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 출산율이란 출산 가능한 여성의 나이 15세부터 49세까지를 기준으로, 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0.81명으로 OECD 부동의 꼴찌다. 2022년 1~11월 출생아 수 23만1863명으로 출생아가 25만 명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과거 1960년대에 고향인 부산의 ‘국민학교‘ 시절에 운동장에서아침 조례를 할라치면 학생들이 많아서 6개 학년이 모두 정렬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항상 모두에 하시는 말씀은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우리 6천여 명의 부산성지학교 학생들~~~”
말이 6천이지 1개 학년에 천명이다. 한 학급에 70명은 예사고, 1개 학년에 보통 15반까지 있었으니, 6천여 명이라는 말씀이 허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사는 면의 총 인구보다 두 배 이상의 수다. 그 당시 웬만한시골 학교도 60명 정도의 남·녀 각 한 학급씩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농을 막론하고 웬만한 초등학교는 폐교했거나 통폐합 할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는 인구가 국력이라는 점을 간과하였다. 셋째부터는 출산 의료보험 급여도 주지 않는근시안적이고,단견적인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세뇌된 일부의 사람은 아직도 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나는 평생을 교직에 있었기 때문에 퇴직할 때까지 무려 55년 6개월을 학교에 다녔다. 8, 90년대에 고교 3학년을 맡아서 진학지도를 하였다. 그때는 학생 한 명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한 해는 한 학급 60명 정도에서 24명을 진학시켜 15개 반 중에서 진학률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학생 수가 많아서 대입경쟁률이 치열하였다. 그때 예비고사의 후속 제도인 학력고사 응시생이 60만 명을 상회하여 경쟁률이 치열하였다. 2000년대 초에 입시지도를 할 때에도 그랬다. 그때 내가 봉직한 학교는 한 학년이 주간 15학급, 야간 3학급 모두 48학급으로 학생수가 무려 3,000을 헤아렸다. 지금 내가 사는 면의 총 인구수와 비슷하다.그야말로 바글바글 했다. 교무실에서 운동장을 내려다 보면 학생들의 놀고 있는 모습이 마치 '브라운운동' 같았다. 그런데 20년 정도 지난 지금은 대학도 많이 늘어났지만 입학할 학생이 없어서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 문이 닫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지금은 ‘비혼이다’, ‘결혼은 해도 출산은 하지 않겠다.’, ‘출산은 해도 한 명만’ 이런 시류로 흘러가고 있다. 위기다. 국가적 위기다. 아니 인류 생존의 위기다. 자연재해인 운석 충돌이나, 화산폭발 또는 인류가 자초한 기후의 변화가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과 2, 30여 년 만에 인간이 자체적으로 초래한 작금의 시류가 인류 멸망 위기의 서곡이 아닌가도 걱정이 된다.
국가의 존립에는 주권·영토·국민이라는 3요소가 필요하다. 지방소멸이다, 인구소멸이다 하는 위기 속에서 인적자원은 풍부할수록 좋다. 경제적으로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화는 내수로 일정 부분 충당이 되어야 한다. 내수가 허약하면 수출이 어지간히 잘되더라도 별 효과가 없다. 곧 국가존망의 위기로 이어진다.
내가 사는 이 시골도 둘러보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소년도 도대체 볼 수가 없다. 그럴수록 시골의 빈집도 늘어난다. 나아가 연·기금의 고뇌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6, 70년대가 경제적으로는 지금보다 좋지 않았지만 삶의 만족도는 지금보다 좋았다고 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큰 물질적인 풍요는 차치하고서라도 삶의 질을 제고하고, 대가족 사회는 아니더라도 일가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명절을 맞이하여 서로 방문하고, 가족끼리 서로 위해주고, 이웃끼리 믿고 화합하는 인간 내음이 물씬 나는 세상을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