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 18:09ㆍ常識
참다랑어
불편한 공간에서 장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주인은 무얼 먹을까. 일부 공상과학 영화는 알약 한 알이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되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정한 우주인의 식단을 보면 영화와 많은 차이가 있다. 땅콩, 스파게티, 비프스테이크, 초콜릿….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치. NASA가 영양, 안정성, 맛 등 3가지 측면 모두에서 만점을 줬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말 1만8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명의 우주인 후보가 선발됐다. 이때 공개된 우주식에는 참치가 김, 콩자반, 장조림 등과 함께 포함됐다. 참치는 이처럼 영양이 풍부한 생선이다. 단백질 등 기본 영양소는 물론 오메가-3, 셀레늄,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함유돼 두뇌 발달, 노안 및 심장병 예방, 우울증 치료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치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괜찮다. 베네수엘라의 미인 양성 학교에서는 저녁식사로 참치 캔 200g만 준다. 독일의 슈퍼모델 하이디 클룸은 아이를 낳고 불어난 몸매를 참치 샐러드 다이어트를 통해 8주 만에 임신 전 상태로 되돌리기도 했다.
참치는 국가의 부와 기술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참치를 잡으려면 원양어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력이 약한 나라는 참치 어업이 쉽지 않다. 다른 생선에 비해 혈관이 많아 빨리 상하므로 참치 어업을 하려면 높은 수준의 냉동처리 기술을 갖춰야 한다.
1994년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을 때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재기한 물품도 라면과 참치 캔이었다. 대형마트조차 오전에 공장에서 받아온 참치 캔과 라면이 점심시간이면 바닥날 정도였다. 영양이 풍부하고 휴대가 간편한 식품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치는 식단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면서 영양까지 만점인 ‘바다의 보배’인 셈이다. 글=이호갑기자 gdt@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참치를 맛있게 먹는 순서는 속살→등살→옆구릿살→뱃살→갈빗살 順으로 ▲
《모든 물고기가 그렇듯이 참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헤엄을 멈추지 않는다. 잠을 잘 때도 뇌만이 쉴 뿐 몸은 계속 움직인다. 베스트셀러 ‘7막 7장’에는 이런 참치의 습성에 빗댄 ‘참치형 인간’이 등장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을 ‘참치형 인간’으로 그렸다.》
○ 원래 이름은 ‘진(眞)치’
1957년 국내에 참치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진(眞)치’로 불렸다. ‘진짜 맛있는 생선’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나중에 참치로 바뀌었다. 참치의 정식 명칭은 ‘다랑어’. 영어권에선 ‘튜나(tuna)’, 일본에선 ‘마구로’라고 부른다. 부산의 영도 해안에 있는 동삼동 패총유적지에서 참치 뼈가 발굴된 것을 보면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참치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국민소득 2000달러 시대의 음식
1970년대 후반 참치 캔을 최초로 만든 나라는 노르웨이였다. 캔이 등장하기 전에는 참치를 훈증한 뒤 유리병에 담아 팔았다.
한국에서는 1982년 동원산업(현 동원F&B)이 ‘동원참치 살코기 캔’이라는 브랜드로 처음 참치 캔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판매한 참치 캔은 약 36억 개에 이른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은 1981년 미국 하버드대 최고경영자 코스에 유학하던 시절 “국민소득이 2000달러를 넘어서면 참치 캔을 먹기 시작한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 참치 캔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참치 소비량은 연간 1만5000∼2만t으로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다.
○ 참다랑어 양식 성공
지나친 남획으로 개체수가 줄면서 지금은 어획량에 대한 세계적인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참치 자원은 21세기에 고갈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으로 시장성이 있는 참치(다랑어)는 23종. 이들 가운데 이미 2종은 고갈 상태다. 앞으로 어획량 증가가 예상되는 종은 가다랑어와 황다랑어 단 2종뿐이다. 양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2년 6월 일본 긴키(近畿)대가 ‘참치의 황제’인 참다랑어 양식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으나 아직 산업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조만간 양식 참다랑어가 식탁에 등장할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참치 치어를 잡아 키우는 축양(畜養)이 이루어지고 있다. 냉장 참치회도 축양으로 키운 경우가 많다. 참치 축양은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해 모로코와 스페인으로 파급됐으며 지금은 호주, 크로아티아, 로스앤젤레스 등에서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선회는 자연산이 양식에 비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참치도 마찬가지다. 축양산은 최적의 생육 환경을 유지시켜 주고 정어리 고등어 등 EPA와 DHA가 많은 등 푸른 생선을 먹이로 주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양 상태가 좋다.
○ 5%에 불과한 뱃살이 가장 비싸
참치 가운데 가장 맛있는 종은 참다랑어. 주로 몸통 부분을 먹지만 머리부터 꼬리 부분까지 버리는 게 없다. 참치는 크게 뱃살(오도로), 속살(아카미), 등살(새도로), 옆구릿살(주도로), 갈빗살(나카오치)로 나뉜다.
