 10억 원도 오케이

5. 백화점에서 값 깎는 것 다반사…, '물건' 만나면 바로 '베팅'

6. 자녀 과외비는 안 아낀다.…, 그림 모으고 외국계 은행 선호

7. 평소 LPG차 연연하면서 좋은 수입차 만나면 전시장에서 바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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