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강경파 볼턴

2019. 5. 29. 09:39政治

겁쟁이 볼턴은 전쟁을 원하는가

백인 기병대장’, ‘인간 쓰레기라 불리는 극우파, 그가 편히 잠들어도 한반도에선 잠 설치는 사람 늘어

 

연합뉴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뒤 쓴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최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80년 전 조지 오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 빼고 당신들이 알아서 이겨줬으면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볼턴 보좌관은 이라크전쟁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슈퍼매파’(Super-hawk)로 꼽힐 정도로 극단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전쟁광이라 일컫는 볼턴 보좌관은 베트남전 당시 군복무를 어떻게 했을까? 1948년생인 볼턴 보좌관은 1966년 미국 예일대에 입학했다. 그가 예일대를 다닌 1960년대 후반 미국 대학가에서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거셌다. 당시 미국은 지금처럼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였다. 그는 또래 대학생들과 달리 베트남전을 지지했다. 그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를 우주 외계인처럼 느껴진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1970년 예일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곧 나올 예정이던 베트남전 징집영장을 기다리지 않고 메릴랜드 주방위군으로 입대해 4년간 군복무를 했다. 당시 주방위군 입대는 베트남전 파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도 베트남 대신 안전한 텍사스에서 주방위군으로 군복무를 마친 바 있다.

볼턴 보좌관은 예일대 졸업 25주년 기념 책자에 나는 동남아의 논에서 죽기 싫었다. 베트남전은 이미 졌다고 생각했다.”고 베트남전 참전 대신 주방위군 입대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볼턴 보좌관 같은 사람을 미국에서는 치킨호크’(Chickenhawk)라고 한다. 치킨은 겁쟁이, 호크는 강경파를 뜻한다. 1970년 미국 시사풍자 코미디 진행자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베트남 문제와 관련해 내 친구 가운데 스스로를 치킨호크라고 하는 녀석이 있는데,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지만 자신을 빼고 우리끼리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

미국 신문 <뉴햄프셔 가제트>는 치킨호크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남성 공직 인물로서, 첫째 정치적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동시에, 둘째 개인적으로 전시 병역의무를 한사코 피하려는 인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벌인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고위 정책결정권자 가운데 치킨호크가 상당수 있어 논란이 됐다. 한국 내 사정도 비슷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 치킨호크들이 강경 대응을 주도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안보대책회의를 하는데, 대통령부터 국가정보원장, 여당 대표까지 참가자 가운데 국방부 장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군 미필자였다. 요즘 안보를 강조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만성 담마진(두드러기)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볼턴 보좌관이 연일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는 동시적·병행적으로 표현되는 단계적 비핵화 접근 방식을 접고 모든 핵시설과 대량파괴무기를 한꺼번에 폐기하는 빅딜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동안 북한과의 실무 협상을 주도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311일 기존 단계적 비핵화 접근 방식을 뒤엎고 완전한 비핵화만이 유일한 협상 조건이라고 못박았다.

 

지난 2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장에 앉은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맨 왼쪽). 연합뉴스

볼턴의 말이 미국의 입장으로

볼턴 보좌관의 말이 미국의 입장이 되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볼턴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지 <애틀랜틱> 4월호는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에만 답하는 볼턴 보좌관은 이제 미국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됐다.고 평가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해 리비아식 모델을 거론했다가 북한의 거센 반발을 샀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인 리비아식 모델의 빼대는 북한이 빅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이행해야 상응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의 상징은 콧수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 <폭스뉴스> 회장이던 로저 에일리스가 워싱턴의 기존 정치와 외교를 뒤흔들려면 볼턴이 필요하다.”며 볼턴을 추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콧수염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볼턴은 그 콧수염이 문제야.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화염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

미국이나 한국이나 고위 공직자 가운데 콧수염을 기른 사람은 거의 없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볼턴 보좌관을 기용한 건 결국 그의 콧수염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콧수염을 기를 만큼 고집이 센 아웃사이더 성향을 트럼프 대통령이 높이 샀을 것이라는 게 이 신문의 해석이었다.

