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8. 21:38ㆍ文化
'뇌물 PD' 붙잡힌 날, 어느 보조작가는 자살했는데…
방송사 내부 주종관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 촬영현장 인원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운영돼
수입 보통 月100만 원대 막내작가 살인적 노동, PD는 물론 PD아내의 개인 업무도 봐주기도
8월28일 검찰에 구속된 MBC 예능국 고재형 CP(책임PD)의 구속영장에 기재된 'PD의 삶'은 화려하다. 강남 룸살롱과 호텔 사우나 특실을 돌며 기획사 대표들과 거액의 도박을 즐겼고 해외여행 경비도 기획사가 댔다. 상장을 앞둔 기획사 주식을 사들여 상장과 동시에 거액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고 CP가 구속되던 날 새벽 2시 반 서울 양천구 목동 SBS 방송센터 23층 옥상에서 이 방송사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팀의 보조 작가 김모(여·22)씨가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렸다. 자살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월급 명세서는 충격적이었다.
1년간 외주 제작사에서 아침 방송 보조작가로 일하다 올 7월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꿈이 이뤄졌다'고 좋아했다던 김씨의 월급은 약 80만~100만원이었다. 고 CP의 화려한 삶과 김 작가의 초라한 급여 명세서. 방송계 내부의 '주종(主從)관계'는 철저하게 이 둘의 삶에 투영되어 있었다.
◀ TV 프로그램은 PD와 AD(조연출), FD(플로어 디렉터), 조명·카메라·오디오 담당, 메인작가와 보조 작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작품이다. 그러나 PD와 수습 PD 격인 AD를 제외하면 대부분 방송국 소속이 아닌 비정규직이다. 그만큼 상하관계도 분명하다.
◆ "촬영현장에는 사람들로 붐비죠?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60분짜리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인원이 필요할까?
우선 공채 출신 PD가 있다. 메인 작가가 있고 자료 조사 등을 전담하는 '막내 작가'가 보통 2명 붙는다. 촬영 현장 주변을 통제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FD(플로어 디렉터)가 있고 조명 담당이 보통 3명이다.
주로 '뻗치기(하루 종일 현장을 지키는 일)'하는 VJ가 1~2명이 동원되고 오디오 담당도 필요하다. PD의 프로그램 제작을 돕는 AD(조연출)가 보통 2명 붙는다.
이 가운데 정규직은 방송국 소속 PD와 AD뿐이다. 나머지는 대개 비정규직이다. PD에게 고용됐다는 뜻으로, 방송이 비정규직의 땀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PD와 고참 작가인 메인 작가, 공채 출신 AD를 제외한 비정규직의 월급은 보통 80~12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다 최근 외주 제작사에 일하는 김모(45) PD는 "FD의 경우 언젠가 PD가 되기 위해 밑바닥 생활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아르바이트 삼아 잠깐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대개 월 100만원 안팎을 받는다."고 말했다.
FD들은 주머니가 많은 바지가 필수라고 한다. 김 PD는 "성질 급한 PD를 만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담배와 라이터, 대본, 커피 믹서를 PD가 손짓만 해도 대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D에게 잘 보이면 AD가 될 수도 있고 공중파 AD 경험은 외주 제작업체로 가면 'PD'가 될 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FD는 PD에게 절대 복종한다.
심한 경우, 주인공이 비탈길을 구르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면 FD가 먼저 비탈길을 굴러 '화면발'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침에 다른 스태프들을 일일이 깨워 촬영 시간을 맞추는 것도 대개 FD의 차지다.
◆ "인기 연예인들에게 출연료 주고나면…"
방송작가가 50~60분 분량의 방송 대본을 쓰려면 적어도 5~6년간의 세월을 견뎌야 한다. 이들 대부분은 자료 조사를 담당하는 막내 작가 생활부터 시작했다. 방송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80만~120만원의 월수입만으로 생활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방송국에서 정기 프로그램 개편이 이뤄지는 봄·가을 두 번씩 교양 작가들은 성적표를 받는다. 인사 발령을 새로 받은 PD가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으면 그걸로 그의 반 년 간 일자리는 끝이 나는 것이다. 한 방송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PD'라는 전제하에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PD들에게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며 "개인 심부름은 물론 PD 부인의 개인 업무를 봐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메인 작가가 아닌 막내 작가들의 노동은 상상을 초월한다. 10년차 방송작가는 "막내 작가들은 PD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촬영 화면에 나오는 장면과 대사를 타이핑하는 단순작업을 몇 년이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템도 막내 작가들이 내면 PD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은 2050여명. 지난달 자살한 김 작가는 회원이 아니다. 작가협회에 들기 위해서는 비(非)드라마의 경우 만 4년 이상의 방송활동 경험이 있어야 하고 드라마의 경우 미니시리즈 1편 또는 단막극 3편 정도를 쓴 경험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작가의 경우 회당 2000만~3000만원을 받는 작가도 많지만 교양물 메인 작가는 보통 회당 400만원 안팎을 받는다. 코미디 작가의 경우는 역량에 따라 회당 1000만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와 PD의 머리 위에 인기 연예인이 도사리고 있다.
"편당 1억 원짜리 대형 오락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쳐봅시다. 초특급 인기 연예인 1명에게 회당 1000만 원 정도를 줘야 합니다. 또 '병풍'이라고 그 연예인들 따라서 회당 수백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들이 주르르 따라 들어옵니다."
한 방송사의 국장급 PD는 "시청률이 안 나오면 PD가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인기 연예인들을 끌어들이고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나머지 작가나 스태프에게 돌아갈 만 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인기 연예인의 출연 여부에 시청률이 좌우되다 보니 새로운 오락 포맷 등 방송 작가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은 점점 줄어들고 작가의 가치도 동시에 떨어진다. 같이 방송을 만들지만 한번 나와 1000만원, 월 4000만원을 받는 사람과 10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호흡을 맞추는 것이다.
한 교양 작가는 "PD는 정의감에 가득 차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작가, 오디오 담당, VJ, 조명 등 수많은 비정규직을 동원 된다"면서 "훌륭한 PD도 많지만 가끔은 어떤 PD의 프로그램을 보면 위선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05/2008090501047.html 염강수 기자 ksyoum@chosun.com 입력 : 2008.09.06 03:25 / 수정 : 2008.09.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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