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로 밀양읍성길

2025. 11. 19. 19:07徒步

금년 1월 4일 청도 오누이공원에서 출발하여 삼랑진까지
영남대로를 걸은 바 있다.

혹자는 이 영남대로를 ‘왕의길’이라고도 한다.
가당치도 않은 어불성설이다.

그야말로 민초들은 물론 청운의 뜻을 품은 젊은 선비들, 관리들
말하자면 우리 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명실 공히 ‘삶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날 걷기에서 밀양읍내 구간은
고증된 경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느낌을 가졌다.

국제신문 2012년 4월 2일짜 기사에 이런 것이 있다.
‘동문고개를 지나면 사신 등을 맞는 북정원(北亭院·현 밀양대공원 내 충혼탑 일대) 터가 나오고, 이내 제사고개를 넘게 된다.’

한편 밀양시립박물관 이호종학예사는 ‘밀양읍성 구간은 북문을 지나 제사고개를 넘어 춘복마을 앞을 거쳐 신안마을로 향한다.’고 고증한다.

하여 그동안 항상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던 제사고개를 오늘(2025.11.19.) 탐방하였다.
아리랑대공원 제일 안쪽의 좌측으로 제사고개(아리랑고개)로 넘어가는 초입부가 있었다.

‘제사고개’란 이름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배어있다.
고갯길은 제법 번듯한 길이었다. 이정표만 아니더라면 정말 조선시대 옛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제사고개를 넘어 날머리로 나오니 춘복마을 ‘한화종합건재골재’ 맞은편이다.

여기서 큰길로 나와야 밀산교를 통과할 수 있지, 옛길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가면 경부선 철로가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갈 수가 없다.

도로로 나와서 신안마을로 방향을 잡아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 된다.

====================================================

영남대로嶺南大路는 조선시대의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존재했던 한성에서 동래까지 잇는 간선도로로 영남대로嶺南大路와 영남로嶺南路, 동래로東萊路 등의 명칭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전제부터 무언가 초점이 맞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아마도 1990년에 <영남대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난 이후>라는 워딩이 그전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는데

먼저 영남대로라는 명칭은 신경준이 작성·정리한 지리서 『도로고道路考, 1770)』에 이미 그 명칭이 드러나 있으며,(오류)

다음으로 <내이동쪽의 길이 영남대로임>임을 말하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아서 확인할 수가 없고, 다수가 말하는 경로와 차이가 남으로 좀 더 고증해야 할 것 같이 생각되고.

나아가 위 밀양부지도에 단장쪽으로 가는 길은 영남대로와 상관이 없는 길이고.

끝으로 제사고개길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근거로 그 설화의 배경을 들고 있는데 '길이 있고, 거기에 후대에 설화가 가미된 것이라고 보아야지, 설화가 후대의 배경이라 그전 시대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사 구서원 지역에 '영원사瑩原寺'가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거기에 서원을 만들었다고 '구서원舊書院'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영원사를 부정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먼저 18세기 전반 ~ 중반에는 고지도에서 영남대로 개념이 지도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남대로 개념(한양↔동래를 잇는 간선로) 자체는 조선 후기 도로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노선은 분명 신경준의『도로고道路考, 1770)에는 제4로, 문경새재 이남부터 동래까지는 영남로라고 했다.
그러나 국사관 논총이나, 부산 쪽 문화사 자료에서 조선시대 역원 관련 설명도 있다고 하고, 상주 지역 향토문화 연구에서는 읍지邑誌 등의 옛 지도나 문서에서 주민 또는 지방 차원에서 “영남대로”라는 명칭이 사용된 흔적도 있다고 하여 “영남대로”라는 명칭이 후대 학자들(특히 근현대 학자)에 의해 도로명을 재정리하고 재명명된 이름일 가능성이 타당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여기서는 영남대로의 밀양읍을 통과하는 경로는 이설들이 있는데, 특히 제사고개가 영남대로의 경로에 포함되느냐의 여부가 주요 쟁점이다.

영남대로는 밀양만 통과하는 것이 아니고, 울산을 경유하는 좌로左路, 밀양을 경유하는 중로中路, 김해를 경유하는 우로右路가 있다. 이런 영남대로는 장거리경로이다. 장거리는 경로와 시간의 단축을 통해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읍내를 꼭 통과 해야만 할 때를 제외하고는 복잡한 읍내를 많이 거치지 않고, 읍내의 외곽을 통과하는 가장 단거리로 길이 났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참고로 제시된 ‘密陽府地圖’도 보다시피 단거리 경로도 모든 도로가 읍성을 통과하지 않고 외곽지대의 단거리로 길이 나 있는 것이 보인다.

나아가 일제강점기에 경부선을 부설할 때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단거리 경로인 영남대로와 비슷하게 철로를 부설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므로 밀양읍의 영남대로는 경부선과의 근거리에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합리적일 것이다. 그래서 읍내를 통하지 않고 가는 길인 제사고개가 신안마을로 가기 위한 경로가 영남대로란 것이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대로大路는 강을 잘 건너지 않는다. 동래에서 출발하여 낙동강을 따라 오면서 처음으로 강을 건너는 곳이 밀양이다.. 밀양읍성 내에 노상리路上里, 노하리路下里리가 있었는데 이렇게 불리었던 것도 대로大路를 기준으로 나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남대로가 이 부근을 통과한 것의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밀양읍성 남문으로 들어와서 대로大路를 지나 밀양읍성 북문을 나와서 지금의 내이동 5통에 소재한 밀성회전교차로 부근에 있었던 송정마을 지나 북정원이 있는 곳 초입부인 제사고개로 향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제사고개는 밀양과 청도를 연겨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셈이다.

북정원은 사신을 맞이하는 곳이다. 당연히 길과 인접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또한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1:50000 『조선지도』에 신작로를 표시하기 전에 ‘대로大路'로 표기한 길이 있는데, 이 길이 제사고개였던 것이다. 그 길을 통해서 지금의 밀산교 앞에서 경부선 철로가 부설되기 이전의 그 길을 따라 지금의 상동면 신안마을로 향했던 것이다.

끝으로 영남대로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생활사의 축도縮圖였다.
영남대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선인들의 자취와 궤적의 총합이었다. 영남대로는 고려시대부터 공로公路로 자리했다. 이 길은 과거길의 선비부터 등짐 봇짐을 맨 장꾼들, 나들이 길의 민초들, 왕명을 수행하는 파발들과 공문서의 수발, 세금으로 거두는 세미, 조공품 운반, 관리들의 여행도 모두 이 길을 통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민족 전체의 길이지 어느 특정인의 길은 아닌 것이다.

 

영남대로

차 례1. 한민족 천년의 옛길, 1000리 새 길로 부활2. 영남대로가 깨어난다 프롤로그: 한민족의 옛길3. 영남대로가 깨어난다 부산 옛길 탐사: 동래부사 왜관 행찻길(상)4. 동래부사 왜관 행찻길 찾

auddks.tistory.com

 

영남대로 밀양구간

2025년 1월 4일 토요일 맑고,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2025년 정사년 새해 벽두에는 영남대로 밀양구간을 걷기로 하였다.우리 문학에 큰 흔적을 남긴 이호우, 이영도 남매를 기리는 청도 내호리 오누

auddks.tistory.com

 

'徒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다낭  (0) 2025.12.07
가을의 한 자락에서  (0) 2025.11.27
걷기 좋은 날  (0) 2025.11.17
홍성 용봉산  (0) 2025.10.26
시민걷기대회와 Ten Bridges Pre - Night Walk  (0)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