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당

2021. 4. 16. 10:06風水

[한국의 명당] 심재학당과 함께 하는 풍수답사

[한국의 명당] 심재학당과 함께 하는 풍수답사(1)

(1) 명당 중 최고 명당··· 이승만·DJ 묘역 사이 창빈 안씨(昌嬪安氏) 

그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장흥 묘지는 풍수상 좋은 땅이 아니오." 창빈 안씨가 죽은 지 1년 만에 이장을 한 뒤 손자부터 줄줄이 임금에 오른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보통 시민들에겐 ‘동작동 국립묘지’라는 표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다. 1955년 7월 국군묘지로 조성되었다가,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군인이 아닌 유공자들도 안장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대통령들과 각계 저명인사들도 묻혀 있다.

현충원은 그런 남다른 의미를 가진 만큼 국가에 충성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이 선거 당선 등 특별한 날에 찾아가 마음을 다잡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알리기도 한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해 요즘 같은 봄날엔 참배객뿐 아니라 상춘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동작대교 남단 노을카페에서 본 현충원 전경. 왼쪽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관악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강과 만나는 곳에 있는 현충원은 인근 동작대교 위에서 보면 그 전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순국 영령들의 올곧음을 상징하듯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전개된 끝도 없는 묘지 행렬이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셀 수 없이 많은 묘지 중 ‘국가유공자’라는 원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묘지가 하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묘지다. 바로 창빈 안씨 묘이다.

동작동 현충원에서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창빈 안씨 묘

경내 한가운데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사이에 있는 주차장에 ‘창빈 안씨 묘역’이란 안내표지가 있다. 여기서 30m쯤 올라가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덤 하나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묘지로 가는 오솔길에 서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1550년경에 이 묘가 조성됐음을 알려준다. 현충원보다 400년이 더 됐다는 얘기다. 창빈 안씨가 사실상 이 구역의 본토박이 터줏대감임을 말해주는 셈이다.

창빈 안씨는 누구일까. 창빈은 조선 선조 임금의 할머니다. 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 2년(1507년) 궁녀로 뽑혔다. 스무 살 때 중종의 총애를 입어 영양군, 덕흥군, 정신 옹주 등 2남 1녀를 낳았고, 1549년 5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하던 시기였다. 중종이 죽고(1544년) 다음 임금인 인종이 즉위 1년도 안 된 31세의 나이에 죽자(1545년), 인종의 이복동생인 명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34세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는다(1567년).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어수선한 정국에서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선조)이 바로 창빈 안씨가 낳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다.

창빈 안씨의 입장에서는 손자가 임금이 된 것이다. 후궁의 손자가 임금이 되기는 조선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이후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이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의 조선은 ‘창빈의 조선’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풍수적으로 봤을 때 창빈 안씨의 묘소가 현충원 안에서 가장 좋다는, 이른바 ‘혈(穴) 자리’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점이다.

창빈 묘에 얽힌 풍수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1549년 10월 창빈이 죽자 아들 덕흥군은 경기도 장흥에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그곳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1년 만에 이장을 결심한다. 지금도 이장이 쉽지 않지만, 당시엔 이장한다는 것은 새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았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까닭에 왕가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덕흥군의 속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장을 결심한 그는 실력 있는 풍수 지관들을 동원해서 명당자리를 찾았고, 그곳이 바로 지금 창빈 묘역이다. 이장한 지 3년 만인 1552년 하성군이 태어났다. 그리고 1567년에 하성군은 선조 임금이 되었다.

하성군이 임금이 되자 창빈 묘역은 그야말로 ‘임금이 난 명당 터’가 됐다. ‘할머니 묘의 발복으로 임금이 됐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풍수설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낮에는 유교, 밤에는 풍수를 공부하고 토론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겸재 정선이 그린〈동작진〉 동작대교 북쪽에서 지금의 현충원 쪽을 보고 그렸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데, 감각 있는 화가들의 눈에 이런 절묘한 스토리가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엽에 그린 '동작진(銅雀津)'은 바로 지금의 현충원 일대가 배경이다. 좌우의 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그 앞으로 한강이 흐른다. 멀리 보이는 관악산이 든든하다.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으로, 당시 선비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터임을 보여준다.