‘스시 효(孝)’의 ○○○ 주방장은 “참치는 담백한 속살부터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속살→등살→옆구릿살→뱃살→갈빗살의 순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속살을 참치회의 백미로 여겼지만 지금은 뱃살을 최고로 친다. 참치에서 먹을 수 있는 부위는 몸 전체의 60% 정도지만 뱃살은 전체의 5%밖에 안 된다. 뱃살은 참치 부위 중 제일 고소하고 맛있다. 살이 곱고 윤기가 흘러 회로 먹거나 고급 초밥의 재료로 쓰인다. 특히 내장 부근에 있는 부위가 가장 고급이다. 여러 겹의 무늬를 갖고 있으며 지방질과 힘줄이 가로 세로로 조밀하게 얽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뱃살은 kg당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속살보다 10배 이상 많은 지방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DHA와 EPA가 풍부하다. 참다랑어는 뱃살 100g당 2877mg의 DHA와 1972mg의 EPA가 함유돼 수산물 중에서도 가장 높다.
옆구릿살은 소고기처럼 지방질이 육질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특징.
속살은 뼈를 둘러싼 살로 지방질이 1.4%밖에 안 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둥근 결이 있으며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회나 초밥, 덮밥, 스테이크 등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참치 머리 부위 중에서는 눈이 가장 비싸다. 눈은 얼려 술과 함께 먹는다. 주둥이 윗부분은 얇게 회로 떠서 먹기도 한다. 얼굴 부위는 몸통과 달리 혈관이 없어 회를 뜨면 붉은 생선회가 아닌 흰 생선회가 된다.
참치는 부위마다 지방질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써는 두께도 달라야 한다. 지방질 함량이 낮은 속살은 두껍게, 옆구릿살은 보통 두께로, 뱃살은 얇게 썰어 지방질의 맛과 근육의 맛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 고추냉이(일명 : 와사비)에 찍어 먹어야
일부 참치 전문점에서는 하얀 기름덩이를 내놓는데 이는 백새치 또는 기름치일 확률이 높다. 참치 전문점에 백새치와 기름치가 등장하게 된 것은 ‘지방질’이 많아서다. 어획한 참치에서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하고 영하 60℃ 이하로 급속 냉동시켜 국내로 가져오는데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 상처가 생기면 경매 가격이 떨어진다. 참치가 구르지 않도록 참치 사이에 기름치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끼워 넣었는데 이 기름치가 참치회로 둔갑한 것이다.
기름치는 인체에서 잘 소화되지 않는 기름 성분이 많아 장이 민감한 사람이나 소화기관이 약한 노인들이 먹으면 30분∼36시간 안에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심할 때는 어지럼증과 구토 및 두통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참치회를 김에 싸먹는 방식은 기름치의 지방질 때문에 느끼한 맛을 없애려고 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참다랑어나 황다랑어와 같은 고급 참치회는 김에 싸 먹거나 참기름을 찍어 먹으면 참치의 감칠맛을 느끼지 못한다. 또 참치회에 레몬을 뿌리면 레몬의 산성이 참치회의 단백질을 산화시켜 회의 신선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참치회는 고추냉이(와사비)에 한 점씩 찍어 먹는 것이 고유의 맛을 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새치도 참치라고?…, 맛 비슷하지만 ‘아류’
학명이 다랑어인 참치는 농어 목(目), 고등어 과(科)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다랑어는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날개다랑어, 백다랑어, 점다랑어, 가다랑어 등 7종이 있다.
어종과 조업방법, 계절, 산란 전후 등 여러 변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만 통상 참다랑어가 가장 비싸고 맛있다. 산지로는 하와이산을 최고로 친다. 방추형의 거대한 몸을 갖고 있는 참치는 먹이를 잡을 때는 고속으로 유영한다. 평상시에는 시속 30∼60km로 헤엄치지만 최고 속도는 시속 160km에 이른다.
새치는 다랑어와 같은 농어 목(目)에 새치 과(科)로 맛이 비슷해 ‘참치의 아류’로 불린다. 청새치, 황새치, 흑새치, 백새치, 돛새치 등 12종이 있다. 새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소설 ‘노인과 바다’에도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 센티아고는 84일간 허탕을 치다 5.5m의 대형 청새치를 사투 끝에 잡지만 상어 떼의 습격으로 결국 뼈만 갖고 돌아온다. 옛날에는 나이든 어부들이 새치를 잡은 뒤 주둥이를 잘라 지팡이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단백질의 보고, “참치, 큰아들보다 낫다.”
