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 14:57ㆍ生活
집나가는 노인들, 40%는 실종 신고조차 없어
가족들 관심의 끈 놓는 사이 집 나간 노인 작년 3500명…, 치매 걸려…, 짐되기 싫어…
5월은 노인 가출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잔인한' 달이다.
◀ 부산 용두산공원 산책로를 걸어가는 한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가정의 달이자 어버이날이 낀 5월. 화창한 날씨와 함께 야외 나들이하기에 그저 그만이다. 하지만 일 년 중 노인 가출이 가장 많은 달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족들이 잠시 관심의 끈을 놓고 있는 사이 노인들은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집을 찾지 못하거나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경찰청이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노인 가출신고 건수가 3554건으로 전년의 2886건에 비해 23%나 급증했다. 월별로는 5월이 366건(10.3%)으로 으뜸을 차지했다. 6월이 348건(9.8%)으로 뒤를 잇는 등 날씨가 따뜻하고 외부활동이 많은 3~10월에 가출 발생이 집중됐다.
▲ ○○○(87)할머니
서울 성북구 출신인 할머니는 연고도 없는 부산의 한 요양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치매기가 있는 그는 정신이 맑을 때도 가족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할머니가 한 말이라고는 "2년 전 며느리가 부산 박람회 구경 가자고 해서 따라왔는데 역에서 잠시 화장실 간다더니 없어져 버렸어"가 전부였다. 주민등록증이 없는데다 지문 조사 역시 성과가 없어 부산 동구청에서 행려 처리를 했다. 할머니 가족은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 찾기를 거의 포기하던 차에 단서가 나왔다. 성북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가 "내가 거기 살았어."라고 맞장구를 쳤던 것이다. "손자가 의사고 딸이 미국에 산다."며 집안 자랑을 하던 할머니는 '아차' 싶었던지 거기서 입을 닫아 버렸다. 할머니는 이후 불안한 기색을 지으며 시설 관계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누가 찾아오거든 내가 없다고 해달라며 애원을 해요." 시설관계자는 할머니 몰래 가족을 찾고 있다. 할머니는 "돈이 없어도 백내장 수술을 해주고 의식주를 다 해결해 주는데 내가 어딜 가"라며 시설을 떠나려 하지 않고 있다.
◀ 가출노인 연령별 실태(2006)
▲ ○○○(71)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부산으로 가출했다가 부산시 노인찾아주기종합센터(이하 센터)의 도움으로 현재 고향인 울산(우정동)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고 싶어 했던 가정은 아니다. 자녀 4명 모두 모시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돼 단칸방에서 홀로 살며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할아버지는 방랑벽이 있어 30년 전 집을 나와 돌아다녔다. 가정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의학 공부에 매달렸다고 했다. 센터 직원 김지현(여·32)씨는 "정신상태도 정상이고 의학 관련 전문 용어를 술술 쓰시는데 엘리트라는 느낌이 왔다"고 전했다. 센터에서 가족을 찾은 즉시 연락을 했으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리가 왜 모셔야 하나. 이미 우리를 버린 사람이며 이제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잘못은 인정하지만 조용한 가정에서 단 일주일만이라도 살고 싶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70) 할머니
경북 포항(송도동)이 고향인 할머니는 현재 부산의 한 요양시설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아들이 2명 있지만 형편상 모시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차남(44)은 가족과 불화로 오래전부터 소식을 끊은 채 살아왔고 장남(47)은 가족이 아예 없는데다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경증 치매환자인 할머니는 사실상 혼자서 살아오다 가출한 것이다. 지난해 9월 명륜동지하철역에서 발견된 할머니는 행려환자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경찰이 3개월 후에야 가족들을 찾아내는 바람에 졸지에 병원비를 내야 했다. 돈 한 푼 없는 할머니를 보다 못한 센터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긴급 지원을 요청해 가까스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자식들은 끝까지 나 몰라라 했다. "작은 아들은 직장이 있고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등 형편이 되는데도 안모시겠답니다. '귀찮다' '전화하지 말라'며 화를 내기까지 하더라고요." 센터 직원 김씨는 "요즘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노부모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부산 가출노인 분기별 실태(2006)
▲ ○○○(82)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병 때문에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출했다가 극적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고혈압과 당뇨로 거의 누워 지내다시피한 그는 최근 폐암 선고까지 받자 절망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거동하기 힘든 할아버지가 부산 남구 문현동 집에서 서울역까지 어떻게 갔는지가 신기할 정도. 그는 서울역을 배회하면서 일주일을 지냈다. 그런데 서울에 면접을 보러간 손자(26)가 혹시나 싶어 서울역을 돌아보다가 노숙자 틈에 섞여있던 할아버지를 찾아냈다. 할아버지 걱정에 매일 밤을 지새우던 가족들은 큰 잔치를 벌였다.
○ 노인 가출의 또 다른 원인
가출 노인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사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치매노인들만 가출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자식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고 혼자 지내다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믿는 피해망상증에 걸려 집을 나오거나 가족들이 모시지 않으려고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혼시켜 기초생활수급권을 받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노인 가출은 치매는 물론 방임 등 노인 학대 등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난 2004년 문을 연 부산시 노인찾아주기종합센터의 자료를 보면 부산지역 노인 가출 발생 건수가 2005년 131건에서 지난해 142건으로 11건이 늘어났다. 증가 추세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가출 노인을 찾으려는 가족들의 노력이 생각보다 미흡하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고 찾는 경우가 86건으로 61%에 불과한 반면 센터 등에서 가족 찾기에 나서는 경우가 56건(39%)에 달했다. 가출노인 10명 중 4명이 가족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수발해야 하는 가족들의 피로도 역시 치솟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단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만 한다. 부모님은 그 다음이다. 따라서 노인들이 홀로 집을 지키는 경우가 늘게 되고 대화할 상대가 없다보니 우울증을 비롯해 각종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 역시 정비례해서 높아진다. 센터직원 김씨는 "노인단기보호센터 같은 시설들을 잘 활용하면 노인 가출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모시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권했다.
○ 노인찾아주기의 어려움
치매 노인은 실종아동법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찾지 않으면 동사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보호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관심도 필요하다.
부산시 노인찾아주기 종합센터는 사단법인 노인과 복지가 부산시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센터에는 노인 찾기와 관련한 권한이 전혀 없다. 노인 학대의 경우 학대예방센터와 경찰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인을 찾더라도 가족 인계 시 구청과 경찰이 서로 떠넘기기 일쑤다. 현재 센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곳은 부산진경찰서 한 곳뿐이다. 지문 조사와 주민등록 조회 등을 여기서 해준다. 시스템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가출 노인들을 가정에 모셔드릴 수 있을 것이다. 김성효기자 kimsh@kookje.co.kr
'生活'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 (0) | 2009.12.03 |
---|---|
은퇴 후 한 달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0) | 2009.12.03 |
실패하지 않는 전원생활 10계명 (0) | 2009.12.02 |
아내의 저린 손목… 남편의 복부비만… (0) | 2009.12.02 |
천천히 웃어야 매력적 (0) | 2009.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