풍수적으로 설명하면 관악산(祖山)의 기운을 이어받은 서달산(主山)이 좌우로 두 팔을 벌려 현충원을 감싸면서 흑석동 쪽의 산이 좌청룡(左靑龍), 사당동 쪽이 우백호(右白虎)가 된다. 서달산 능선 하나가 박정희 묘역을 살짝 비켜 내려오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어 봉우리 하나를 만든다. 장군봉이다. 장군봉은 풍수상 현무(玄武)정이라 부른다. 주산의 강한 기운을 잠시 머물게 하였다가 다시 조금씩 흘려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 기운은 장군봉에서 다시 중심 산줄기(來龍)로 내려와 창빈 묘역에서 멈춘다. 땅 기운이 오롯이 뭉친 곳인데 이런 자리를 ‘혈(穴)’이라고 부른다.

능선의 오른쪽 산이 서달산. 왼쪽 산 아래가 박정희 대통령 묘소

또한 기운이 좋은 터는 양쪽에서 물길이 흐르다 혈 자리 앞에서 하나로 합쳐(水口) 흘러나간다. 지금은 도로포장 등으로 금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창빈 묘역 양쪽으로 물길이 흐르다 묘역 앞에서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새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기운의 흐름이 조산(관악산) → 주산(서달산) → 현무정(장군봉) → 내룡(국가유공자 묘역) → 혈(창빈 묘) → 명당(일반 사병 묘역) → 수구(현충원 정문) → 객수(한강)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풍수에서는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창출한다(山主人 水主財)’고 얘기한다. 풍수의 핵심 화두 중 하나다. 그런 측면에서도 창빈 묘역은 좋은 산(인물)과 생기 넘치는 물(재물)을 다 품어 안고 있는 명당인 셈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창빈 묘역 왼쪽 100m 지점에 이승만 묘역이 있고, 오른쪽 뒤편 10m 거리에는 김대중 묘역이 있다. 그 뒤로는 정일형·이태영 부부, 시인 이은상, 광복군 출신 이범석,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한글 학자 주시경, 민족지도자 조만식 등 쟁쟁한 인물들이 안장된 국가유공자 묘역과 장군묘역이 이어지고, 장군봉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박정희 묘역이 있다. 김영삼 묘역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창빈 안씨 묘에서 앞을 볼 때 왼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에서 앞을 볼 때 오른쪽에 자리 잡은 김대중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 뒤편에 자리 잡은 박정희 대통령 묘

창빈 안씨 묘역에서 앞을 볼 때 왼쪽 건너편 산자락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묘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역대 대통령들과 국가 유공자들이 혈 자리에 있는 창빈 안씨를 호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동작동 현충원. 관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한강을 만나는 지점에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그림=안충기

심재학당은 풍수학자 심재(心齋) 김두규 교수와 함께 영역이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한다. 고서 강독과 답사를 하며 풍수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다.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4036469 글=심재학당, 그림·사진=안충기 기자·화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입력 2021.04.16 05:00 수정 2021.04.16 09:11

[한국의 명당] 심재학당과 함께 하는 풍수답사(2)

(2) 서울 한남동 BTS·김태희 그리고 재벌가, 이들이 도장 찍은 강북땅은?

BTS 숙소 ‘한남더힐’, 최고가 아파트 명성, 영사관·대사관 몰려 외교 1번지로도 꼽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어디일까. 가장 살기 좋은 아파트는?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남더힐’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강북 도심과 강남의 중심을 관통하는 한남대로를 사이에 놓고 마주한 ‘나인원한남’과 함께.

실제 ‘한남더힐’은 지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공식 통계상 ‘가장 비싼 아파트’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한 채당 80억~90억 원에 거래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BTS(방탄소년단)의 숙소로 알려져 있고, 김태희·비 부부 같은 유명 연예인은 물론 구광모 LG회장 등 재벌 총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돈 많은 기업인이 많이 산다고 소문났다.

‘나인원한남(341가구)’도 ‘한남더힐(600가구)’보다 단지 규모는 작지만, 빅뱅의 지드래곤, 배우 배용준 등 거주인 유명세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구글어스로 본 한남동 일대. 과거 단국대학교 부지에 세운 ‘한남더힐’. 유명인들이 모여 사는 최고가 아파트다.(중앙포토)

과거 단국대학교 부지에 세운 ‘한남더힐’. 유명인들이 모여 사는 최고가 아파트다.(중앙포토)

‘한남더힐’과 마주보고 있는 아파트 ‘나인원한남’(중앙포토)

그러나 한남동의 진짜 알짜배기는 하얏트호텔 인근 주택가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모여 사는 집단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동네 가장 높은 자리에 삼성 승지원(承志園)이 자리 잡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거주지였고,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업무를 보거나 중요한 손님을 맞는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승지원은 인근 리움미술관과 함께 삼성 가문의 상징적 장소다.

