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垢淨光大陀羅尼經

2009. 12. 6. 17:14佛敎

無垢淨光大陀羅尼經

"다라니경은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 확실"

처음 다보탑에 넣었다가 약 300년 뒤 수리하면서 석가탑에 옮겨 연대 혼동

불교서지학 전공자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연도는 통일신라 때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4월 8일자 보도)

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수리 때문에 해체되던 1966년 10월 탑 2층 안에서 유물 한 점이 발견됐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었다. 흔히 '다라니경'이라 불리는 이 경전은 8세기 초에 만들어진 두루마리 불경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다라니경'이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란이 일어났을까? 2005년 9월 '판도라의 상자'라는 별명이 붙은 석가탑 '묵서지편'의 존재가 밝혀졌다. 1966년 탑 안에서 발견됐던 이 종이 뭉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39년 동안 창고에 묵혀 두고 있었다.

▲ 1966년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돼‘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술’로 국사 교과서에 실린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최근 학계의 연구결과 제작 연대를 서기 751년에서 740~742년으로 더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 / 연합뉴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문서에 11세기에 작성된 석가탑의 중수기(重修記)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8세기에 만들어진 석가탑이 20세기까지 한 번도 중수된 적이 없다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다라니경' 역시 고려시대 수리 당시에 새로 만든 것을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2007년 3월 묵서지편의 내용 일부가 공개되자 의문이 커졌다. '서기 1038년에 무구정광다라니경 한 권을 탑에 넣었다'는 기록 때문이었다. '다라니경'이 1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의 자리는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770년)이 차지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신라나 고려 때 제작됐을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측의 반응은 세간의 의혹을 부채질했다. 발칵 뒤집힌 학계는 판독과 연구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 '다라니경'을 고려 때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 통일신라시대에 등장했던 고졸한 서체이고 ▲ 종이도 신라 특유의 닥종이이며 ▲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집권기인 690~704년에만 쓰였던 한자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중수기가 두 번에 걸쳐 기록됐다는 것도 밝혀졌다. 1024년의 '불국사 무구정광탑 중수기'와 1038년의 '불국사 서(西)석탑 중수형지기'가 묵서지편에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석가탑을 두 번 중수한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왜 같은 탑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런데 남동신 서울대 교수가 뜻밖의 주장을 했다. 1024년 중수기의 해체 기술 부분에서 '앙련대(연꽃 모양의 부재)' '화예(꽃술 모양의 기둥)' '통주(대롱 모양의 기둥)'라는 부재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석가탑이었을까? 옆에 있는 다보탑의 형상과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이어 최연식 목포대 교수와 한정호 동국대 전임연구원이 "1024년은 다보탑 수리, 1038년은 석가탑 수리 기록"이라고 분석함으로써 이 설은 힘을 얻었다. 하지만 왜 다보탑 중수기가 석가탑 안에 들어 있는 것일까?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최근 논문 '석가탑 무구정광다라니경'을 통해 "1038년 석가탑 중수 때 14년 전의 다보탑 중수기를 옮겨 석가탑에 봉안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다보탑 내부의 안치 공간이 좁아 그곳에 있던 '다라니경'과 함께 석가탑으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니까 석가탑의 '다라니경'은 1038년 이전까지는 원래 다보탑에 있었던 것이라는 얘기다.

박 원장은 1024년 중수기에서 원래 탑에 있던 사리를 담는 용기(사리장엄구)와 그 내용물을 언급한 부분에서 2종류의 '다라니경'이 있었다고 돼 있지만 1038년 중수기의 같은 부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원래 다보탑에 '다라니경'이 있었지만 석가탑에는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1024년에는 다보탑만 수리했는데 1036년 지진으로 탑이 붕괴 위험에 놓이자 1038년에는 두 탑을 모두 수리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이 때 다보탑에 있던 '다라니경' 2종 중 1권을 빼내 새로 석가탑에 집어넣은 것이며 따라서 현재의 '다라니경'은 다보탑 창건 당시인 신라 때 것이 맞는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1038년에 새로 만든 '다라니경'을 집어넣었을 가능성은? 박 원장은 "고려시대는 이미 탑에 봉안하는 경전이 훨씬 대중적인 '보협인경'으로 바뀌었을 때고 중수 당시에는 새로 '무구정광다라니경'의 소형 목판본을 간행할 이유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다보탑·석가탑의 창건 연대를 740~742년으로 기록한 중수기로 인해 오히려 '다라니경'의 간행 시기는 기존의 751년에서 9년 이상 올라가게 됐다. 분명한 것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술'이라는 국사 교과서의 기술을 고칠 필요가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17/2009041701283.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3&Dep3=h3_02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9.04.18 03:13 / 수정 : 2009.04.19 01:52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307952

불국사삼층석탑내발견유물 (佛國寺三層石塔內發見遺物)

종목 : 국보 제126호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기타/ 기타

수량 : 일괄

지정일 : 1967.09.16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불국사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내부에 사리봉안을 위한 공간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중심부에 놓였던 사리외함과 함께 안에는 알형으로 생긴 은제의 사리 내·외합과 금동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각종 구슬과 함께 있었다. 사리함의 주위에는 청동제비천상과 동경, 목탑, 경옥제곡옥, 구슬, 향목 등이 놓여있었다. 사리함의 바깥 기단부 바닥에서는 비단에 쌓인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종이가 한데 뭉쳐져 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사리외함은 4면에 덩굴무늬를 좌우대칭의 모양으로 뚫어 새겼으며,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도 무늬를 뚫어 새겼다. 지붕 위에는 덩굴무늬를 새기고 지붕 꼭대기, 모서리, 지붕마루에는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지붕 끝에는 나뭇잎모양의 장식을 달아놓았다. 안정된 각부 비례와 정제된 모습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사리합 중에서 가장 세련된 작품이다.

은제 사리내·외합은 계란모양으로 은으로 도금하였으며 8세기 중엽 양식을 보인 화려한 연꽃무늬와 작은 동그라미를 찍어 만든 어자문(魚子文)으로 장식하였다.

금동 방형사리합은 앞·뒷면에 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이 있는 모습과, 옆면에 인왕상을 선각(線刻)하였다. 뚜껑에는 3층 탑 모양의 작은 꼭지가 있으며 합 속에는 향나무로 깎은 작은 사리병이 들어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것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대대적으로 수리 보강하였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으므로, 이 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석가탑 안에 유리구슬·비단도 있었네, 비천상은 금동제 밝혀져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리구슬, 비단 등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6일 석가탑 내 사리 안치 공간에서 수습한 흙덩어리에서 다양한 재질의 지름 5㎜ 내외 유리구슬 370점, 문양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고(最古)의 비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청동제로 알려졌던 비천상은 금동제로, 매화 장식구는 은제가 아닌 청동제로 판명됐다. '제2의 다라니경'으로 오인되기도 했던 종이뭉치는 묵서 확인 결과 1038년 1월 탑 중수 과정에서 향을 담은 봉투로 밝혀졌다.

석가탑에서는 1966년 10월 해체 수리 중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등 많은 문화재가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7년부터 해온 석가탑 유물 보존처리 및 분석을 마치고, 17일 유물 일체를 조계종에 반환하기로 했다.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12/h2009121702450021950.htm 김지원기자 eddie@hk.co.kr 입력시간 : 2009/12/17 02: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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