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11. 13:08ㆍ生活
고희를 바라보며
무한할 줄 알았고, 죽음이란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삶이 이제 고희(古稀)를 앞두고 고요히 과거를 되돌아보니, 이 덧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미숙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모두가 아쉽게 여겨질 뿐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지? 또한 내생이 있는지? 과연 환생하는지? 내가 아끼는 사람을 다시 또 볼 수 있을지, 환생한다면 어떤 삶을 살지 모두가 의문투성이란 생각을 가진 것이 얼마 전이다.
군대는 줄서기 나름이란 말이 있다. 70년대에 제일 말단 졸병으로서 군을 경험한 나로서는 그 말이 정녕 허언인 것 같지는 않다.
비단 군대뿐이랴. 인생이 모두 줄서기인 것 같기도 하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怡山慧然禪師 發願文)에 '생봉중국 장우명사(生逢中國 長遇明師)', 즉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란 말이 있듯이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나라, 내우외환이 없는 부강한 나라에 태어날 수도 있고, 국가적 변란이 있을 때 태어날 수도 있고,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날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같은 나라라도 입시제도나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때에 태어날 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좋은 가문, 좋은 부모 아래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더라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주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자기의 기본적 운명이니 이것(사주)도 어찌 보면 줄서기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 풍수나 이름, 관상, 수상 골상, 족상도 사람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그 사람의 기본적인 운명이 아닌가 한다.
나아가 이런 기본적인 운명인 줄서서 얻은 운명과 전생에 닦아놓은 인연공덕이란 선험적 요소와 후험적 요소가 작용하여 그 사람의 운명(일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바탕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사람의 운명은 단 몇 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선험적 요소와 후험적인 요소가 발현된 사람의 운명은 같은 사주, 같은 이름이라도 동일한 삶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고, 봉사하고, 선업을 짓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여 선•후험적 요소의 나쁜 점은 없애고 좋은 점은 더욱 고양하기 위해 온갖 방편을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자신의 삶(운명)을 대운(大運)으로 발현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인생은 한낱 줄서기라고 단념하지 말고, 자신의 삶(운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지나친 물욕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내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생의 기억이 없어선지는 몰라도 아마도 내생이 있다면 내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갖춘 4가지 원만한 깨달음의 지혜(智慧)인 사지(四知)를 깨달아서 불계(佛界)에 들었거나, 적어도 윤회(輪廻)가 없는 성문계(聲聞界) 이상에 들었다면 인간의 운명을 초월하였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