현대·SK·LG 등 4대 재벌은 물론 금호·두산·동부·롯데·태평양·신세계·농심·한진 등 상당수 재벌이 이웃사촌이다. 행정구역상 이태원동인 곳도 있지만, 통상 이 동네 전체를 한남동이라 부른다.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하얏트호텔(연합뉴스)

대기업 오너들 저택이 모여 있는 한남동 고급주택단지(뉴스1)

한국 최고 부자들이 한남동에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꼽는 이유가 하나 있다. 풍수지리다. 실제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 동네 아파트와 주택을 소개할 때 ‘풍수가 좋은 곳’이라는 점을 핵심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풍수에서는 산의 형세를 사물이나 사람 혹은 동물에 비유하곤 한다. 이른바 형국론이다. 산· 물·바람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형성된 전체 모습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유물신앙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와우형(臥牛形)’은 소가 옆으로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자자손손 누워서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나온다는 식이다.

풍수 전문가들은 한남동의 형세를 ‘영구음수(靈龜飮水)형’으로 본다. 남산에서 뻗어온 용맥이 한강을 만나는 형상을 신령스런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에 빗댔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장수(長壽)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거북이가 마르지 않는 한강 물을 취한다는 것은 그만큼 재물도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곳 사람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강 조망권만은 양보 못 하는 이유가 바로 ‘물을 막는 것은 곧 재물을 막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남산의 생김새가 말안장 같다고 한남동 형세를 ‘주마탈안(走馬脫鞍)형’이라고도 한다. 한반도 백두대간 1000리를 힘차게 달려온 말(좋은 기운)이 남산에 이르러 한강을 바라보며 안장을 벗고 편안하게 쉰다는 의미다. 영구음수형과 비슷한 뜻이다.

광복 직후 1940년대에 미군이 만든 한남동 일대 지도. 한강의 물길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 오른쪽에 뚝섬이 보인다. 서빙고역과 이촌역 앞은 백사장이 드넓다. 강 건너 강남 쪽은 허허벌판이다. 이 일대를 건너는 다리가 없고 한남동 가운데를 흐르는 한남천 물길도 그대로 보인다.

‘한남나인원’에서 이태원쪽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한남천을 복개하고 만든 길이다. 담장 안에 버드나무가 서 있었는데 빌딩 공사를 하며 베어냈다. 버드나무는 물길 옆에서 잘 자란다. 취재를 할 때 마침 이 길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맨홀 뚜껑이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맑은 물이 흘렀다. 한남천은 지금도 여전히 땅속을 흐르고 있다.

한남동 부자촌은 뒤로는 남산, 앞으로는 한강을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고 그 사이로 (지금은 대부분 복개됐지만) 명당수 한남천이 흐른다. 더구나 삼대가 적선을 해야 얻는다는 남향이다. 통상 좌청룡은 명예와 귄위의 터이고, 우백호는 재물과 예술의 터로 해석한다. 그 사이 한가운데인 하얏트호텔 앞쪽은 둘을 아우르는 귀한 터로 보기도 한다.

서울의 부자 동네 중 성북동과 평창동은 옛날부터 왕(경복궁)이나 권력자(청와대)와 가까워 ‘부자들이 사는 터’이고, 한남동은 ‘부자가 되는 터’라는 말이 있다. 이 구분법의 핵심은 재물을 상징하는 물줄기(한강)의 유무일 것이다.

하얏트호텔 주차장에서 본 한남동 일대. 매봉산 능선 너머가 한강이다.

바로 이 한강 때문에 한남동을 에워싼 용산은 예로부터 도읍지 후보로 여겨졌다. 지금으로부터 900년 전인 1101년. 고려 숙종은 풍수설에 따라 도읍지를 옮기려 했다. 후보는 지금 경복궁이 있는 백악(북악)과 용산이었다.

