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2009. 12. 3. 20:09生活

[맛] 추어탕 한 그릇에 고향 추억 그득히

가을이다. 추석도 다가오고 하여 추어탕이 입맛을 당긴다. 여름철 힘들게 지냈다고 추어탕 먹고, 점점 추워지니까 추어탕 먹고, 옛일을 추억하느라 추어탕 먹고…, 이래저래 추어탕 먹을 일들이 많다. 어릴 적 고향을 찾았을 때 밭일 하느라 땀 범벅으로 호미를 그대로 손에 든 채 손자들을 맞으러 바삐 걸어오시던 옛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 등뒤에서는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것이 할머니가 92살의 평생에서 가장 화려하게 입고 가신 후광(後光)이었다. 개천에서 미꾸라지 잡으면서 우리는 할머니가 해주는 추어탕을 맛나게 먹었다. 그게 고향의 맛이다. 아닌 게 아니라 추어탕에는 갖가지 고향의 맛이 깃들어 있다.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누렸던 맛, 잃어버리고 있는 맛, 되찾으려는 맛이 들어 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 부산 기장군 '원조추어탕'

◀ 사진은 '원조추어탕' 집의 모습.

몇 해 공들인 장맛이 좌우 … 장작불로 천렵시절 맛 살려, 추석 앞둔 가을 미꾸라지 잡던 시절 할머니 손 맛 그리워

추어탕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장맛이다. 추어탕에는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누렸던 맛, 잃어버리고 있는 맛, 되찾으려는 맛이 들어 있다. 미꾸라지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식이 섬유들이 들어가는가.

낮 12시께, 부산 기장군 철마면 '원조추어탕'(051-722-0032, 추어탕 한 그릇 6천원) 집에는 구수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장작불을 때고 있는 것이다.

주인 송명호(61)씨는 "참나무 불은 세고 오래가며, 소나무 불은 빨리 피어나 빨리 꺼진다."라고 했다. 시커먼 아궁이에 시뻘건 불길이 춤춘다. 불의 춤이 어지럽고 현란하다. 송씨는 "장작불은 음식의 뜸을 돌게 하는 최상의 불"이라며 "셀 때는 세고, 은은할 때는 은은하다"고 했다.

30분간에 걸쳐 70~80인분을 한꺼번에 끓이고 있는 큰 솥. 솥 안의 추어탕 국물은 커피 색깔처럼 진하다.

송씨는 "이게 우리 집에서 직접 담그는 장(醬)의 색깔"이라며 "추어탕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장맛"이라고 했다. 장맛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짧아야 한두 계절이고, 길면 몇 해다. 한국 음식 맛의 깊이는 곰삭고 농축된 이런 시간의 맛이다. 미식가들은 "음식의 절정은 발효 음식에 있다"고 했다. 그것을 한국말로는 '장맛'이라는 것이다.

식사를 할 때 '간장'이 나왔다. 간장은 '달이는' 것이다. 아주 드문 맛이었다. 약간의 점성이 느껴지면서 달짝지근 들큼했다. 물론 이 집에서 직접 담아 달인 장이다.

송씨는 "메주에는 가을의 양명한 볕, 겨울의 차가운 바람과, 20일간 발효시키는(띄우는) 20~24도에 이르는 방안의 온도 같은 것들이 골고루 들어 있다"고 했다. 그 메주로 된장 막장 국간장을 만드는 것이다. 막장은 또 뭔가? 송씨는 "보리쌀을 곰팡이가 슬 때까지 띄운 다음에 메주가루와 섞어 다시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 막장"이라고 했다. 추어탕의 맛을 만드는 장에 그렇게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 것이다.

추어탕에 그것만이 들어갈까? 송씨는 철마면 토박이다. 철마 구곡천에서 어릴 때부터 천렵을 해서 추어탕을 끓여먹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지요." 그는 추어탕에 그 추억, 어릴 때의 입맛도 함께 넣어 끓인다고 했다. 추어탕에 넣는 거섶들, 풋호박 토란 숙주 배추 고사리 부추는 인근의 하우스에서 직접 재배하는 것이다. "추어탕에 넣는 재료들은 순서가 있는 법인데 이를테면 방아와 산초는 제일 나중에 넣어야 한다."고 이 집의 안주인 박두리(50)씨는 말했다.

