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굴다리
2009. 11. 19. 12:13ㆍ日記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쯤, 내가 10살 때 부전동 쪽의 동해남부선 철길 아래 판잣집에서 살던 그 시절, 지금은 팔순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 그 때 서른네살이셨던 우리 엄마와 부전동 쪽 굴다리 옆 찐빵가게에서 찐빵을 시켜놓고 둘이 앉아 서로 많이 먹으라고 하던 기억이 너무나 새록새록 하고 선명하다. 지금의 내 나이 보다 한참 젊으셨던 그 시절의 우리 어머니는 이 자식을 키우느라고 모진 풍파를 감내하면서, 고왔던 그 얼굴에는 지금 주름살만 가득하고, 머리에는 백설이 한창이다. 지나간 세월이 너무나 아쉽게 가슴에 저며 드는 것은 벌써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그 당시 국민학교 시절 개구쟁이 동네아이들과 어울려 놀이공간을 찾아 굴다리 밑을 지나면서 놀던 기억, 중학시절 한 1년간 이 굴다리 안쪽의 부암동에서 살았는데 매일 이 굴다리를 거쳐 학교로 등교했던 추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에 진급하면서, 국민학교 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이곳 서면 부전동을 떠나 당시 동래구 연산4동으로 이사하였다.
지금으로부터 한 몇 년 전 쯤 내 어릴 때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그곳을 찾아가보니, 왠 낮선 곳에 나 혼자만 댕그마니 있는 것 같은 낯선 느낌 뒤에, 아스라이 먼 곳에서 그때의 다정함과 따뜻함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옛날 굴다리가 들추는 기억은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기억이다. 다 같이 못 먹고 다 같이 못 입어서 내가 너 같고 네가 나 같던 시절 기억이다. 다들 고만고만해서 부끄러울 게 없던 시절 기억이다. 굴다리에는 없어도 없는 것을 모르고 없어도 없는 것을 숨기지 않던 시절 기억이 벽지처럼 발라져 있다.
굴이면서 길인 굴다리. 굴다리는 마늘 먹던 곰이 웅크린 굴이면서 마늘 다 먹은 곰이 세상으로 나온 길이다. 지금은 웅크리며 지내지만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가는 날이 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게 하는 굴다리는 판박이 스티커다. 나는 비록 굴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만큼은 벗어나도록 하려는 소망이 미키마우스 스티커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다.
굴다리를 걷는다. 낡고 어둡고 좁다. 낡고 어둡고 좁아서 굴다리 저쪽은 더 환하다. 굴다리를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새롭고 밝고 넓은 세상으로 나감을 뜻한다. 지금보다 사는 게 나아짐을 뜻한다. 어느 누구인들 벗어나고 싶지 않으랴. 자식들만이라도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으랴. 굴다리를 벗어나려고 악착같이 살던 사람들. 지친 그림자를 꼬리처럼 끌고 굴다리로 돌아오던 사람들.
굴다리를 지나 부암동으로 가면 이 동네를 가운데 두고 기차선이 세 개나 다닌다. 서쪽으로는 가야선이, 북쪽에는 부전선이, 굴다리 위는 동해선이 지나가는 이 동네를 삼각지로 불렀으며, 지금도 디젤 기차가 다니면서 내뿜는 매연이 온 동네를 뒤덮는다. 지상은 그렇고 지하에서는 KTX 공사를 하는 바람에 집집이 바닥에 균열이 나고 있다.
부암동…, 옛 부현리서 부전동과 분화
부암동 조선시대 지명은 부현리다. 부현리란 지명은 당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개에 가마솥을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가마솥 부 고개 현을 써서 부현리란 지명을 썼으리라 한다. 고개 이름은 부암고개다. 가마솥 부 바위 암이다.
부현리에서 부암동과 부전동이 분화된다. 부암동은 왜 부암동이고 부전동은 왜 부전동일까. 지형 차이 때문이다. 부현리에서 바위가 많은 지역이 부암동이고 밭이 많은 지역이 부전동이다. 즉 부암동은 감물내 주변 바위지역에 붙인 지명이고 부전동은 감물내 동쪽 범전 전포지역에 인접한 밭지역에 붙인 지명이다.
감물내는 동천 상류인 백양산에서 발원한 하천이다. 백양산 당집이 있는 당리에서 발원하여 감물리에서 폭이 넓어진다. 당리와 감물리를 합쳐서 당감동이 된다. 당감동에는 조선시대 당집인 영숙사와 함께 동평현 성터가 있다. 동평현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동평현은 이 일대를 아우른 옛 지명이다. 지금으로 치면 부산진구쯤 되겠다.<국제신문 기사 및 사진 참조>
서면중학교 인근 굴다리 2곳은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관리 소홀로 인해 노후화가 심하게 진행된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 서면중학교 옆 길이 25m, 높이 2.6m, 폭 4.5m 굴다리에는 2천900만원을 투입해 통나무로 보행로 통로를 만들고 천장에는 각종 아크릴 조형물을 설치했다. 이어 벽에는 여러 디자인물에 조명을 달아 밤에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한쪽 벽면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전혀 손대지 않았다.