당시 도읍지 선정에 관여했던 재상 최사추가 살핀 용산의 핵심은 남산의 중심 산줄기(中出脈)가 지금의 하얏트 호텔 입구-이태원 부군당 역사공원-녹사평역-둔지산-미군기지-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지고 그 끝이 한강과 닿아 있는 점이다. 백악은 방어와 경관에 좋지만, 강을 끼고 있는 용산은 상업 발전과 무역을 통한 대외진출의 적지로 여겨졌을 터이다.

승지원과 녹사평역 사이 능선에 있는 부군당.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다.

조선 건국 후에도 도읍지를 정할 때 태종의 측근 하륜은 백악보다는 무악(현재 연세대 일대)을 제안했다. 마포를 통한 한강 조운의 이로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하륜은 “숭례문에서 용산까지 운하를 파서 배를 통행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도읍지까지는 아니라도 그때 운하가 개통되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마을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 옆으로 난 길 이름이 유관순 길이다. 과거 이 주변에 있었던 공동묘지에 묻혔던 유관순 열사를 기념해 붙였다고 한다. 용산을 좌우로 내려다보는 길지다. 그 아래 녹사평 지하철역은 이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규모로는 전국 1·2등을 다툰다.

지난 2000년 건설 당시 역 주변에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한다. 현대에도 도읍지급의 관청이 들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입지인 셈이다.

바다를 향한 길목인 용산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탓에 침략을 노린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말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로 사용했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대가 이곳에 진을 쳤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했고, 해방 이후에는 주한미군 기지로 쓰여 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남동은 부촌이기에 앞서 외교 1번지로 꼽힌다. 수시로 외교 사절들의 만남이 이어지는 외교부 장관 공관이 자리 잡고 있고, 30여 개 나라의 대사관과 영사관이 있다. 게다가 이태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글로벌 타운이다.

용산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龍山 得天下)는 말이 그냥 나온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알기 쉽게 그린 한남동 일대. 능선위까지 빼곡한 집들을 걷어내니 지형의 뼈대가 드러난다. 남산~인왕산~백악산~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맥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면 그 끝이 백두산이다. 옛지도를 참고해서 한남천을 그려 넣었다. 지금은 모두 덮여 도로가 됐다.

알기 쉽게 그린 한남동 일대. 능선 위까지 빼곡한 집들을 걷어내니 지형의 뼈대가 드러난다. 남산~인왕산~백악산~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맥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면 그 끝이 백두산이다. 옛지도를 참고해서 한남천을 그려 넣었다. 지금은 모두 덮여 도로가 됐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51977 글=심재학당, 그림·사진=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그래픽=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21. 05. 07. 06:01 수정 2021. 05. 07.

[한국의 명당] 심재학당과 함께 하는 풍수답사(3)

(3) 서울 4대문 안

靑 대통령 관저 뒤편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 '꼬마 불상' 정체

백악산 좌우 산줄기가 감싸 안은 으뜸가는 도읍지, 낙산 기세 보완하려 흥인문에 산맥 뜻하는 '之' 넣어 내청룡 감사원-옛 경기고-윤보선가 능선은 인재의 산실, 우백호 능선 끝자락 효창공원 최고 길지는 3의사 묘역, 청계천을 앞뒤에 둔 종로 을지로는 '돈'이 흐르는 길

그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풍수(風水)’란 말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로 통한다. 바람을 감추고(막아주고), 물을 넉넉히 공급해 주는 곳이 명당이란 얘기다. 농사짓기 좋은 터를 의미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와 비슷한 맥락이다. 큰 산(주산)을 중심으로 좌우 능선(좌청룡, 우백호)이 바람을 막아주며 그 사이로 냇물이 흐른다. 높은 지대인 산 쪽에 관청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고, 그 아래 냇가엔 농사짓는 들판이 있다. 이런 생김새의 터는 그 규모가 크면 한 나라의 도읍지가 되고, 작으면 시·군 단위나 읍내 수준의 마을이 형성된다. 그런 면에서 서울 백악산을 기준으로 좌청룡(혜화동, 동숭동, 이화동을 거쳐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낙산 능선)과 우백호(자하문, 인왕산, 무악재, 만리재를 지나 효창공원으로 이어지는 능선)가 남산을 향해 감싸 안고, 그 사이로 청계천이 흐르는 조선의 수도 한양(사대문 안)은 으뜸가는 도읍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남산에서 본 서울 도심. 시가지 너머로 북한산~백악산~인왕산~안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뉴스1)