부부는 아들 주건(28)씨가 끓는 추어탕에 채소 넣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주건씨는 "우리집 닭도리탕(3만원)도 맛있다"고 자랑했다. 메기탕(1인 8천원), 붕어찜(2만, 3만원). 4~14년간 일 해온 아주머니들이 밥상을 머리에 이고 내려놓는 묘기(?)도 구경할 수 있다. 오전 8시~오후 8시30분 영업. 철마면사무소에서 금정구 금사동 넘어가는 개좌고개 쪽으로 1km 못 가서 있다.

· 부산 곳곳의 추어탕집 - 집집마다 비법 간직 특유의 맛 자랑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의 '원조석대추어탕'(051-523-2867, 한 그릇 6천원)도 이름이 꽤 알려진 곳이다. 주인 김윤회(51)씨는 "맛국물로 사용하는 쌀뜨물이 시원한 우리집 추어탕의 한 비결"이라고 했다. 이 집도 장작불에 추어탕을 끓여낸다. "장작불을 때는 것은 탕을 끓이는 것이 아니라 달이는 것이다. 장작불의 첫 화력은 가스불 3배에 이른다. 그리고 남아 있는 숯불이 은근하게 탕을 달이는 것이다. 그 온갖 불의 맛이 추어탕에는 깃들어 있다"고 주인 김씨는 말했다. 그리고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삶은 미꾸라지의 내장과 뼈를 직접 채로 걸러서 추어탕을 '달인다.' 가오리찜 논고둥무침(7천원, 1만원)도 있다.

부산 북구 금곡동의 '일미추어탕'(051-361-8115, 한 그릇 5천원)은 남원식으로 추어탕을 하는 곳이다. 특미 어탕국수(5천원)도 있다. 추가 밥은 무료로 무한 제공한다. 40대 초반의 주인 김인순씨의 친정은 전남 여수이고, 시댁은 경남 거창인데 두 곳에서 된장, 각종 나물 등의 추어탕 재료를 가져온다. "우리 집 추어탕에서 시골 맛이 난다고들 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금곡농협하나로마트 근처에 있다.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양산추어탕(051-552-5473, 한 그릇 5천500원)은 가마솥에 가스불로 추어탕을 끓여낸다. 이 집도 장맛을 중시하는데 식당 옥상에 장독들이 사열하듯이 줄 맞춰 가득 놓여 있다. 장어구이(1만3천원) 장어구이정식(1만4천원) 비빔밥(5천500원)도 있다.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근처의 풍미추어탕(051-819-4636, 한 그릇 6천원)도 알려져 있다. 주인 우난영씨는 "명태를 말린 코다리찜이 우리 집 반찬의 특징이다. 다른 반찬들은 전부 뷔페식"이라고 했다.

부산 중구 중앙동 '남원원조추어탕'(051-246-5636, 한 그릇 6천원)은 이른바 남원식으로 추어탕을 끓여낸다. 주인 최연옥(55)씨는 "미꾸라지를 삶아 뼈째 넣고, 고춧가루를 넣어 국이 뻘겋고 들깨즙을 넣어 국이 빡빡한 것이 남원식의 특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맛이 들큰하다가, 중간에 맛이 좀 더해지고, 마지막에 추어탕의 향이 확 끼쳐온다"는 평을 한 인사로부터 들었다.

· 대를 이은 명가 - 전통의 깊은 맛 후대에 그대로

부산 중구 부평동 '구포집'(051-244-2146, 한 그릇 8천원)은 2대를 이어 하는 추어탕 명가다. 외지의 미식가들에게 맛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좀 비싸기는 하지만 추어탕 맛은 명성대로였다. 서덜로 맛국물을 우려내 무엇보다 시원하다. "회 뜨고 남은 광어 뼈로 맛국물을 낸다."고 신가매(82) 할머니는 말했다. 이 집도 추어탕 맛을 내는 데 우리 된장을 중요하게 쓰고 있다. 추어탕은 식이섬유의 덩어리여서 이른바 웰빙 음식이다. 먹을수록 맛이 나고 기분이 좋다. 추어탕 한 숟가락에 방아 향이 아득한 곳에서 풍겨올라치면 제피 향이 톡 하고 쏜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청도추어탕'(051-754-5454, 한 그릇 6천원)도 2대를 이어 추어탕을 끓이는 곳이다. 추어탕 국물이 시원하다는 평을 듣는 집이다. 주인 박철우씨의 부모들이 추어탕으로 유명하다는 청도 출신이다. 박씨는 "일일이 손으로 삶은 미꾸라지의 살을 발라내고 채로 거른다."며 손맛을 자랑했다. 가오리무침 논고둥무침 각 1만원. 오전 6시부터 영업. 새벽 손님도 오는 편. 수영구 동방오거리 인근에 있다.

