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천국과 지옥)

2023. 1. 31. 15:43日記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에서 무대의 장중함과 더불어 ‘나훈아’가 왜 가황(歌皇)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선보인 노래가 ‘테스형’이었다. 처음에는 ‘테스형’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듣고 보니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Know thyself)’라고 말했던 기원전 4세기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웃기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심란한 일이 있어 자주 듣다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노래로 다가 왔다. 평소에도 ‘나훈아’를 무척 좋아했지만 가사의 내용이라든가, 그 열창하는 태도라든가, 호소력 짙은 음색을 통해 왜 그가 왜 ‘가황’인가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 2절에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 형.”이란 부분이 있다. ‘저 세상’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천국’의 존재는 의문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석가모니, 예수의 말대로 극락과 지옥,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세상에 같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는 위로 ‘불세계’에서 아래로 ‘지옥세계’까지 10界로 되어 있고, 그것은 또 100界로, 더 나아가 수많은 세계로 되어 있다. 그 세계의 중간쯤에 ‘인간세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간세계에 분명히 ‘천국’도 있고, ‘지옥’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이 '천국'일 수 있겠지만 전쟁의 불바다는 분명이 ‘지옥’일 것이고, 평화의 세계는 ‘천국’일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가 처한 상황이 ‘지옥‘보다 더할 수도 있고, ’천국‘ 이상의 세계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물질적 상황도 그렇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적으로 궁핍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천국‘의 삶을, 물질적으로 풍족하더라도 ‘지옥’의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빈부가 갈리는 것은 어떤 법칙이 작용한 것일까? 물질적으로 아무리 갖추었더라도 지나친 욕심은 ‘지옥’의 세계를, 현실에 만족하면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사회의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이 야기되면 ‘지옥’일 것이다. 인간사회 속에서 상존하는 그러한 갈등도 원만하게 수습하면 거기가 바로 ‘천국’일 것이다.

덕과 공은 쌓은 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고 한다. 전생에서 지은 복을 금생에서 받고, 금생의 선업이 내생의 복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인과응보의 반응속도가 너무 빨라서 금생에 지은 과보를 금생에서 받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태도가 ‘천국’과 ‘지옥’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해묵은 의문이지만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또 이 세상 하직하면 모든 것이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세계가 있을까? 지구 40억 년의 유장한 시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보다 미미한 인간의 수명이 다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거기도 분명 우리 인간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 것이기에 선한 마음과 선업을 닦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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