1926년 일제는 10년 공사 끝에 광화문과 경복궁 근정전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공했다. 조선의 맥을 끊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 건물은 광복 뒤 미군정청 하지 중장의 집무실로 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식을 연 장소이자 제헌국회와 제2대 국회의사당이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정부청사로 쓰였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내세워 이를 철거했다. 그 뒤 경복궁 복원사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중앙포토)

물론 제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땅을 완벽하게 만드는 노력을 풍수에서는 ‘비보(裨補)’라고 한다. 약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뜻이다. 사람이 병들었을 때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병이 낫는 것처럼, 산천의 병도 비보 행위를 통해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불교와 민간 신앙이 강했던 시절에는 땅의 기운이 부족한 곳은 절을 지어 보충하고, 지나친 곳은 불상으로 누르고, 달아나는 곳은 탑을 세워 멈추게 했다. 지금 대통령 가족이 사는 청와대 관저 바로 뒤편에 불상이 있는 것도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부드럽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해석도 있다(불상 규모가 작아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당간지주, 비석, 남근석, 연못, 정자 등 많은 문화유산이 이런 차원에서 세워졌다. 풍수 공부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경복궁 경회루와 청와대 뒤로 백악산이 웅장하다. 산은 겨울이 돼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겨울 눈이 내렸을 때 모습이다.(연합뉴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에 있는 작은 불상. 8세기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양식이다. 본래 경주 이거사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옮겨왔다. 백악산에서 내려오는 강한 기운을 무마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중앙포토)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 왕조도 완벽한 터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불리는 동대문이 대표적이다. 왜 숭례문(남대문), 돈의문(서대문)처럼 세 글자가 아니라 ‘之’ 자를 추가해 네 글자 이름을 붙였을까. 이유가 분명하다. 한자 ‘之’ 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기세 좋게 이어지는 산맥’을 의미하기도 한다. 뱀이나 용이 꿈틀거리며 힘 있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之’ 자를 닮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양의 지세는 우백호인 인왕산이 더 높고 긴 반면, 좌청룡인 낙산은 낮고 짧아 남산에서 장충동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날 때까지 뻥 뚫려 있는 모양새다. 바로 이 부족한 산세를 보완하기 위해 산의 흐름과 비슷한 ‘之’ 자를 추가한 것이다. 전형적인 비보풍수인 셈이다.

동대문의 본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청계천이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자리라 도성의 좌청룡 기운이 약해 흥인문에 之를 끼워 넣었다. 之는 ‘기운차게 이어지는 산맥’ 을 의미한다.(중앙포토)

또한 왕이 사는 경복궁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큰 산인 관악산은 불기운(火氣)이 많은 산으로 여겨졌다. 그 기운을 막기 위해 광화문 앞에 해태(해치)를 설치했다. 해태가 물을 뿜어 불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연못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 현판은 다른 문과 다르게 세로로 세웠는데, 숭(崇)자는 불꽃(火)이 위로 타오르는 듯한 모양이고, 례(禮)는 오행상 화(火)를 뜻한다. 두 글자를 세로로 놓으면 불꽃 염(炎)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불로 막겠다는 의지이다.

숭례문 현판은 세로다. 崇과 禮가 모두 불을 의미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불로 막겠다는 의미다. 최정동 기자

이 같은 비보풍수는 궁궐뿐 아니라 개인들이 사는 집의 건축이나 실내 인테리어에도 적극 활용되면서 끊임없는 얘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옛사람들이 집안에 산수화를 걸어놓은 것도 비보풍수의 일종이다. 풍수에서 산은 인물, 물은 재물을 뜻하므로 산수화는 ‘집안에 좋은 인재와 많은 재물이 들어오라’는 염원이다. 풍수 좋다는 한양에서 특히 좋은 터는 어디일까. 명예와 관직을 의미한다는 좌청룡 능선을 보면 창덕궁, 창경궁, 운현궁, 종묘 등 왕가와 관련된 건축물이 많다.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공부했던 성균관(혜화동)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은 곳(동숭동)도 낙산 자락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도 이곳에 있었다.