혈액 맑게 하고 콜레스테롤 낮춰, 심장병 예방기억력 좋아지고 치매 줄여…
국내 S그룹 회장 부부는 한 호텔의 단골 일식당에서 참치를 즐겨 먹는다. 치매 예방에 좋다는 이유로 많을 때는 일주일에 두세 차례 참치회를 먹기 위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치는 ‘영양의 보고(寶庫)’로 불릴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DHA, EPA, 셀레늄, 아미노산, 비타민 B12, 칼륨…. 몸에 좋다는 성분은 대부분 포함돼 있다.
덴마크 아알보고 병원의 연구팀은 1963년 그린란드섬에서 생선 중심의 식생활을 하는 에스키모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육식 위주의 덴마크 백인들에 비해 동맥경화, 고혈압, 혈전증, 심근경색, 당뇨병 등의 성인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에스키모의 주식인 참치와 꽁치 등은 대표적인 불포화 지방산인 오메가-3 지방산(EPA, DHA)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성인병 발병률을 낮추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 셀레늄, 아미노산, 비타민B 12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풍부한 참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가 가능하다. 참치회를 비롯해 참치샐러드, 참치롤샌드위치, 참치조림 등의 요리들.
그 이후의 연구에서도 EPA와 DHA는 고혈압과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심장병학회는 참치에 들어 있는 EPA와 DHA가 혈액응고를 막고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들어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섭취하도록 권고했다.
세계 제일의 장수국가로 통하는 일본은 연간 50만 t 이상의 참치를 소비하는 최대의 참치 소비국이다. 일본인들은 참치를 ‘생선회의 여왕’이라 부르며 남녀노소 구분 없이 참치를 즐긴다.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3만 명에 이른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약 4배 늘어난 수치다. 일본인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는 참치와 같은 등 푸른 생선을 거의 매일 먹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참치를 비롯한 수산물을 섭취하면 뇌중풍 위험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참치에 다량 함유된 EPA는 식물에 많은 리놀산보다 불포화도가 높아 혈액이 응고되지 못하도록 돕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려 동맥경화 등 심장병 예방에 탁월하다.
DHA는 기억력을 향상시켜 학습능력에 도움을 주며 노화에 따른 치매를 예방해 준다. DHA는 망막의 중요한 구성 성분이기도 하다. 인체 내에서는 자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어 인위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또 참치에는 라이신, 페닐알라닌, 발린 등 필수 아미노산이 많아 성장기 어린이들의 뇌세포 발달이나 노안 예방에 매우 효과적이다.
참치에 포함된 단백질은 25.9%(참치 캔 29%)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다. 다이어트 웰빙(참살이) 식품으로 각광받는 닭고기가 24%이며 쇠고기는 17.5%, 돼지고기는 17.4%에 불과하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 국민 술안주에서 바르는 화장품까지 ▲
‘구워 먹어도 되는 생선을 굳이 통조림으로 먹을 필요가 있을까.’
1980년대 초 참치 캔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일부 소비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통조림 생선은 신선하지 않고 영양가도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하지만 참치 캔은 바쁜 현대인을 위한 고단백 영양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맛과 기능을 갖춘 참치 캔은 대형마트의 한 곳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다.
동원산업(현 동원F&B)이 1982년 참치를 가공해 통조림 형태로 내놓으면서 참치 캔은 당시 꽁치가 차지했던 생선 통조림 시장을 단번에 장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경쟁업체들이 앞 다퉈 참치 캔 분야에 뛰어들면서 참치 시장의 규모도 크게 확대됐다. 양념 참치 캔은 바캉스와 술안주의 필수품이 됐다. 현재 시판 중인 양념 참치 캔은 10여 종이다.
초기 양념 캔인 야채참치엔 감자 양배추 당근 등이 들어갔다. 흰 밥에 비벼 먹으면 즉석 참치 비빔밥이 되는 고추참치 캔은 매콤한 고추소스를 넣어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가 높았다. 자장, 칠리, 토마토를 비롯해 양념치킨맛, 김치찌개용 참치 등도 각광받았다.
2000년대 들어서 웰빙 열풍이 불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참치 캔의 기름이 면실유에서 올리브유, 포도씨유 등으로 고급화됐고 한 끼 식사용으로 충분한 참치 캔도 나왔다. 동원F&B는 최근 참치 스테이크와 참치 까스, 참치 라이스만두, 참치 퀘사디아, 참치 브리토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참치 성분 중 하나인 오메가-3지방산을 이용한 화장품도 등장했다. 참치가 먹는 제품에서 바르는 제품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치 캔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를 끈 닭 가슴살을 대체할 만한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참치 캔에 들어 있는 면실유를 버리고 참치만 먹으면 다이어트 중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조리를 따로 할 필요가 없고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것도 인기를 끄는 이유다.
하지만 참치의 빡빡함을 참지 못해 야채가 들어간 참치나 고추장 맛이 나는 참치를 먹는 다면 다이어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칼로리뿐 아니라 염분도 일반 참치 캔보다 높아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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