볼턴 보좌관의 이력을 살펴보면 아웃사이더 기질이 뚜렷하다. 그는 1948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방관, 어머니는 주부였다. 주변에 노동자 가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집안에서 첫 대학 진학자였다. 다른 네오콘들은 엘리트 집안 출신이 많았다.

네오콘들이 젊었을 때는 좌파였다가 나이 들어 우파로 전향한 것과 달리, 그는 10대부터 골수 우파였다. 볼턴은 17살인 고등학생 때 공화당 대통령선거 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미국 보수의 아이콘배리 골드워터(1909~98) 상원의원이 대선에 출마하자, 자원봉사를 했다. 골드워터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유 수호에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라고 외칠 정도로 극보수였다. 골드워터는 당시 적국인 소련에 대해 섣부른 협상은 양보를 초래한다.”며 자유를 지키는 한 가지 길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소련에 맞서 소련의 퇴각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볼턴 보좌관의 대북 전략은 골드워터가 제시한 대소련 전략을 따라한 듯 보인다.

불신의 오래된 역사, 변치 않는 생각

볼턴은 네오콘의 핵심으로 꼽힌다. 네오콘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주도하면서 이라크전쟁을 벌였다. 네오콘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비로운 패권주의를 표방하면서 고귀한 거짓말을 일삼는다. 쉽게 말해 이들은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정의이며 자비라고 생각한다. 북미 대륙에 이주한 영국인들이 원주민 인디언들을 마구 죽이고도 정의와 자비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정세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이 볼턴 보좌관을 인디언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백인기병대장으로 비유해 논란이 일었지만, 네오콘의 이런 사상적 배경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볼턴의 악연은 뿌리 깊다. 20021월 부시 정권은 악의 축에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포함시켰다. 볼턴은 당시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차관이었다.

20028, 미국 국무부 관료들이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뜻밖에 방북 기간에 미국과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두고 대립했다.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미국의 강경 대응을 주도한 인물이 볼턴이라고 한국과 미국 고위 관료들이 증언했다. 이들은 볼턴이 조잡한 형태의 정보로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무리하게 꺼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1차 북핵 위기 타결책)를 파탄 낸 장본인으로 여긴다. 볼턴도 당시 한-미 정부 협상파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햇볕정책 전도사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골수 북한 옹호자’(real DPRK apologist)라고 했다.

2003년 볼턴은 강연에서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적인 독재자라고 했다. 이에 발끈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볼턴을 인간쓰레기’, ‘피에 굶주린 흡혈귀라며 맞불을 놓았다.

볼턴이 공직에서 물러나고 2007년 펴낸 회고록의 제목이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다자협력에 기초한 국제기구와 미 국무부 외교관의 협상을 항복이라며 조롱하고 깎아내렸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북 압박할 때마다 트럼프 지지율은 올라가

시간이 꽤 흘렀지만, 북한을 극도로 불신하는 볼턴의 생각은 요지부동이다. 볼턴은 지난해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되기 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인터뷰에서 나는 북한이 진지하다는 데 회의적이다. 그들은 시간을 벌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북한 인민들을 위해 경제적 발전을 원한다면, 한반도 분단 제스처를 끝내고 북한이 한국 정부에 통일을 요청해야 한다.”그것이 북한 인민을 지원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자, <뉴욕타임스> 사설 제목이 볼턴은 정말 위험하다.’였다. 이 신문은 볼턴만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볼턴 보좌관이 앞장서 북한을 압박할 때마다 트럼프 정부 지지율은 올라가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라스무센이 집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8일 기준으로 50%를 회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마이클 코언 청문회가 있었음에도 트럼프 정부 지지율이 올랐다. 지난해 1월 셧다운(연방정부 일시적 업무 정지) 우려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4%(라스무센 조사)로 떨어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볼턴 카드는 대북 압박과 국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양수겸장이다.