낙산(126m)은 야트막하지만 성곽 길에 서면 내사산(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에 안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종현 기자

좌청룡 능선의 안쪽에 있다고 내(內)청룡으로 불리는 감사원에서 정독도서관(경기고등학교 터)을 거쳐 윤보선 대통령 집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유명하다. 화초를 재배해 궁중에 납품하던 동네라 해서 화동(花洞) 1번지였던 경기고 터는 사육신 성삼문부터 조선말 서재필 김옥균 등의 집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고 인재의 산실로 부족함이 없는 터다.

백악산에서 낙산으로 흘러가는 능선 하나가 도성 안으로 내려온다. 감사원~정독도서관(옛 경기고 터)~윤보선가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앞으로 청계천이 흐르고 경복궁과 인왕산을 굽어볼 수 있는 자리다. 가운데가 정독도서관, 오른쪽 아래가 윤보선가와 헌법재판소다.(V WORLD지도 캡처)

정독도서관 정원에선 맞은편 우백호 능선의 핵심인 인왕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 정원에 ‘겸재 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얼마 전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최고로 여겨지는 인왕제색도를 새긴 비석이다. 이 그림처럼 호랑이의 늠름한 기상을 보여주는 인왕산 언저리에는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회장이 살던 자택도 있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 인왕산을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가로 138.2㎝, 세로 79.2㎝이다. 1984년 8월 6일 국보로 지정됐다. 인왕산은 한양 도성 우백호의 중심이다.(문화재청)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 인왕산 아래 있다. 왼쪽 웅장한 바위에는 양산동천(陽山洞天), 남거유거(南渠幽居) 글자가 새겨져 있다. 볕이 잘 들고 신선이 살 만큼 경치가 뛰어난 곳, 남거 장호진이 유거하는 집이라는 의미다.(연합뉴스)

인왕산에서 이어진 우백호 능선의 끝자락에 효창공원이 있다. 이 터의 역사는 그대로 풍수의 역사다. 풍수원리에 기초해 수원 화성을 건설할 정도로 조선 임금 중에서 가장 풍수에 해박했던 인물인 정조는 아들 문효세자와 문효를 낳은 의빈 성씨가 죽자 소나무가 울창하고 한강이 보이는 이곳에 효창묘를 조성했다. 고종은 이를 '효창원(孝昌園)'으로 승격했다. 1921년 일제는 이를 훼손해 외국인용 골프장을 개설하는 등 유원지로 활용했다. 문효와 의빈의 묘는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장했다. 해방이 되자 풍수 식견이 높은 김구 선생이 주도해 해외에서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3의사묘(三義士墓)를 조성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문효세자가 묻혔던 곳이다. 김구도 나중에 효창공원 안에 안장되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최고 길지로 꼽히는 삼의사 묘역.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셨다. 맨 왼쪽은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를 모신 가묘다. 왼쪽에 김구선생 묘역이 있다. 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남산에서 신라호텔을 거쳐 장충동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좋은 맥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살면서 오늘의 삼성을 키웠던 장충동에는 지금도 CJ, 신세계, 한솔 등 범(汎)삼성 가문이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배산임수’는 농사에 좋은 터지만 장사에 좋은 터는 따로 있다. 이른바 ‘배수면가(背水面街)’. 뒤에는 돈을 상징하는 물길이, 앞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돈과 사람의 유통이 편리한 곳으로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따라 이어진 종로와 을지로를 말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물품을 공급하던 상점인 육의전이 종로를 따라 들어섰고, 많은 기업들이 을지로를 중심으로 성장했음은 우연이 아니다. 청계천 상가는 지금도 전국에서 현금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의 종로2가 풍경. 전차레일이 깔린 도로를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종로는 조선시대 이래로 유통의 중심가다.(중앙포토)

서울 도심의 상징이 된 청계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말에 완전히 덮었다가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5년에 복원을 마쳤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한다. 김상선 기자

◆ 도읍지 한양의 풍수가 좋은데 조선 왕조가 왜 그리 무능했냐는 비판도 많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중국엔 300년을 넘긴 왕조가 하나도 없는데, 그 무능한 조선 왕조가 500년을 이어간 건 그나마 풍수 덕일 것이라고.

서울은 개발연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산등성이까지 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왼쪽의 인왕산과 안산에서 효창공원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와 오른쪽 낙산 줄기 위의 집들을 걷어내니 서울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68629 글=심재학당, 그림=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입력 2021. 05. 28. 06:00 수정 2021. 05. 28. 15:08 림=안충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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