서면중학교 위의 길이 7m, 높이 2.5m, 폭 10m 굴다리에는 서면중학교 학생 200여 명이 직접 그리고 채색한 그림으로 만든 타일벽화 100점을 벽면에 붙인 것이 특징. 보행등을 달고, 화단을 설치해 소규모 갤러리 느낌을 연출했다. 대학생 이인화(23·여)씨는 "전에는 지나다닐 때마다 무서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090911000231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7면 입력시간: 2009-09-12 09:11:00
부산 ‘철의 삼각지’… 철도 지하화 추진에 반색
철도 노선 3개에 둘러싸인 부산 부암동
철도 때문에 생활권·이동권 침해 극심
“방음벽도 안 해줘… 하루만 살아보라 그래”
부산 부산진구 서면중 근처 부암동 마을. 철도 3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철의 삼각지’로 불린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동안 철도 소음 등 피해를 입어왔다. 부산시 제공
“쿨러덩 쿵, 쿨러덩 쿵”
17일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서면중학교 근처 마을. 굴다리 위로 지나가는 열차 소음에 말소리가 묻혔다. 40여 년 동안 이 마을에서 사는 문아무개(78)씨는 “처음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 마을을 관통해 지나가는 열차 소음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한국철도공사에 경부선 철도 방음벽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소음이 기준치 이하라는 답만 들었다. 포기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종종 화가 난다.”고 했다. 문씨와 함께 있던 박아무개(77)씨도 “소음, 진동 때문에 괴롭다. 철도공사 쪽에선 기준치 이하라는데, 와서 하루라도 살아보고 그런 소릴 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중 근처 부암동 마을 북쪽 출입로. 철도 3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철의 삼각지’로 불린다. 마을 출입로는 낮은 높이의 철도 굴다리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철도 소음 등 불편을 겪어왔다. 김영동 기자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의 롯데호텔에서 직선거리로 500여m 떨어진 이 마을은 ‘철(도)의 삼각지’로 불린다. 북쪽에 부전선(부전~마산), 남동쪽에 폐선된 옛 동해남부선(부산진역~포항), 남서쪽에 경부선(구포~범일역)이 지나면서 삼각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철도 때문에 도심 속 오지가 된 이 마을엔 아직도 800가구 1600여명이 산다. 출입로는 철도 아래로 난 굴다리 3곳과 주택가 골목길 1곳이 전부다. 마을 도로도 너비 5m가 채 되지 않아 차량이 양쪽으로 다니기 어렵다. 이날도 택배 차량이 잠시 정차하자 차량들이 뒤에 줄을 섰다. 주민들은 차량을 피해 걸음을 멈추거나 그 사이를 지나야 했다.
마을에 불이 나면, 소방당국의 대응도 어렵다. 마을 북쪽과 남동쪽 굴다리는 높이가 2m, 남서쪽 굴다리도 높이 3m가량에 불과해 높이가 3.4m인 5톤 소방 펌프차가 마을로 진입할 수 없다. 북서쪽의 주택가 골목길 역시 도로 폭이 4m 남짓인 데다, 전봇대와 전선이 도로 위를 어지럽게 가로질러 소방차 진입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부산시소방본부 관계자는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이다. 유일한 통로가 북서쪽 주택가 골목길인데, 이마저도 주·정차된 차량이 있으면 들어갈 수 없다. 여의치 않으면 굴다리에서 호스를 연결해 화재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다. 2년여 전 이 마을 화재 때 애먹었다.”고 말했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중 근처 부암동 마을 남동쪽 출입로. 철도 3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철의 삼각지’로 불린다. 마을 출입로는 낮은 높이의 철도 굴다리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철도 소음 등 불편을 겪어왔다. 김영동 기자
그래서 주민들은 30년 넘게 철도 구간 지하화를 요구해왔다. 부산시는 최근 “경부선 철도 지하화 등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필요한 정부 예산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시는 땅 위에 있는 경부선 구포~사상~부산진 16.5㎞ 철도 구간을 구포~백양산~부산진 13.1㎞ 구간으로 변경해 지하화 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화는 가야~부산진(1단계·4.3㎞) 구간과 구포~가야(2단계·8.8㎞) 구간으로 나눠 추진하는데, 기초 타당성 용역 뒤 2022년까지 기본계획 수립과 설계를 마치고 2023년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철로가 지나던 지상에는 생태공원과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요량이다. 주민 김아무개(67)씨는 “철도 때문에 마을이 단절되고, 주민 이동권과 생활권이 침해받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나 몰라라 하더니, 이제 시가 지하화에 나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중 근처 부암동 마을 남서쪽 출입로. 철도 3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철의 삼각지’로 불린다. 마을 출입로는 낮은 높이의 철도 굴다리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철도 소음 등 불편을 겪어왔다. 김영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