볼턴은 20071월 유엔대사에서 물러난 뒤 <미국의 소리>(VOA)와 한 인터뷰에서 강경정책을 주장하며 많은 비판과 반대에 직면했는데, 지치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을 받았다. 볼턴은 이렇게 답했다. “그에 대한 궁극적인 판단은 내가 밤에 편히 잠들 수 있는가이다.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진실로 믿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믿는 진실을 이야기하며, 그렇기 때문에 편안할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이 편하게 잠드는 요즘, 한반도에선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겨레21 1254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6762.html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등록 : 2019-03-15 14:26 수정 : 2019-03-17 09:34

[박영서 칼럼] `겁쟁이 강경파` 볼턴, 전쟁을 원하는가

지난 3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주최한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은 존 볼턴 때문이다. 점잖지 못한 표현이지만 볼턴은 한반도 문제에서 '매우 재수 없는 사람'이다." 이어 정 전 장관은 "그 사람(볼턴)을 보면 인디언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을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을 안 느끼는 '백인 기병대장'이 생각난다."는 말도 했다.

요즘 존 볼턴을 재수 없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란에 더 많을 것이다.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는 미국·이란 관계의 배후에 콧수염을 기른 그가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 12만 명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계획을 배후에서 주도한 인물이 볼턴으로 알려지자 이란은 "트럼프가 '콧수염' 말을 듣고 전쟁을 벌이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CNN도 존 볼턴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자(war whisperer)'라고 규정했다. CNN"트럼프와 볼턴은 베네수엘라나 북한 정책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 한 나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란"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이란과의 대결 태세를 강화하는 현 상황은 이라크전쟁 개전 직전과 흡사하다. 볼턴은 20033월 이라크 전쟁 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담당 차관이었던 볼턴은 무력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정보를 조작해 언론에 발표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면서 개전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증거는 나중에 허위로 밝혀졌다. 그 사이 이라크는 나라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대실패'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볼턴은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신이 한 역할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쟁광'으로 불리는 볼턴은 예일대학 로스쿨 출신이다. 그가 대학을 다녔던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거셌다. 특히 동부의 명문 예일은 평화운동의 총본부 격이었다. 볼턴은 또래 대학생들과 달리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그는 베트남전 참전 대신 주방위군 입대를 택했다. 전쟁터와는 거리가 먼 메릴랜드 주방위군으로 입대했다. 당시 주방위군 입대는 베트남전 징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미국에서 이런 사람들을 '치킨호크'(chickenhawks)라고 부른다. 치킨은 겁쟁이, 호크는 강경파를 뜻한다. 하기야 부시 행정부에서 이라크 전쟁을 벌이자고 목청껏 외친 사람 가운데 제대로 군 복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시 전 대통령도 텍사스 주방위군 출신이고 딕 체니 전 부통령도 베트남전 징집 연기 신청을 4차례나 해 모두 승인받았다.

이런 볼턴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은 이란 핵합의 파기 한 달 전이었다. 볼턴의 전임자였던 3성 장군 출신 허버트 맥매스터는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과 함께 핵 합의 유지에 적극적이었다. 이제 트럼프 주위에는 맥마스터나 틸러슨,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같은 냉정한 두뇌가 없다. 지금 트럼프를 둘러싼 인물들은 오랫동안 이란과의 전쟁을 지지해 온 볼턴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같은 '슈퍼 매파'들이다. 국방부 장관은 미국 방산업체 보잉 출신인 패트릭 섀너핸이 대행하고 있다.

볼턴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취임하자 대() 이란 무력행사의 길을 찾으면서 반대세력을 하나 하나 배제해 왔다. 볼턴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그에 대해 AFP통신은 "볼턴은 역대 행정부 보좌관 중 가장 강력한 위치에서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폼페이오가 강성이라고 하지만 볼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볼턴의 입지가 축소되는 분위기다. 변덕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의 대 이란 강공책에 짜증을 낸다는 소식이다. 지난 5(현지시각) 볼턴이 이란의 군사 도발 징후를 근거로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중동에 배치하고 있다는 성명을 직접 발표한 게 시발점이었다. 자신을 제치고 한걸음 앞서 나가는 볼턴이 트럼프는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대통령의 성격을 잘 아는 볼턴이 앞으로 이란 사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굽히면서 눈치를 살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말로 그의 입지가 축소됐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볼턴이 대 이란 정책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거의 평생 동안 이란과의 전쟁을 주장해왔던 볼턴이다. 트럼프를 지렛대 삼아 볼턴은 정말로 전쟁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그의 '호전적' 노선이 몰고 올 파장을 국제사회는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9052202102269061001&ref 박영서 기자 입력: 2019-05-21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