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3. 11:03ㆍ人文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별 다른 의미 없는 타인의 언행에 쉽게 ‘나를 무시했다’며 화를 내거나 딱히 삶에서 크게 성취한 것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존경이나 ‘특별한 대접’을 받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자격 의식(sense of entitlement)’이 심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다.
이들은 흔히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자기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도 자주 보인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라도 돈과 명예,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요소들을 수집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은 남들보다 특별하며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자기 존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과하게 부풀려진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여러가지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타인을 악의적으로 질투하는 것이다.
암스테르담대의 심리학자 옌스 랭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자격의식(“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수준과 사회적 지위를 향한 욕망(“주변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고 우러러보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제하게 내버려두기보다는 내가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악의적인 질투심(“나보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망했으면 좋겠다.”)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자격의식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지위를 향한 욕망이 높고 악의적인 질투심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한 그룹(자격의식 조건)의 사람들에게
① 왜 나는 삶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일들을 바랄 자격이 있는지
② 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③ 왜 내 삶은 내가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야 하는지
위 3가지를 떠올려 보게 했고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왜 1, 2, 3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떠올려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사회적 지위를 향한 욕망과 악의적인 질투심을 측정했을 때 자격의식을 높인 조건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 지위를 향한 갈망과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향한 악의적인 질투를 더 심하게 보이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를 향한 그들의 열망과는 별개로 주변 사람들에게 실제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는 자격의식이 높은 이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서려는 지배욕구는 높으나 실제로 그럴 만큼 실력이나 인간성이 좋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 갈망하며 스스로 자신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과 다르게 주변으로부터 딱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질투가 심하고 이기적이며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사람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굳이 타인을 깎아내리고 이기적·비윤리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딱히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들은 현실과 다르게 자의식만 높아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을 써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애쓰기보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길을 걷는 걷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일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상종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물론 어느 한 가지 특성에 있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더 좋은 대접과 특권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기억하자. 사람들은 모두 수천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 중 한두 개 정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날 수 있으나 또 다른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절대적으로 특출하고 중요한 인간이란 없는 법이다.
몇 가지 특성이 남들보다 낫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불행해야 한다는 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수록, 왜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하거나 혹은 못난 것 같은데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이냐며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면서 점점 더 고립되고 불행해져 갈 뿐이다. 추상적인 관념 또는 허상에 불과한 나의 이미지 나라는 사람의 중요성 등에 집중할 시간에 내 눈 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경험에 집중하며 실제로 밀도 있는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3655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입력 2024.2.3. 08:00
Lange, J., Redford, L., & Crusius, J. (2019). A status-seeking account of psychological entitlemen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5(7), 1113-1128.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착각이 불러온 분노
수치심과 죄책감은 인간 고유의 독특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주로 내적 양심, 그리고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과 관련이 많이 된다.
최근 국내에선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호소를 묵살하거나 외국인을 혐오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사실 그동안 곪아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것뿐이지만 주변을 찾아보면 성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난 사람들이 하는 주장의 특징은 이게 '다 OO 때문이야'라는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이게 다 이기적인 장애인, 여성, 개념 없는 부모,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이라며 분노의 대상이 구체적이다. 또 분노의 대상은 대체로 약자들이다. 장애인, 여성, 아이, 외국인 등 딱 봐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기보다 억압당하는 쪽인 사람들이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당연하게 누리는 이동권을 장애인이 요구하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수준의 사회 진출을 요구하면 이미 충분히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나아가 장애인과 여성이 비장애인이나 남성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이렇게 분노 섞인 주장들의 기저에는 분노와 함께 억울함이 깔려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억울한 걸까?
“특권이 지속되면 평등을 억압으로 느낀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별다른 양보나 배려 없이 많은 자원을 누리며 살아 온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나아가 자신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누릴 어떤 자격이 있다는 착각을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매일 치킨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먹던 사람은 치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자신의 몫이 줄어서 억울하다고 우는 소리를 낸다. 원래 나눠야 하는 치킨을 나눴을 뿐인데 뭐가 억울하냐고 물으면 원래 계속해서 자기가 치킨을 독차지 했으므로 계속해서 혼자 먹어치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그간 자신은 다른 사람들이 없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더 많이 먹는 것이 정당하다는 유의 주장들이 나온다.
사실 별 다른 이유 없이 자신의 정체성, 즉 단지 비장애인, 남성, 성인, 자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누리고 있었을 뿐이지만 이러한 특별대우의 존재는 잘 인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며 자신은 약자들과 달리 좀 더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자신은 남성이어서, 백인이기 때문에 여성 또는 유색인종들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 사회적 존경을 받아 마땅하며 그러지 못한 상황은 불의한 상황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자신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을 '자격의식'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격의식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각종 분노와 폭력의 한 가지 주요 원인이다.
자격의식에 의한 분노와 공격성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격의식은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나타나는 공격성과 큰 관련을 보인다.예컨대 성폭력 범죄자들은 많은 경우 유독 ‘여성’을 향해 피해의식을 보인다. 또 남성에게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여성에 한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자신은 적어도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이며 여성에게만큼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과 관련을 보인다. 결국 이성을 향해 갖는 모종의 우월감과 권리의식이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피해의식과 폭력성을 설명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견해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교수 연구팀은 자격의식이 지나친 남성의 경우 이성인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으며 자신은 그걸 받아낼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성향을 띤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일이 있다. 이런 성향이 마치 여성이 자신에게 성관계를 빚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한 자격의식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여기므로 여성이 자신의 호의나 접근을 거절하기라도 하면 당연히 가져야 할 무엇을 빼앗긴 것처럼 화를 내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조지아대 데니스 라이디 교수 연구팀은 최근 지나친 자격의식과 착취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피곤하게 만든 경쟁 상대에게 보복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을 취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할 무엇을 방해하는 이들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행동 패턴이 읽히는 부분이다. 연구자들은 ‘비대한 자아’가 쓸데없이 과한 공격성을 북돋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특히 각종 혐오범죄, 인종차별, 불링같이 타인에 대한 심각한 폭력을 동반하는 범죄들이나 백인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 같은 것들은 자기비하가 심하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은 당연히 남들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의 심리학자 브레드 부시먼 교수 등이 30여년에 걸친 공격성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종교, 인종, 성별, 성적지향,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교, 국가 등)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하나 때문에 평화를 해치는 각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에는 자기 마음 다스리기도 포함된다.
일상 속의 자격의식
이런 자격의식과 분노는 일생활에서 우월감을 추구하고 우열을 따지면서 생기는 감정인 열등감과도 맞닿아 있다. 흔히 우리가 열등감의 표출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자신이 진짜 열등하고 열등해도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은 남들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지않은 현실에 의해 좌절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이다. 달리말하면 자신은 남들보다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자격의식은 흔히 열등감이라는 좌절감과 박탈감의 형태로 우리 안에 숨어 있다.
따라서 특히 누군가가 미워지고 자신의 모든 불행이 특정 부류의 사람들 때문인 것 같이 느껴질 때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의식적인 주의를 기울이며 방금 분노한 것이 우월감에 대한 집착 때문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열등감이 느껴진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고 꼭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있었는지, 과민 반응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내 삶이 그러하듯 타인의 삶 또한 많은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많은 고통들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그러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자신은 특별히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자격의식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어 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탓에 좌절과 분노가 심한 것은 아닌지 따져보고 감정을 재평가하는 과정도 자격의식과 그에 따른 좌절감 해소를 돕는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5405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2022.07.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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