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28. 22:14ㆍ文化
[한국만의 문화] '폭탄주' 묘기 경쟁
여가는 없고 회식만… 고달픈 직장인들이 노는 법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근무하는 김현진(35)씨는 동양권에서는 유명한 바텐더다. 2007년 '아시아 태평양 바텐더 대회'에서 화려한 칵테일 제조기술로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그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또다시 세계 유명 바텐더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칵테일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한국의 폭탄주. 그중에서도 과격하기로 유명한 '충성주' 제조를 8차례 연속 성공하자 외국 바텐더들은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박치기주'라고도 불리는 '충성주'는 "○○○에게 바친다"는 선언과 함께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놓고 양주잔을 올린 뒤, '충성' 구호와 경례를 마치고 머리로 술상을 가격해 그 진동으로 양주잔이 맥주잔에 떨어지게 하는 방식. 김씨는 "외국에서도 술을 섞어 마시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각종 묘기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며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보여준 '충성주' 퍼포먼스에 그렇게 열광적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술을 섞는 폭탄주가 일상화된 우리나라 술자리는 여러 '제조법' 경쟁이 더해져 흥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들도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란 이름으로 맥주에 보드카, 럼 등을 섞어 마시지만, 기기묘묘한 방식의 우리 폭탄주를 보면 깜짝 놀란다. 태권도주·회오리주·골프주·월드컵주·금테주·타이타닉주·폭포주·수류탄주·소방주·도미노주…. 제조방식에 따라 구별되는 폭탄주의 종류는 널리 알려진 것만 해도 40여종이 넘는다. 게다가 사회 이슈에 발맞춰 수시로 새로운 제조법의 폭탄주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최근에는 영화 '해운대'가 히트하면서 '쓰나미주'가 뜨고 있다. 맥주잔에 맥주를 60%쯤 붓고 빈 소주잔을 띄운 뒤, 소주잔에 소주를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채워 쇠젓가락으로 맥주잔을 두드린다. 이 과정에서 맥주 거품이 올라오면서 소주잔이 가라앉으면 성공. 이 모습이 쓰나미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폭탄주는 직장에서 구성원들끼리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조직의 단합과 평등한 음주를 강조하며 유행하게 됐다. 직장 단체 회식이 드물고 가족 동반 모임이 많은 구미(歐美)권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운 음주 형태. 폭탄주 제조는 참석자들의 시선을 한곳에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술자리의 통일성'을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와 궁합이 맞는다. 폭탄주 제조법 경쟁은 음주 외에 특별한 여가 문화나 대화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 남성들의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폭탄주 '돌리기'는 80년대 군사정권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더해지며 폭탄주 '만들기'에 세태 풍자와 유희적 요소가 첨가되고 있는 형국이다.
주류 회사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유호성 부장은 "폭탄주는 속도 경쟁이 몸에 밴 우리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도 빨리 취기가 오르기를 원하기 때문에 확산됐던 것 아니냐?"며 "새로운 것을 하나 터득하면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성향이 더해지며 다양한 묘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제갈정 본부장은 "사회생활을 위한 의무적인 술자리가 많고 그 어색함을 깨기 위해 폭탄주가 확산되고 제조법 경쟁까지 벌어지는 것 같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술이 사교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돼버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4/2009082402069.html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입력 : 2009.08.25 03:05 / 수정 : 2009.08.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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