부산 강서구 식만동에는 추어탕 집들이 대여섯 곳 있다. 그 중 원조할매추어탕 집이 두 군데나 있다. 식당 건물이 작은 원조할매추어탕(051-971-7139, 한 그릇 6천원)은 낚시꾼들에게 알려진 2대, 40년 전통의 추어탕집이다. 또 다른 원조할매추어탕(051-972-5858, 한 그릇 6천원)은 건물이 큰 곳으로 3대를 잇고 있는 추어탕집이다. 붕어조림 반찬이 이 집 반찬의 특징이다. 대체로 식만동의 추어탕은 미꾸라지 건더기가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의 '삼대추어탕'(051-802-7894, 한 그릇 6천원)은 3대를 잇고 있는 집. 가마솥에 가스불로 추어탕을 끓여낸다. 피리튀김(2만원) 가오리무침 매운탕 등도 있다. 경남공고 교문 가까이에 있다.

· 경남의 맛집 - 밀양·양산 어디든 입맛 돋우는 명소가

추어탕 집은 대중적이다. 경남의 곳곳에도 이름난 집들이 많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가마솥추어탕'(055-391-5932, 한 그릇 5천원) 집이 있다. 부산에서 부곡하와이 가다가 수산리에서 자동차로 낙동강을 건너 조금 더 가면 길옆에 있다. 이 집은 3대를 이어 추어탕을 하는 집이다. 칠남매를 키우던 윤분조(1대 사망) 할머니가 수산장이 서기 전에 논배미를 뒤져 추어탕을 끓여내던 것이 지금까지 3대를 이어 오게 된 것이다. 윤 할머니의 딸 정기화 할머니(69), 그리고 그 며느리 노하순(44)씨 부부가 대를 잇고 있다. "호구지책의 간난신고가 스며들어 있는 것이 우리 집의 추어탕 맛"이라고 3대인 이 집 아들 김기업(46)씨는 말했다. 가마솥에 장작불로 추어탕을 구수하게 끓여낸다. 이 집 추어탕 맛의 비결도 장맛에 있다. 미꾸라지 튀김(1만, 1만5천원), 동동주(5천원)도 있다.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의 '할매추어탕'(055-382-0175, 한 그릇 5천원)도 이름이 있다. 화제리는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의 처가동네로 소설 '수라도'의 배경이 된 동네다. 이 집은 문도 허름하고 입구 쪽 벽면은 오래된 판자를 이어 붙여 놓았다. 주인아주머니는 그것을 두고 "집이 얄궂습니다."라고 했다. 추어탕 한 가지만을 하고 있으며, 칠팔 년간 추어탕을 끓여내고 있다고 했다. 이 집은 흰 솥에 장작불을 때 추어탕을 정량으로 끓여낸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국이 없습니다.'하는 안내판이 집 앞에 느닷없이 걸리기도 한다. 물금에서 원동 가는 길 국도 오른쪽에 있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덕계리의 '하씨전통추어탕'(055-365-0710, 한 그릇 6천원)도 이름난 곳이다.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때 추어탕을 끓여낸다. 주인 하씨는 "옛날 방식, 시골 방식으로 추어탕을 끓인다."고 했다. '돼지고기 된장'(3인분 2만원, 4인분 2만5천원)이라는 메뉴도 시골 방식으로 끓이는 된장국이다. 덕계사거리 하이마트 맞은편 옛길 쪽(천불사 방향)으로 우회전해서 150m가량 가면 된다.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8/0904/0L0020080904.1034151100.html 입력시간: 2008. 09.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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