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澗松)의 문화재수집

2009. 11. 28. 21:57文化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는 더 어렵다.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돈을 제대로 쓰려면 전문가로부터 레슨(?)을 받아야 한다. 그만큼 전문분야에 속한다. 레슨을 받지 않으면 돈을 안 써야 할 곳에 돈을 쓰고 정작 돈을 써야 할 곳에 쓰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특히 본인 스스로 돈을 모아 자수성가한 사람은 돈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수성가한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1세는 짜지만 재산을 물려받은 2세는 도량이 넓고 식견이 있는 인물이어야만 돈을 제대로 쓴다.

근세에 한국에서 돈을 가장 잘 쓴 인물로는 인촌(仁村)과 간송(澗松·1906~1962)을 꼽는다. 간송은 우리 문화재 구입에 10만석 재산을 썼다. 영국인 존 가스비(Gadsby)로부터 고려청자를 사들인 이야기는 흥미롭다. 1930년대에 가장 유명했던 고려청자 수집가는 영국인 존 가스비라고 알려졌었다. 그는 변호사였는데 젊었을 때부터 일본 도쿄에 주재하면서 돈이 생기는 대로 고려청자를 수집했다. 고려청자의 가치를 일찍 발견했던 것이다. 청자를 구하기 위해 자주 서울에 들어와서 골동상들을 만나고 다녔다. 간송이 고려청자에 눈을 뜨고 보니 좋은 물건은 이미 가스비가 대부분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가스비가 수집해 놓은 청자를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937년이었다. 간송은 지체 없이 도쿄로 갔다. 가스비의 거처는 일본 황궁 바로 뒤편에 있었는데 황궁에 사는 학이 날아와서 정원 연못의 금붕어를 쪼아 먹곤 하는 저택이었다. "선생이 수집한 고려청자는 반드시 조선사람 손에 있어야 한다. 그 대신 가격은 부르는 대로 주겠다." 불과 서른한 살의 새파란 간송이 백발의 가스비를 상대로 내뱉은 말이다. 한 푼도 깎지 않고 가스비가 요구하는 금액을 모두 지불하고 가스비의 소장품 일체를 넘겨받았던 것이다.

이때 간송이 지불한 돈은 어느 정도 되었을까? 간송은 돈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당시 쌀값 1만석의 금액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돈을 지불하기 위해 공주에 있던 5000석 전답도 팔았다고 한다. 이 청자들이 지금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간송은 갔어도 그가 쓴 돈은 지금도 남아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14/2008101401544.html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08.10.1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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